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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0 [18’ 동남아 피스로드] #25. 진실이란 무엇인가 <킬링필드 세미나> 2018.02.03

 


쑤어 쓰다이! 아침부터 공부를 하느라 바쁜 친구들.

네. 오늘은 킬링필드 세미나 날입니다. 

 

죽음의 역사를 만났던 킬링필드. 그곳에서 궁금증을 남긴 채 돌아왔었죠.

오늘은 그 실체를 찾아서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해볼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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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세미나는 프놈펜 시내의 한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와 함께 할 예정이예요. 카페로 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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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막바지 준비를 열심히 하는 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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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킬링필드 세미나를 시작하겠습니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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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베트남 전쟁 세미나와 진행 방식은 같습니다. 

각자 발표와 질문을 준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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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란 무엇인가 - 벤>

 

먼저, '킬링필드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준비한 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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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킬링필드 세미나에서 킬링필드라는 주제를 맡은 벤자민입니다. 먼저 킬링필드는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대량학살인데요. 좁게는 크메르 루즈 정권이 사람들을 처형한 사건을 말하며, 크게는 그를 전후한 캄보디아에서의 학살을 일컫는 말입니다.

 

자 그럼 처음부터 천천히 가보겠습니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더 캄보디아는 1945년부터 8년간의 독립운동 끝에 시아누크 국왕이 완전독립을 선언합니다. 이와 더불어 미국과의 단교도 선언하고요. 하지만 몇년 뒤 군부와 미국의 친미 쿠데타가 일어나 시아누크 국왕은 축출되고 론 놀 정권이 집권하게되죠. 이 시기 미국은 호찌민 통로를 찾기위한 폭격을 가했고, 캄보디아는 수십만명의 사망자와 100만명 이상의 난민이 수도로 몰려 나라가 굉장히 혼란스러워집니다. 이 때 사회주의 실현과 친미성향인 론 놀 괴뢰정부를 전복시키려는 폴 포트의 크메르 루즈가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으며 민족주의자, 농민들을 중심으로 세력을 늘려나갔습니다. 결국 민심을 잃은 론 놀은 하와이로 망명하게되고 세력을 잡은 크메르 루즈는 공식적으로 정부를 수립하고, 국명을 민주 캄푸치아로 개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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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메르 루즈는 정권을 잡자마자 각지의 집단 농장을 설치하고, 사회주의식 세 세상을 건설한다며 수도에 몰린 난민들을 몽땅 농촌으로 내쫒았습니다. 또한 뚜얼술랭같은 수용소들을 많이 건설하여 반혁명 사상을 품고있다고 의심되는 사람들과 외국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 스파이로 의심되는 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고등교육 이상을 받은 캄보디아 국민들을 밀살당했고, 박해의 대상이 된 지식인들이 도망치자 그 대상이 농민들 중 협조적이지 않은 자들로 확대되었고, 나중에는 땅 중앙을 제외한 크메르 간부들까지 살해되는 내부투쟁으로까지 변했습니다. 이 당시 대략 100-200만명 가량 학살을 당했고, 전역이 말그대로 킬링필드가 되었습니다. 음.. 안타깝지만 이 때 시기에는 이런 캄보디아의 실상이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못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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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크메르 루즈의 캄보디아 내 베트남인 학살로 분노한 베트남은 크메르 루즈를 공격하고 결국 이는 무너지게됩니다. 이와 더불어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끝내 이기지 못한 베트남에게 자신의 힘을 다시 보여주기 위해 무너진 크메르 루즈를 지원하게 되죠. 베트남이 지원하는 헹 삼림의 캄푸치아 인민공화국과 미국이 지원하는 크메르 루즈는 다시 전쟁을 하게되고 이 캄보디아 내전은 또 다시 수십만명의 사상자를 낳았습니다. 결국 베트남 군이 철수하면서 평화 파리 협정이 개최되었고, 캄보디아의 내전은 종결되었습니다. 네! 여기까지가 좁은의미의 킬링필드와 넓은의미의 킬링필드를 모두 담은 저의 세미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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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잘 들었습니다. 듣고 나니 킬링필드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는군요.

그래서 돌아온 질문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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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Killing Fiend)라는 이름은 어디서 온 건거요? 그 전엔 정해진 이름이 없었을 텐데요.

 

제 생각에는 말 그대로 킬링필드였잖아요. 미국에서 처음 정한 것 같아요. 

 

테디

그러면 영화 킬링필드는 미국에서 그런 이름을 붙였기에 그런 제목이 붙은 건가요?

 

설마 그 영화가 시초는 아니겠죠?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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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제이

킬링필드의 뜻이 뭔가요?

 

‘킬링’과 ‘필드’를 나눠서 봐야하는데요. 킬링은 죽인다, 필드는 땅을 말합니다. ‘죽이는 땅’이라고 하면 이상하니까, 죽음의 땅이라고 해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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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1970년 3월에 군부의 미국의 쿠데타가 일어났는데요. 어떻게 쿠데타가 일어났나요?

 

시하누크 국왕이 완전 독립을 선언했을 때 미국과의 단교를 선언합니다. 그 이유가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로 미국이 북베트남에 폭격을 많이 가했고요. 두번째로는 당시 캄보디아는 내전이 없었고, 식량이 풍부해서 수입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고, 난민도 없었죠. 캄보디아가 미국과의 단교를 선언하자 쿠데타를 일으키고 정권을 세운거죠.

 

테디

누가 쿠데타를 일으킨거죠?

 

론놀 친미 정부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집권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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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궁금한건데요. 쿠데타의 정의가 뭐죠?

