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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4 [18’ 유럽 피스로드] #31. 반복되서는 안 될 역사, 아우슈비츠 수용소. By 쿠요, 솔 2018.08.26

 

 

안녕하세요. 솔쿠(요)입니다.(솔로쿠리스마스!)

저희는 오늘 폴란드에 위치해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다녀왔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세계2차대전 시절 독일이 인간살생을 목적으로 만든 수용소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많은 유대인, 폴란드인, 집시등이 학살당했고 전쟁이 끝나며 수용소는 개방되었고

이 학살을 잊지않기 위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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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들어가기 전, 뾰로퉁한 표정으로 설명을 읽고있는 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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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이는 곳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이드 투어를 듣기로 해, 가이드 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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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투어 시작! 이곳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본 건물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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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행사가 있을 때 사용하던 건물입니다. 표지판을 보면 악단이있는데요, 구성원들은 폴란드인들로 되어있다고 하고

독일군의 행사다 있을 떄는 무대에서 연주도 했다고 합니다. 가이드 선생님 말로는 유명한 뮤지션도 있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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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옮겨 다른 건물에 도착했습니다. 이 건물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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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안으로 들어와 처음 본 자료는 각 나라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강제이송 된 도표입니다.

오슬로 , 로마 등 먼 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아우슈비츠에 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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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희생 된 사람들의 납골(뼛가루)를 모아둔 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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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헝가리에서 강제이송 되는 유대인들의 사진입니다.
독일군이 찍은 사진인 것 같은데 사진속에 있는 꼬마의 마음은 어땠을 지, 심정이 복잡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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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도 각지 유럽국가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수용소로 가게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아우슈비츠로 가는 기차를 타고 갈 때 기차에서 뛰어내린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 중 10%만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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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의 배경은 헝가리 라고 하네요. 헝가리 유대인들은 약 40만명정도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헝가리에 살고있던 많은 유대인들도 아우슈비츠로 강제이송 당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일자리를 잃고 가족과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옷에 유대인과 다른사람을 구분하는, 옷에 다윗의 별을 달고 다녔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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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로 끌려온 사람들은 독일 군들이 몸을 소독하기 위해 목욕을 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고 옷을 갈아입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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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샤워실에 들어가 죽음을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죽을 것이라는 걸 알고있었어요. 유대인들 사이에

샤워실에 가면 죽는다는 소문이 퍼져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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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몸부림을 치면서 가스로 인해 죽어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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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독가스는 '사이클론B '라는 물질로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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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클론 B는 발화점이 낮아서(27도) 여름에는 일상 기온에서도 쉽게 위험을 줄 수 있어서

사이클론 B를 다루는 사람들도 항상 마스크를 끼고 있었답니다.
겨울에는 사이클론 B를 데워서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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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에 들어가기 전, 사람들은 개인 소지품을 다 압수당했습니다.
그 중 고가의 제품들은 재활용 되었고, 나머지들은 '캐나다'(유대인의 짐을 불태우던 장소)에서 불 태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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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에서 표시된 부분들이 유대인들의 소지품들을 태웠던 장소, 캐나다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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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너무 갑자기 이주 된 바람에 그 짐들은 '제대로 싸여지지 않은 짐' 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짐을 보면 유대인의 강제이송이 갑작스럽게, 예고없이 진행된 것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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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캐나다'에서 유대인의 짐을 태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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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건물을 뒤로한 채 다음 건물로 향합니다.
노크에 필기를 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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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건물에는 당시 수용자들이 죽기 전 남은 물건들을 모아놓은 장소였습니다.
건물에 들어와서 첫번 째로 보이는 것은 안경입니다.
그 당시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사람들이 쓰던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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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당시 장애인들이 쓰던 보행기구입니다.

나치는 장애인들은 우열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판단했고 그들도 학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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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개인 소지품들을 모두 압수당했습니다.

