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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7 [18’ 동남아 피스로드] #22. 전쟁이란 무엇인가 <베트남 전쟁 세미나> 2018.01.26

 

 

씬짜오! 테디입니다. 오늘은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바로 '베트남 전쟁'이야기입니다. 

 

'베트남 전쟁'이란 무엇일까요?

아마 친구들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할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전쟁 세미나'라고 하니까 다들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더군요.

 

베트남 전쟁 세미나는

베트남 전쟁이라는 큰 주제를 나누어 공부하고 

그것을 함께 나누는 과정입니다. 

 

'베트남 전쟁이란?' 을 맡은 솔.

'베트남 전쟁의 참전국과 참전군인 수, 사상자 수 그리고 양민학살'을 맡은 씨제이

'고엽제란 무엇인가? & 고엽제의 피해'를 맡은 레몬

'통킹만 사건과 헨리 키신저'를 맡은 벤자민.

 

친구들은 박물관, 자료, 책, 영화, 검색, 인터뷰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를 하며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다른 친구들과 나누는 시간입니다. 

 

이름조차 생소한 베트남 전쟁 이야기. 

친구들과 함께 조금씩 나눠볼까요?

 

베트남 호치민에서 열린 전쟁 세미나,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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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첫 주제를 맡은 솔을 박수로 환영합니다.

 

'베트남 전쟁이란?'을 준비한 솔의 이야기 들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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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이란? - 솔'

 

베트남 전쟁은 1955년부터 1975년까지 벌어진 전쟁입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졌던 베트남 사이에 일어나 내전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으로 여겨지면서 외국의 군대들이 개입하게 되어 국제전으로 확대됩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남베트남, 공산주의체제는 북베트남 이었습니다.  그럼 남 베트남에는 프랑스와 미국, 북 베트남에는 소련과 중국이 뒷받침해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조금씩 이 전쟁에 개입하고 있었습니다. 남베트남에 대통령을 본인들이 선출하였습니다. 선출 되 사람의 이름은 응우엔 지엠. 지엠은 가톨릭 신자이자, 철저한 반공주의자 였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억압하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자들은 사형에 처하게 하거나 감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후에는 법안을 발표하여 반정부 투쟁 가담자는 사형시키고  재산을 몰수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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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지엠정부에 반하는 단체인, 남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들은 제국주의 미국과 지엠정권을 타도하며 통일된 조국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은 베트콩이라고 불려지기도 했습니다. 지엠정권은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게릴라부대에 의하여 대통령자리에서 끌어내려지게 됩니다.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죠. 이 과정에서 지엠은 총격을 맞아 사망하게됩니다. 이 후에도 계속해서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정국은 혼란에 빠져있었고,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 사건은 ‘통킹만 사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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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킹만 사건은 미국의 군함이 통킹만에서 2차례 어뢰정의 공격을 북베트남에게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건입니다. 첫 번째 공격만 사실로 드러났고, 이 첫 번째 공격도 알고보니 미국이 북베트남의 영해를 침범해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미국은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북베트남에 폭격을 가했습니다. 폭격은 베트남을 벗어난 주변국가에도 향해 있었는데 그 이유는 호찌민 루트를 파괴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미국은 여러가지 이유를 대면서 미군파병수를 늘렸습니다. 하지만 작전을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탈영병은 점점 늘어져갔습니다. 북 베트남과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구정 대공세 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철군 계획을 발표합니다. 계획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남베트남의 군인들을 강화시켜 스스로 방어하도록 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분쟁확산의 방지를 위해 미군이 계속 개입을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미국이 계획을 정비할 때 북 베트남에서는 호찌민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박물관에서 찾은, 당시 폭격의 참상을 자료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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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국인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베트남전쟁에서 중립을 선언했지만, 북 베트남의 기지가 캄보디아의 영토에 있었고, 라오스 영토 내에는 호찌민 루트가 있었습니다. 미국과 남베트남은 이것을 파괴하기 위해 미군을 끌어들였습니다. 이 일로 인해 미국내의 베트남 전 반대 운동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닉슨의 국가 안보 자문이었던 헨리키신저는 북베트남의 레득토와 비밀리에 협상을 지속하고 있었습니다. 둘은 합의에 도달했으나 남 베트남 대통령은 대부분의 협상내용을 바꿀 것은 요구했다. 북 베트남은 협상내용을 발표했고 이에 대해 닉슨 정부는 북 베트남을 비난했습니다. 미국은 유리한 협정조건을 얻어내기 위해 무차별 폭격을 시작했습니다. 폭탄은 히로시마 원자 폭탄의 5배에 향하는 양이었습니다. 결국 미국은 남 베트남의 대통령을 압박했고 남북 양자 간 평화 유지와 미군 철수를 협상조건으로 승인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을 공식적으로 종결하였습니다. 평화협정이 체결된 후 북 베트남과 민족해방전선은 바로 남 베트남과의 전쟁준비 태세로 돌입하였습니다. 북 베트남은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었고 남 베트남의 절반 이상을 얻게 되자 사이공을 공격 하라는 최종명령을 받게 됩니다. 북 베트남은 사이공을 함락시켰고 탱크가 남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깃발을 들고 사이공 대통령 철문을 부수고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베트남 전쟁은 종료되었습니다.