 

정권을 바꾸기 위해서, 군사들과 친미세력들이 시하누크 국왕을 몰아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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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하누크 국왕은 어떻게 다시 돌아오게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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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하누크 국왕은 두 번이나 돌아왔어요. 독립 후 론놀이 정권을 잡으면서, 쫒겨났었어요. 그때 사회주의 실현과 친미 성향의 론 놀 괴뢰 정부를 전복시키자는 폴 포트의 크메르 루주와 시하누크 국왕은 생각이 같았습니다. 크메르 루주가 명분상 먼저 국왕자리에 올려요. 나중에 크메르 루주가 정권을 잡으면서 또 축출이 되요. 두 번째로 돌아온 건 헹 삼린이 들어올 때 파리 평화협정으로 총 선거를 하게 되는데, 당시 시하누크 국왕이 다시 뽑혀서 집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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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에 쿠데타가 일어나고 론놀 정부가 수립되었잖아요. 궁금한 것은 론 놀 정부가 세워졌을 때 국민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반응이 굉장히 안 좋았어요. 이때 미국이 호치민 루트를 찾는다고 캄보디아에 폭격을 아주 많이 가한 상태였어요. 론놀이 정권을 잡기 전, 미군의 폭격 때문에 난민도 많이 생겼고, 미국 정부에 대한 안 좋은 생각도 많았어요. 그 틈에 크메르 루주가 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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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당시 캄보디아 사람들은 크메르 루주에 대한 반응이 어땠나요?

 

당시에는 크메르 루주에게 반응이 좋았습니다. 농민들과 농촌 출신의 젊은이들도 크메르 루주에 많이 가입할 만큼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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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그런데 나중에는 미국의 CIA가 사람들을 동원해서 마약을 팔아가면서 크메르 루주를 지지했는데요. 왜 그랬나요?

 

미국은 지난 세미나에서 공부했듯 배트남 전쟁에서 패배했어요. 미국은 베트남이 캄보디아에 들어와서 정부를 수립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죠. 친베트남 헹삼린 정권의 캄푸치아 인민 공화국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크메르 루주를 도왔다고 합니다. 이렇게 도움으로써 오히려 킬링필드가 미국 안에서 묻혔어요. 

 

또 한가지 이상한 점은, 미국이 베트남 전쟁 때 캄보디아에 폭격하면서 크메르 루주가 집권하는 계기도 만들어주게 됩니다. 

 

 

벤과 함께 킬링필드란 무엇인가를 짚어봤습니다. 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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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주제는 솔입니다. 킬링필드란 무엇인가를 짚어봤으니, 

이번에는 킬링필드로 자행했다고 알려진 크메르 루주에 대해서 한 번 알아볼까요?

 

 

<크메르 루주란 무엇인가 -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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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베트남과 베트남 전쟁을 치르며  호찌민 루트를 파괴하기 위해 베트남 뿐만아나라 주변국가에도 폭격을 가하며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그 중 캄보디아에서는 미국이 직접 캄보디아 내전에 개입하며, 내전의 희생자 가족들과 자국민들은 제국주의 미국에 대한 증오가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폴포트를 수장으로 내세우며 자신들을 ‘크메르 루즈’라고 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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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정부의 폭격이 심해지고  농민 수십명이 학살되자 살아남은 농민들은 크메르 루즈에 가입했고 크메르 루즈의 세력은 급격히 확대되었습니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해 대통력직으로 인해 대통력직에서 물너나자 캄보디아의 폭격도 멈추었습니다. 크메르 루즈는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입성하게 됩니다. 크메르 루주는 공식적으로 정부를 수립하고 국명을 ‘민주 캄보치아’ 로 개창하였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 적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각지에 집단 농장을 설치하고 도시주민들 모조리 농장으로 내몰았습니다. 반혁명 사상을 품고있다고 의심되는 사람이나 외국과 관련된 사람, 스파이로 의심가는 사람들은 모두 뚜올슬랭과 같은 수용소로 보내져 고문을 받았습니다.(뚜올슬랭은 크메르 루즈의 악명높은 수용소로 약 1만 7천명이 수용되었고 살아서 나간 사람은 고작 12명에 불과합니다.) 지식인과 부유층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박해의 대상인 지식인들이 죽거나 탈출하며 사라지자 그 대상이 비협조적인 농민들에게 불똥이 튀었습니다. 나중에는 당 중앙을 제외한 크메르 루즈 간부들 까지 무 차별적으로 살해되는 내부 투쟁으로 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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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모든 곳이 사지, 킬링필드가 되었습니다. 1975~1978년까지 크메르 루즈 정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분명 하지는 않습니다. 당시150~200만명의 캄보디아 인들을 학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베트남이 프놈펜을 점령한 뒤 크메르 루즈는 태국 국경 근처로 쫓겨나고 친 베트남 정부, 헹 심린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이제 크메르 루주의  킬링필드는 끝인가 했는데 크메르 루주는 중국과 미국의 원조를 등에 업고 태국국경지역 근처에서 게릴라 전을 수행했습니다. 캄보디아의 내전은 장기화 되었고 합의로 끝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크메르 루즈 입장에서는 킬링필드가 알려진 이상 패배한 경우 학살자로 죽는 수밖에 없었고, 정부입장에서는 외국의 괴뢰정부에 속했던 그들을 크메르 루즈가 살려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양측모두 이기기 위해 무리한 방법까지 동원하게 됩니다. 민간인 징집과 소년병 동원, 마약판매 그리고 전국에 지뢰를 깔게 됩니다. (미국의 폭격으로 의해 남은 불발탄과 이시기에 심어진 지뢰는 아직도 희생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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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전기동안 사망자 역시 수십만명으로 추산됩니다. 1979년  크메르 루주가 베트남 군에 의하여 전복되었습니다. 하지만 크메르 주의 수장인 폴포트가 사망하여 잔존세력이 완전히 소탕되기 전까지 완전한 평화라고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후 크메르 루주 전범 재판소를 설립하며 사건 발생이후 약 30년 만에 비로소 책인자 처단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범 중 다수는 처벌을 받지않고 사망한 지 오래이기에 사실상 처벌보다는  ‘학살과 반 인권범죄처벌에는 시효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크메르루즈 전범재판소의 이념을 명시하기 위해 실시하는 재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크메르 루즈 일당들을 전범재판을 받아 형을 치르거나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었습니다. 또는 희생자의 가족 혹은 당사자를 찾아가 그들의 발을 씻겨주면서 사죄하였습니다.