나치는 개인물품을 나중에 돌려줄꺼라 말했고, 그들에게 가방에

자신의 이름을 적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방은 아직도 주인을 만나지 못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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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님이 설명하신 것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는 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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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발 역시 수용소에서 죽은 사람들의 신발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가늠도 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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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전시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었던 사람들의 프로필이 복도 끝까지 가득 걸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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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쪽 벽에는 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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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에는 남성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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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중간엔 그 당시 수감자들이 사용하던 공간도 보여주었습니다. 이 곳은 화장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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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소는 수감자들이 사용하던 침실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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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들은 수감자들을 구분해 두었습니다. 폴란드 인들은 거꾸로 된 세모에 P를 세긴 마크를 옷에 붙이도록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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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다윗의 별, 마크를 옷에 박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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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어딜까요?

사진에서 보이는 작은 나무 건물은 '조회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조회대 뒤로는 작은 운동장 같은 공간이 있는데 그곳에 수감자들을 세워두고 인원체크를 했다고합니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 비가오는 날, 천둥번개가 치는 날, 눈이 오는 날에 일부러 수감자들을 세워두고

죽게 내버려두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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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수감자들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벗어나 다른 공간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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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보이는 철사로 옆 건물과 분리해 두었습니다.

이 철사에서는 전기가 흘러 수감자들이 쉽게 넘어가지 못하게 만들었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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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어떤 공간이길래 사람들이 꽃을 놓아 추모를 하고 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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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실입니다. 이곳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었죠. 나치들은 사람들을 죽이면서 죄책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안한 방법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이 아닌, 가스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가스로 사람들을 죽인 후 시체들을 치우는 것도 수감자들에게 시켰다고 합니다.

어떤 유대인은 시체를 치우면서 자신의 가족을 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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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실 바로 옆에 위치한 이곳은 가스실에서 죽은 사람들을 태우던 장소.

참으로 잔혹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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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옮겨 제 2수용소로 갑니다. 독일이 점령하는 땅들이 많아지면서 수감자도 많아집니다.

수용소에 모든 사람들을 둘 수 없으니 제 1수용소 보다 훨씬 큰 제 2수용소를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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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뚱한 얼굴로 수용소를 둘러보는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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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수용소에는 기차가 수용소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철도가 깔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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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저 펜스는 전기가 통하는 줄이라 함부러 넘어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 당시 수감되었던 사람들은 차라리 저펜스에 감전되 죽는 게 행운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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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차안에 약 60명의 사람들이 타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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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안은 좁아서 눕는 거와 앉는 것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다들 좁은 열차안에서 서서 이동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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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가 끝나는 길 반대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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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된 사람들을 위한 추모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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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소는 제 2수용소의 가스 실입니다. 현재는 무너져서 안을 들여다 볼 순 없었습니다.

가스실임과 동시에 멩겔래 박사가 생체실험을 한 곳이라고도 하네요. 멩겔래 박사는 잔인한 생체실험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말로 하기엔 너무 잔인한 실험들을 많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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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선생님께서 '캐나다'(유대인의 짐을 태우는 장소)를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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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지금 들어가는 장소는 아이들이 생활했던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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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지냈고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공간에서 5~6명정도 잤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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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저희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방문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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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공간에서 그렇게 많은 아무죄없는사람들이 죽었다는 게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교과서에서만 보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하고, 더 많은 걸 알게되어 느낌이 새롭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일어났던 대학살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 2아우슈비츠 수용소는 꽤 아름다운 풍경을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몰랐을 정도로, 수용소라는 것을 몰랐다면 멋진 곳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느낌이 더 묘했습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들에게는 여기보다 지옥같은 곳이 없었겠죠. 그래서 괜히 이곳에서 죽으신 분들에게 죄송한 맘이 들었습니다. 제1 수용소에서 희생자들의 물품을 모아둔 전시관에는 사진촬영이 금지된 공간이 있습니다. 수감자들은 가스실에 들어가기 전 머리카락이 짤렸습니다. 그 머리카락을 모아 둔 공간이었어요. 머리카락의 양은 약 4톤가량 된다고 합니다. 양도 양이지만 실제로 그사람의 몸의 일부였던 머리카락을 실제로 보니 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충격받기도 했고,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나네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들은 죄가 없었지만 한 사람의 엄청난 차별과 이에 따른 권력으로 인해 죽었습니다. 우리는 이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이 학살에 마침표를 찍는 노력을 다 같이 해야합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