 

(현재 '통일궁'이라고 불리는 남베트남 대통령궁입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곳이죠. 미션을 하며 직접 찍어온 사진을 자료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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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의 자료를 보던 모두가 웃음이 터진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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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을 끝낸 탱크와 함께 선 솔이

어쩐지 귀여워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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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이란?'을 맡은 솔의 주제, 잘 들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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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있습니다!'

 

3분 스피치가 지난 뒤에는, 친구들이 주제와 관련된 질문을 합니다. 

각 주제별로 발표를 한 친구들은 해당분야 전문가로써 나름의 답을 하는데요.

 

'베트남 전쟁이란?'에 대한 친구들의 신선한 일문일답, 한 번 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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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남베트남에는 자본주의 체제가, 북베트남에는 공산주의 체제가 들어섰다고 했는데,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뭔지 개념을 정리해주실 수 있나요? 공산주의도 나라별로 주장이 조금 다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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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보니 자본주의의 정의는 ‘재화의 사적 소유권을 사회구성원의 양도로 불가능한 기본권을 인정하는 사회구성체.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와 기업이 이익추구를 위해 생산활동을 추구하는 사회 경제체제라고 정의되어 있었습니다. 공산주의는 자본가 계급이 소멸 및 노동자 계급이 주체가 된 생산수단에 공공소유에 기반을 둔 무계급 사회조직이라고 나와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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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전쟁은 왜 일어났던거죠?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이 갈라진 이유가 각자 추구하는 체제가 달랐어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서 외세의 개입이 생기며 일이 커진 전쟁이라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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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바 협정에 보면, 잠시 분단한 뒤 총선거를 통해서 통일을 한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싸워서 나뉜게 아니고, 마음대로 가른 거네요?

 

남베트남이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 있었어요. 다음으로 미국이 들어왔고요. 미국이 들어왔을 때 남베트남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어요. 국민의 의견과는 달리 자본주의 국가가 들어서면서 두 체제가 들어선건 아닌가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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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베트남 종교는 불교 아닌가요? 그런데 지엠은 왜 불교를 탄압했나요?

 

제 생각에는 지엠은 기독교 신자이며 반공주의자였어요. 하지만 북의 공산주의자가 추구하는면서 불교를 유지했고요. 지엠이 극단적으로 해서 그런거 아닌가 싶어요. 

 

레몬

미군은 왜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베트콩으로 의심했습니까?

 

베트콩이라 하면 얼굴에 써진 것도 아니라서 모르기에 임무인 베트콩 죽이기를 하며 무차별적인 학살을 한거죠. 민간인 학살도 많았다고 하는데, 전쟁을 하면 민간인 학살은 당연히 따라온다고 생각해요. 왜 죽였냐고 묻는다면, 전쟁을 해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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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 베트콩이라 부르잖아요. 그것은 분단 이후에 결성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나중에 생긴 호찌민 루트는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이 생길 것을 미리 예상하고 만들어 진 것인가?

 

그것은 호찌민이 알지 않을까요. (하하하) 

저는 모르겠어요. 남쪽에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연결된 루트를 만든게 아닐까요? 필요하니까 만들었겠죠.

 

그런데 남베트남 사람들이 미군보다 베트콩을 더 잘 숨겨주고 했다는데 왜 그랬을까요?

 

베트콩이라는 단어에서부터 정의를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지엠이 자기의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베트콩이라 불렀죠. 미국의 입장에서는 민족해방전선이든 북이든 반대하는 세력이기에 베트콩이라고 지칭하는게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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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제이

베트남 전쟁 결말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간 통일궁이 마지막 요새였던 거예요. 수도니까 여기가 쓰러지면 끝난거죠. 아까 본 이 북베트남 탱크가 정문 큰 입구로 쳐들어가서 항복하고 끝이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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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엠 정권이 쿠데타로 무너졌다고 했어요. 북베트남은 미국이 나가고 나서 55일만에 통일을 했다고 하는데, 만약 미국 개입하기 전에 무력통일을 했다면 희생자를 줄이고 빨리 통일을 하지 않았을까요?