 

 

잘 들었어요. 사실, 킬링필드를 자행한 크메르 루주에 대해서도 많이 궁금했는데요.

그들은 도대체 누구길래 그런 잔인한 학살을 했을까하는 궁금증은 누구에게나 생길 것 같아요.

 

질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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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Genocide)가 무엇이죠? 공부하다가 많이 봤어요.

 

솔 

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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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

영어로 제노사이드는 대량학살이란 뜻이죠. 나치의 대량학살도 제노사이드라고 불러요.

 

벤, 솔

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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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제이

크메르 루주 지금도 남아있나요?

 

지금까지 전범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크메르 루주라는 단체는 없는 거라고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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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야기도 아니고, 미국의 도움까지도 받았는데 아예 없어진 게 신기하네요. 

 

잔세력은 있을 수 있어요. 크메르 루주라는 학살집단은 없어졌다고 말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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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크메르 루주는 왜 나라 이름을 민주 캄푸치아라고 지었나요?

 

폴 포트가 그렇게 짓고 싶었나봐요. 의미는 잘 모르겠습니다. 

 

씨제이

크메르 루주가 군대같은 건가요?

 

그렇죠. 킬링필드를 만든 세력이 크메르 루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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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포트를 수장이라고 했는데요. 제가 박물관에서 보기엔 폴 포트가 제일 위가 아니라, 키우 삼판이라는 사람이 제일 위에 있었어요. 그 아래에 폴 포트가 있었어요. 이건 어떻게 된거죠?

 

서열의 순서는 어떻게 되는지 잘 몰라요. 키우 삼판과 다른 두 명의 지도자가 있었는데요.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게 폴포트가 아닌가 싶어요. 

 

제가 찾아봤을 때는 키우삼판이 국가주석이고,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폴포트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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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은 혹시 ‘크메르 루주’의 뜻을 아나요?

 

‘루즈’가 빨간색을 뜻한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크메르를 모르겠어요. 

 

크메르는 캄보디아의 옛 이름입니다. 

 

그래서 크메르 인이라고 하는구나! 붉은 캄보디아!

 

국기에도 빨간색이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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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메르 루주의 이념에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말고 또 어떤게 있을까요?

 

민족주의!

 

네. 민족주의 성향이 아주 강한 집단이라고 생각하면 킬링필드를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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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크메르 루주는 왜 아무 죄 없는 사람을 학살했나요? 도끼로 손을 자르거나, 숲 속의 나무에 묶어 붉은 개미가 살을 파먹게 하는 등.

 

크메르 루주가 집권할 당시에, 집단 농장을 만들어서 도시 사람들을 다 내몰았어요.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반역이나 낌새가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죽였어요. 학살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크메르 루주의 대부분은 비지식인이거나 가난한 사람들이라서 지식인과 부유층에 대한 분노가 많았대요. 그리고 미국에 대한 증오가 심해서 외국인과 외국에 관련된 사람, 지식인을 모두 죽였고요. 급기야  피부가 좋고, 시계를 차고, 손이 곱고, 안경쓴 사람을 부르주아로 인식해서 학살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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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메르 루주는 처음에는 미국에 반하는 입장이었다가 나중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고 했는데, 왜 그렇게 되었나요?

 

크메르 루주가 론놀 정권 때는 미국의 탄압을 받았었죠. 1979년에 크메르 루주를 몰아내고 친베트남 정권인 헹 삼린 정부가 들어섰잖아요.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남에게 많이 당했었죠. 그에 대한 분노가 크메르 루주가 대신 복수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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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메르 루주는 미국을 증오하면서, 도움은 다 받았나요?

 

그 때는 크메르 루주가 다른 수단이 없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국경쪽으로 완전 물러난 데다, 자신들이 권력을 잃었으니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이 아니었나 싶어요. 

 

뚜올슬랭에서 살아나간 사람이 12명이라고 하는데요. 어떻게 살아나간 거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유가 있다기 보단, 옛날에 그곳에서 일을 했다거나 크메르 루주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 극소수가 살아나갔다고 해요. 

 

또 읽어보니까, 살아나간 사람이 경찰이 되어서 감옥의 수장이던 두치라고 불리는 사람을 잡았다고 해요. 어떻게 된거죠?

 

거기까진 잘 모르겠네요. 결국엔 유무죄를 떠나 대부분의 사람이 죽었잖아요. 이유를 들어서 살아나갔다고 말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크메르 루주란 무엇인가를 준비한 솔,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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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크메르 루주를 이끌었던 폴 포트에 대해서 준비한 씨제이입니다.

 

이번에도 못 할 것 같다고 걱정을 많이 하시던데요. 혹시, 연막작전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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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 건 아니고요. 일단 한 번 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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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러면 폴 포트란 누구인가라는 주제를 준비한 씨제이의 설명을 한 번 들어볼까요?

 

와아아,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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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포트란 누구인가 - C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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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포트. 캄보디아의 제 3,5대 총리

국적:캄보디아.       /군주:노로돔 시아누크

출생일:1925년 5월 19일~사망일:1998년 4월 15일 72세의 나이로 사망

사망지:캄보디아/정당: 캄푸치아 공산당

 

폴 포트.흔히 이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이름이 아닌 영어의

“폴리티컬 포텐셜” 혹은 프랑스어 “폴리티그 포탕티엘”의 줄임말,

이 영어&프랑스어로 “정치적 가능성”을 뜻. 본명은 “살롯 사”이다.

 

폴 포트는 캄보디아의 독립운동가, 노동운동가, 군인, 정치인이자 사회주의 혁명가이다.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정당이였던 “크메르루주의 지도자이자 1976년~1979년

까지 민주 캄푸치아 공화국의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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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식민지 기간중 독립운동가로서 민족해방운동에 동참/

호찌민이 지도하는 반프랑스 운동 단체에 가담하여 활동/해방 후 공산당에

가담/ 미국과 왕정에 대항/ 론 놀 정권을 타도하고 집권성공/

집권기간중 지주, 자본주의자, 반대파 200만명을 숙청/

기타 강데 이주책과 노동책, 흉년,기근을 위시한 질병으로 국민 다수가 

이사/ 재임 기간 원리주의성 공산주의에 따라 집단농업화 정책을 

강제시행하여 많은 국민을 심문과 고문으로 죽게한 소위 킬링필드로 유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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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베트남군의 침공으로 정권을 잃고

북쪽 국경 밀림 지대로 달아나 게릴라전을 전개하다

체포. 그후 1998년 가택 연금상태로 사망.

 

출생과 유년기

폴 포트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프렉 스바우브의

한 농가에서 9형제중 8번째로 태어나 자람.

 

어려서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탓에 불교 사원에 보내져

6년간 생활, 그중 2년은 승려로 지냄.

폴 포트는 프놈펜에 소재한 기술학교에 입학하여 1년간

목수일을 배움.

9세에 이향해 프놈펜으로 올라가 왕실 공무원인 형과

공중 무용수인 사촌누나의 자취집을 전진하면서

고단한 유학생활한 퐁 포트는 가난과 기근에 시달이는

수많은 빈민이 처참하게 생활하는 모습과

왕실의 부유하고 풍족하면서 부패한 왕 생활상을 목도.

부패한 왕실의 실상을 목격/

학교에서는 역사시간에 캄보디아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외부 침략자들 탓에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됨.

“분노”한 폴 포트는 조국의 영광을 찾겠노라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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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폴 포트는 호찌민 휘하에서 반프랑스 저항운동에 가담.

1942년 캄보디아의 캄퐁참에 신설된 노로돔시아누크 중학교에 입학.

1946년 캄보디아 공산당 가입, 신입생은 20명, 폴 포트는 캄퐁톰의 대표.

1948년 캄보디아 명문 고등학교인 리씨스 소와쓰에 응시했으나 낙방.

그래서 프놈펜 기술 고등학교에 입학,

1949년 무선 공학 연구를 위해 장학금으로 파리에 유학.

유학중 공산주의자가 되어 신생 크메르 공산주의 그룹에  참가.

1952년 익명으로 학생잡지를 이용해 캄보디아 왕정에 반기를 들어

“군주제는 없에야한다”라는 글을 발표.

1953년 캄보디아에 귀국 후 프랑스어 교사로 일하는 일변 공산당 활동에 셩상

으로 참여.

1956년 파리에서 알게된 큐 포니지와 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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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활동

시아누크의 비밀경찰을 피해 12년간 지하활동.

1960년 캄보디아 공산당 중앙 상임인원을 거쳐 1962년 서기로 취임.

63년 폴 포트가 공산주의자와 연루되었다 의심. 그래서 교사직을 사퇴.

그리고 프놈펜을 떠나고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자 폴 포트는 베트콩을

지지한다고 천명/ 1967년 중국의 지원으로 반정부 부장 투쟁을 시작.

캄보디아 공산당은  후에 크메르루주로써 알려저 동당의 무장조직은

폴 포드파로 불리게 됨. 크메르루주는 완벽한 평등주의의 토지균등

분배론을 생각하고 사회주의의 중간단계를 피하고 공산주의 달성을 목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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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과 사망

1997년 6월 자신의 과거 동료들에게 긴급체포.

7월에 열린 공한에서 반역죄를 선고받고

창고에 연금되었다가 1998년 병으로 사망.

 

 

정치적 탄압

교육 금지, 의사나 교사 발견시 ‘재교육 명목’으로 처형.

“안경쓰네?!””글쓰네?!”아는 이유로 처형되기도 함.

결과는 지식층은 궤멸.

 

종교 탄압

모든 종교 금지. “불교”탄압대상으로 많은 승려가 강제 환속,

사원 파괴, 여타 종교 박멸!

 

가족 계획

폴 포트는 어린이는 국가가 키워야한다고 확신.

아이, 청소년에게 부정,부패,탐욕을 가르침,

부모가 죄를 지을경우 어린 자녀가 고발하게 하도록 함.

결과는 가족간 신뢰는 X. 개인주의 기승

 

 

————————————

 

 

 

짱입니다.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갑자기 뿌듯한 기분이 듭니다. 

 

씨제이

지난 베트남 전쟁 세미나 때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질문해주세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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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신이 나서 춤까지 추는 씨제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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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분에 한바탕 웃음이 번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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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포트 역시 킬링필드하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죠. 그러면 질문을 한 번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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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폴포트는 시하누크의 비밀경찰을 피해서 지하활동을 12년간 했어요. 그런데 시하누크가 누군가요?

 

시하누크는 론놀 정권 이전의 왕입니다. 

 

시하누크는 어떻게 왕이 되었나요?

 

처음 왕이 될 때는 10대였다고 알고 있어요. 

 

테디

캄보디아가 원래 프랑스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하면서 시하누크가 왕이 되잖아요.

 

아, 프랑스! 그런데 시하누크가 프랑스의 말을 안 들었었어요. 

 

테디

말을 잘 들을 줄 알았는데, 안 들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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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제이

질문 또 해주세요.

 

폴 포트가 모택동 주의를 열렬하게 지지했다고 하는데요. 모택동 주의에 대해서 씨제이가 아는게 있나요?

 

씨제이

모..뭐? 모..택동이요?

(하하하)

 

테디

혹시 벤은 알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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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확실하진 않아요. 제가 조사를 했을 때는 모택동주의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중국의 실정에 적용시킨 농민중심의 혁명방식인데요.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도시에서 노동자 혁명을 일으키자고 했는데, 모택동 주의는 농촌에서 도시로 간다고 해요. 저도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정확히 뭔지를 모르겠어요. 그래서 모택동주의자나 마오쩌둥주의자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테디

모택동이 누구일까요? ...

모택동은 마오쩌둥이예요. 

 

동일한 사람이예요? 모택동이 마오쩌둥이예요?

 

테디

모택동을 중국어로 읽으면 마오쩌둥, 한국어로 읽으면 모택동인거죠. 

 

그런데 얼굴이 되게 젊었는데요.

 

씨제이

젊은 시절 사진일 수도 있죠.

 

테디

그럼 마르크스는 누구일까요?

 

사회주의를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이죠. 이어서 엥겔스, 마지막에 레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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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

그럼 레닌은 누구입니까?

 

음... 레닌은 호치민이 좋아했는데요. 레닌도 사회주의자죠. 

 

테디

레닌이 어느나라 사람이죠? 그리고 무얼하는 사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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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그가 죽었을때 호찌민이 굉장히 슬퍼했다고 봤는데...

 

테디

레닌은 소련 공산당의 리더였어요.

 

우리가 캄보디아의 역사와 킬링필드를 공부하고 있지만, 주요 나라의 큰 역할을 한 사람들의 이름이 다 나왔어요. 인물의 이름을 알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거예요. 마오쩌둥과 모택동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10대 친구들도 아주 많을 테고요. 레닌과 러시아를 모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죠.

 

어쨌든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아는 것보다, 베트남 호치민부터 지금까지 모두 관련이 되어있다고 집중하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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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포트는 베트남을 탄압했어요. 하지만 과거에는 호치민과 반프랑스 운동에도 참가했고, 베트콩을 지원한 적도 있는데, 왜 베트남을 탄압했나요?

 

씨제이

무리한 학살 때문에 베트남과 관계가 안 좋아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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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Genocide)에 대해서 아까도 물어봤는데요. 제노사이드의 정의는 고의적으로, 제도적으로 민족, 종족, 인종, 종교집단의 전체나 일부를 파괴하는 범죄를 말합니다. 베트남이 다른 민족이잖아요. 민족에 대한 소속감이 너무 강해서 베트남 사람들을 탄압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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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폴포트는 왜 종교를 탄압했을까요? 원래는 2년간 승려였다고 하는데요. 

 

씨제이

공산주의의 무교 성향 때문에 다 처단한 걸로 알고 있어요. 공산당 가입하기 전에 승려를 했지만, 가입하고 난 후 불교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접은걸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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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포트가 군주제의 문제점을 느꼈다고 했잖아요. 군주제의 문제점이 뭔가요?

 

씨제이

국민을 내버려두고 왕 혼자 노는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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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제이가 종이에 적힌 것을 읽는게 아니라, 내용을 이해하고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니 좋군요.^^

 

폴포트는 반역죄를 선고받고 자택에 연금되다가 죽었다고 했는데요. 21세기에 크메르 루주 전범재판소 들어서기 전에 폴포트는 반역죄를 선고 받았잖아요. 왜 폴포트만 반역죄를 선고받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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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제이

제 추측으로는 제일 높은 총리였던 폴포트가 사람들을 죽인 킬링필드를 지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폴포트만 반역죄를 받은걸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크메르 루주 전범 재판소가 원래 있었대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재판을 하고 처리하는 게 30년 후인 21세기에 들어선거예요. 그래서 가장 눈에 띄는 범죄자는 폴포트만 먼저 선고받은 건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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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제이 수고했어요!

 

 


 

 

오늘의 마지막 주제입니다. 레몬이 맡은 킬링필드의 숨겨진 진실인데요.

진실이면 진실이고, 거짓이면 거짓이지. 숨겨진 진실은 또 뭘까요?

 

레몬도 알아보면서 상당히 고심했을 겁니다.

어디 학교 교과서 처럼 정답이 나와있는 게 아니거든요.

 

과연 레몬이 찾아본 킬링필드의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요?

 

 

<킬링필드의 숨겨진 진실 - 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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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킬링필드의 숨겨진 진실을 맡은 레몬입니다. 우선 킬링필드 는 캄보디아에서 있었던 크메르루주의 시절때 생긴 대량학살입니다. 그리고 킬링필드 의 주동자는 폴포트 입니다. 폴포트의 본명은 살롯사(saloth sar)이고 1925년~1998년 까지 살고 돌아가셨습니다. 우선 제가 조사한 바로는 앙코르영광을 얻기위해 회복시키기 위해 무모한 욕망을 소년병사에게 앞세워 사회 전화 시켰다. 앙코르 시대때 매우강력하고 막강한 힘들 다시 찾기위해 사회 전화 시킨것으로 추측이 된다. 그리고 이때 약 30여 만명이 축청 당했다. 미국이 캄보디아에 폭격후 파리평화회담을 한후 다시 미군이 캄보디아에 무차별로 공격과 폭격을 하였다. 미군이 캄보디아에 25000t의 폭탄을 6개월이라는시건동안 사용한 양이고그로부터 10년뒤 다사 더 많은 64000t 이라는 원자폭탄 의 5배의 많은 양이 투하되었다. 이에 더해 고엽제에 화확물질을 같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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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미군은 캄보디아에 무차별 폭격과 공격으로 인해 주민들이 다치거나 집을 읽거나 난민이 되거나 생활 터전이 잃어 버린다. 미군은 시간대 별로 아침,점심,저녁,간식,후식적전우로 나눠서 공격또는 폭격을 가했다. 1979년 당시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점령해서 킬링필드 가 알려졌다. 베트남에서 위령탑을 세워 킬링필드 가 알려진것같다. 킬링필드의 매우 많았던 논란이 많았던 사건이다. 난민수용소 s-21에서 죽은 사망자수가 피난민 일반 국민보다 많다는 통계!!그리고 일부주장은 헨리키신저는 크메르루주 보다 악독하고 잔인한 학살자로 킬링필드 를 두 많아 부각시켜 자신의 학살을 덮으려는 논란도 있었다. 이로 인해 헨리키신저는 진범으로 재판을 받아야 된다라는 주장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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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놀 정부시절때 캄보디아에 미국이 폭격을 해도 좋다. 라고 한사람이 헨리키신저라고 알고 있다. 위령탑은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점령하는것을 정당화 하기위해 위령탑을 세웠다. 그리고 캄보디아의 30~40대 교사 가운데는 과학실험을 직접 해본적이 없다고 는 적지 않았다. 지식인 학살은 문화대혁명 처럼 캄보디아의 교육에 엄청크게 단절됬다. 왜냐하면 지식인들은 모두 학살 당했기 때문이다. 크메르 루주군은 부자들을 잡아갔다.자동차, 라디오, tv, 전자기기,있는놈둘의 물건이었다. 이러한 물건을 가지고있기먼 해도 많은 사람이 잡혀갔다. 크메르정권때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조사단체마다 다르고 제가 조사한수는 고문과 헉살로 150~200만명이 사망이됬다고 조사!! 베트남 측에서 300만명으로 발표!! 미국방선은 120만명 또 핀란드 중립군 조사단 추산은 전쟁중에서 사망자 60만, 크메르루주에 의해 100만이 희생이 됬다고 한다. 

 

 

질문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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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킬링필드의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요?

 

레몬

숨겨진 진실은, 무차별 폭격과 사망자수가 조작되었어요. 학살에 많은 논란이 있는 사건이예요. 또, 미국은 캄보디아 동부의 담수공급원인 메콩강 하구와 똔레삽 호수에도 폭격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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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군이 담수 공급원에 그렇게 많은 폭탄을 투하한지 아시나요?

 

레몬

캄보디아에 있는 호찌민 루트를 찾으려고 한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헨리 키신저는 크메르 루주만큼이나 악독한 학살자예요. 하지만 크메르 루주의 킬링필드를 일부러 부각시켜서 자신의 학살을 덮으려고 한다는 말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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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제이

숨겨진 진실이라고 하는데, 또 다른 것도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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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형무소 안에 발굴된 해골로 캄보디아 지도를 만들었는데, 반인륜적이라는 인권단체의 비판으로 해체를 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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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내용 중에 킬링필드가 알려지지 않았다고 했어요. 킬링필드를 헨리 키신저가 부각을 시켰다고요?

 

레몬

70~80년대 초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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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제이

말씀하신 것 중에, 30여 만명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레몬

30여만명이 무차별로 숙청 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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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메르 루주는 앙코르 시대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 소년병을 징집했다고 하는데요. 앙코르 시대에는 어떤 영광을 누렸나요?

 

레몬

제 생각에는 자신의 세력을 넓히려는 영광인 것 같은데...

 

앙코르 시대가 캄보디아의 전성기였고, 크메르 루주는 그 영광을 되찾는다고 한 것 같아요.

 

우선, 민족간의 단결이 잘 되고요. 기본적으로 사유재산이라는 정의나 생각이 분명하지 않은 것 같아요.

 

 

잘 들었습니다!

 

 


 

 

몇 가지 질문과 함께 킬링필드의 여러 진실을 찾아 조금 더 깊게 들어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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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답이 없는 질문을 몇가지를 해볼게요. 역사적 사실을 짚어내면서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인데요. 정답은 없습니다. 혹시 킬링필드와 뚜올슬랭 박물관을 누가 박물관으로 만들었는지 아시나요?

 

현재 집권하고 있는 훈센일 것 같아요. 

 

북베트남의 괴뢰정부가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크메르 루주와 싸웠으니까요. 그 실상을 알리려고 했을 것 같아요. 

 

레몬

킬링필드를 조사한 정부에서 만들었을 것 같아요. 

 

씨제이

일단 킬링필드의 피해자가 학살지를 알리면서 만들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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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킬링필드 박물관을 만든 주체는 베트남인데요. 베트남이 이것을 언제 왜 만들었을까요?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했잖아요.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만든게 아닌가 싶어요. 

 

씨제이

베트남이 보기엔 캄보디아가 만들 생각이 없어보여서 만든게 아닌가 싶어요. 

 

레몬

침공한 사람들이 킬링필드이 크메르 루주에 잡혀가서 고문을 받았으니까 그런게 아닐까요. 

 

저도 상상을 해보자면, 베트남 사람들이 킬링필드의 피해자들 때문에 캄보디아를 침략하게 되는데요. 그에 대해서 분노한게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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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979년에 베트남이 크메르 루주의 캄보디아를 침공했어요. 국제 사회는 베트남에 엄청난 압박을 가합니다. 캄보디아를 침공하고, 프놈펜을 점령하는 전쟁을 일으킨 거잖아요. 그 때, 박물관을 만들었어요. 왜 만들었을까요?

 

레몬

침공을 하고 나서 만든 거예요?

 

베트남은 지지를 얻기 위해서 대립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던 크메르 루주의 실상을 알릴 필요가 있었어요.

 

솔 

크메르 루주의 분명한 잘못은 있는데, 거기에 얹어서 과장하는 생각이 드네요.

 

씨제이

베트남이 캄보디아에 침략한 것을 덮으려고 한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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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킬링필드’

 

어제 킬링필드라는 영화는 어땠나요?

 

씨제이

재미있었어요.

 

글로만 보다가 영화로 보니까 쉬웠어요.

 

전체적으로 이해가 잘 되게 풀어놓은 것 같아요. 

 

레몬

이해도 잘 되고, 당시의 실상을 잘 알게 된 것 같아요. 

 

수 

시대의 사건을 잘 이해했다고 했는데요. 미디어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영화에서 절대 선은 누군가요?

 

미국이요.

 

영화에서 절대 악은 누구인가요?

 

모두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예요. 

 

사실 킬링필드의 감독 롤랑 조페는 미션, 씨티오브조이, 킬링필드 등의 영화가 있는데요. 대부분 서양인이 미개한 나라에 들어가서 그들을 구원한다는 공식에 의해 영화를 만든다는 주장이 있어요. 

 

시대 배경을 빼고 영화라고만 봤을 때는 재미있는 영화라고만 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킬링필드는 70년대의 일이고 영화는 84년에 만들어지는데요. 4-5년 전의 현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잖아요. 전 세계 사람들은 그 영화를 통해서 킬링필드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죠. 

 

미국이 1969년에서 1973년에 캄보디아를 폭격했잖아요. 크메르 루주와 킬링필드를 극대화 시켜서 미국의 잘못을 없어졌네요.

 

영화는 론 놀 정권 때 미국이 폭격한 것에는 책임이 없다고 떠넘기고 있는 것 같아요. 

 

론 놀 정부는 친미정권이잖아요. 그래서 자국인 미국에 캄보디아에 폭격을 해도 된다고 허가했습니다. 미군의 폭격을 몇 명의 사람들이 죽었고, 얼마나 많은 양의 폭탄이 터졌나요?

 

벤, 솔

약 50만 톤이요. 

 

벤 

크메르 루주가 집권하기 전에 약 50만톤에 달하는 폭탄을 캄보디아에 투하했죠. 2차대전 당시에 일본에 투하한 폭탄의 양의 3~5배 정도 된다고 하죠. 이 폭격을 하면서 크메르 루주와 킬링필드가 만들어 진거네요.

 

하지만 미국은 자신에게 책임이 없고, 크메르 루주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 씌운 것이군요. 미국의 정치적 판단이 겹치면서 미국의 잘못은 덮혀진 것이고요. 오마이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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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캄보디아 사람이라면'

 

만약 우리가 캄보디아 국민이라면, 이런 상황이 어땠을까요? 만약 여러분이 그 시대의 캄보디아 국민이라면, 크메르 루주를 지지할까요? 론 놀을 지지할까요?

 

씨제이

무섭죠. 정부가 우리를 버린 것 같아요. 정부를 싫어하겠죠. 

 

크메르 루주를 지지할 것 같아요. 

 

크메르 루주를 지지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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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크메르 루주는 1975년에 결국 집권합니다. 그 후에 우리가 간 킬링필드와 뚜올슬랭박물관 등에서 1975~79년까지 많은 사람이 죽죠. 

만약 여러분이 크메르 루주라면, 누구를 숙청할까요?

 

씨제이

론놀? 

 

레몬

미군의 폭격에 의한 학살이 많이 있어서, 론 놀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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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숫자’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캄보디아에서 학살과 폭격으로 인해 죽은 사람은 모두 150~200만명에 이른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벤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크메르 루주의 킬링필드에서 죽은 사람이 몇 명인가요?

 

150~200만명입니다.

 

무언가 이상하지 않나요?

 

미국의 학살과 숫자가 합쳐진 거네요. 그래서 핀란드가 조사한 바로는 100만명이 크메르 루주에 의해서 죽었고, 미국의 폭격에 의해 60만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깊게 들어가면 이렇게 조금씩 나옵니다. 하지만 보통은 크메르 루주가 150~200만 명을 죽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자세하게 알아보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나왔죠. 아이러니하지만, 이면에 있는 다른 진실을 찾는 것은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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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키신저'

 

테디

지난 베트남 전쟁 세미나에서 헨리 키신저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이었죠. 하지만 미국의 캄보디아 폭격을  기획한 사람이기도 해요.

 

그래서 헨리 키신저가 크메르 루주의 악행을 더욱 부각시킨다고 레몬이 이야기한 것이구나. 

 

그런 그가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킨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는 자체가 아이러니합니다.

 

벤 

폭격으로부터 불과 1년 뒤에 노벨 평화상을 받는군요. 

 

한사람의 인생을 보더라도 어떤 정보를 보느냐에 따라서 그가 선인인지 악인인지 달라집니다. 재미있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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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

 

 

다시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요. 또 다른 사실을 안 뒤에는 영화 킬링필드를 생각해보니 어떤 생각이 드나요?

 

영화를 본 후에 네 명이 다 똑같이 생각한거잖아요. 재미있고, 크메르 루주가 나쁘다고 생각하잖아요. 미디어의 힘이 크다고 생각해요. 영화 개봉 당시에도 본 사람들이 많았을 테고요. 

 

미디어를 볼 때 의심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사람들도 의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레몬

모르고 보면 미국은 선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씨제이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바로 믿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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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나라'

 

우리나라의 역사로 가봅시다.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였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우리는 독립 후에 무얼 해야 할까요?

 

씨제이

대통령을 뽑아야죠. 

 

중요합니다. 또 뭐가 있을까요?

 

일본의 세력을 없에야죠. 

 

씨제이

친일파는 독립운동 하는 사람들을 잡아가고요. 한국 사람인데, 일본을 도와주는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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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그런 친일파를 독립 후에 어떻게 하고 싶어요?

 

씨제이

숙청해야 하죠. 일본으로 쫒아내야 해요.

 

죽여야 해요.

 

합당한 벌을 받게 해야하죠.

 

레몬

한국에서 다른 나라로 보내버리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친일파는 벌을 받거나 숙청을 당했나요?

 

씨제이

아니오. 더 잘살고 있죠.

 

그러면 다시 그 시대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고 싶어요?

 

미리 뿌리까지 뽑아야 할 것 같아요.

 

지위를 다 끌어내고 재산을 몰수해야 해요.

 

씨제이

재산몰수하고, 친일파를 일본으로 보내버리는게 낫죠.

 

레몬

다른 나라로 보내요.

 

 

‘반전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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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생각들을 실행한 것이 크메르 루주잖아요. 크메르 루주는 론놀 정부에 붙어서 돈을 벌고 세력을 잡은 사람을 죽이려고 모든 사람을 죽였잖아요. 

우리가 지금 이야기했잖아요. 없애고 싶다, 벌을 받아야 한다, 재산을 몰수해야한다. 이 모든 것을 크메르 루주가 똑같이 한거예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시작점은 맞다고 생각했는데,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이 가버린 것 같아요.

 

벤의 말도 맞지만, 모든 원인은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있고, 캄보디아는 미국에게 있었던 것 같아요. 

 

테디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테디

크메르 루주의 학살 범위나 정도가 심한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역시 같은 잘못을 저지른 나라와 단체들이 모든 잘못을 뒤집어 씌운 거죠. 크메르 루주를 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숨겨진 또 다른 진실을 못 봐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정보를 너무 믿지 말고, 모든 정보를 세세하게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까요.

 

현실로 돌아와서 한가지 질문을 스스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지금 이순간 2018년 1월. 친일파를 처단해야 할까요?

 

씨제이

경제가 망하는 것 아닌가요? 친일파의 후손이 경제를 아주 세게 잡고 있는... 아 이거 어떻게 해야하지?

 

벤자민

처벌해야하는 것은 맞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봐요. 축출하기가 힘들 것 같아요. 그들이 너무 세력이 세니까요. 정말 잘 모르겠어요. 어떤 방안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친일파의 후손에게도 약간의 책임은 있지만, 직접적인 잘못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인식이 사람들에게 확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경제를 잡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과정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시절에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도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져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요.

 

레몬

옛날 친일파들의 일을 알려줘야 할 것 같아요. 

 

씨제이

친일파든 후손이든 우리나라 경제를 잡고 있다고 했잖아요. 문제는 친일파를 다 잡는다고 하면, 경제가 날라갈 수도 있는데요. 처벌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예요. 우리나라의 경제가 흔들리지 않는 선에서 처벌하고 싶어요. 

 

현재로써 한번에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저희는 이 일을 잊으면 안되고, 항상 기억해야해요. 최대한 이 사실에 대해서 널리 알려야 해요. 그러면 조금씩이라도 이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늘게 될 것이고, 언젠가는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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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렇게 한 번 생각해봤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주 뿌듯합니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역사를 공부했다고 생각했잖아요. 하지만 우리에게도 비슷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우리 역사를 너무 모르고 있죠. 일본이 35년간 지배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죠. 

 

사실 캄보디아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역사를 대해서 잘 모릅니다. 안타까운 현실인데요. 역사를 알아야 우리의 현실을 알수 있고, 미래를 그릴수 있다고 조금씩 알아가고 있잖아요. 우리가 역사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고, 앞으로 여러분이 한국의 근현대사 책을 읽게 되거나 접하게 된다면 훨씬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수고 하셨고요. 물론 우리가 뒤돌아 서면 모든 것을 까먹을 수도 있어요. 우리가 역사를 다양하게 볼 수 있는 계기였으면 좋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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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란 무엇일까요. 

철학의 시작이기도 한 이 어려운 주제는 언제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다만 세미나를 통해서 나른 사람을 통해서가 아닌 우리의 눈으로 역사를 보는 것. 

그리고 내가 아는 것 외 또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거기에서 역사공부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주제인 킬링필드를 공부하느라 다들 수고 많았어요.

피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