 

미국이 보이지 않게 개입을 안 한 것이지, 뒤에선 다 했다고 생각해요. 

 

군사들이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책에서 보기로는 북베트남이 판단하기로 남베트남의 지엠 정권 때 혼돈의 시기를 겪었기에 알아서 해체가 될 거라고 생각했대요. 그 혼란을 타고 공격하면 바로 흡수가 될 줄 알았대요. 우리나라로 치면, 북한이 6.25때 쳐들어 왔을 때 우리 스스로 해체를 해서 통일이 될 줄 알았다고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솔의 이야기 여기까지 들어볼게요. 수고했어요!

 

"예레~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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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의 참전국과 참전군인 수, 사상자 수 그리고 양민학살 - 씨제이'

 

주제가 참 길죠? 하지만 베트남 전쟁하면 빠질 수 없는 주제입니다.

이어서 '베트남 전쟁의 참전국과 참전군인 수, 사상자 수 그리고 양민학살'이란 주제를 맡은 씨제이의 설명을 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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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의 참전국과 참전군인 수, 사상자 수'

 

베트남 공화국

미국.                    536,100명 병력/58,315명 전사/303,644명 부상

뉴질랜드.                     552명 병력/37명 전사.      /187명 부상

대한민국.                50,000명 병력/5,099명 전사 /10,962명 부상.  /4명 실종

오스트레일리아.          7,672명 병력/500명 전사.   /3,129명 부상

중화인민공화국.      170.000명 병력/1,100명 전사. /4,200명 부상

태국.                        11,586명 병력/351명 전사.   /1,358명 부상

필리핀.                       2,061명 병력/9명 전사.      /64명 부상

중화민국.                    25명 사망(?)

북한                            200명 병력/14명 전사/

소련

파테트라오

크메르 공화국

라오스                  사망: 20,000명–62,000명

캄보디아                사망: 240,000명–300,000명

베트남 민주 공화국

남베트남 민주 해방 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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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베트남 (전체)지원국.              ㅣ. 북베트남 (전체)지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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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자                                     ㅣ.   전사자

479,668명–807,311명.           ㅣ.   510,114명–1,166,114명

                                              ㅣ

부상자1,490,000 이상.       ㅣ. 부상자  604,200명 이하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베트남

 민간인 사망: 627,000명–2,000,000명

베트남인 사망 : 966,000명–3,812,000명

해외군 사망: 65,425명

전사자: 1,291,425명–4,211,451명

 

 

'양민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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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니・퐁넛 학살 사건                                                        ㅣ퐁니 퐁넛 마을이란?

 베트남 꽝남 성 디엔반 현 퐁니- 퐁넛 마을,                   ㅣ미군의 전략으로 안전마을로 분류된곳,미국 해병대와 잽소대와

 대한민국 청룡부대에 의해 70여 명이 학살당한             ㅣ자매결연을 한곳.

 전쟁범죄다                                                              ㅣ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2000년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가 

진상조사를 벌리면서 사건의 전말이 알려짐

 

사건경위

          1968년 1월 30일부터 2월 29일까지 ‘괴롱 1호 작전’을 벌임.

          이 작전은 베트남 인민군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구정 대공세에 맞선것,

           ‘구정 공세 반격작전’이라고 불림

           아무튼 1968년 2월 12일 오전 11시 무렵 퐁넛마을을 지나던

          청룡부대 1중대가 퐁니마을과 퐁넛마을의 민간이 70여명을 학살,

 

           안전마을인 퐁니,퐁넛마을 민간인 학살이 일어나자

          남베트남 정부가 미국에 강력히 항의,미군의 독자적인 조사 시작,

          미군 사령부 감찰부는 조사결과를 미군 사령관&고의장성에게 보고,

          보고서에는 20여장의 사진첨부,A4용지규격 총 554장 구성

          내용은 한국군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잔혹행위를 하고 사람들을 학살했다

           보고, 이 보고서는 기밀문서로 분류되었다가 30년후 비밀해제되었다.

           1.학살이후 그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알고있던 사실이지만 사건 은폐.뉴스에는 한줄도 안나갔다.

            2.학살이후 2013년 대한민국 대변인은 ‘한국군이 그러한 학살을 자행한것은 불가능’이라며 사건을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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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라이학살

 

1968년 3월 16일 남베트남 미라이에서 미군에 의해 벌어진

민간인 대량학살,347녕에서 504명으로 추정되는 희생자는

모두 비무장 민간인,상당수는 여성과 아동.

몆몆 희생자는 성폭력이나 고문을 당하고,시체중 일부는 절단,

이 사건은 미군 26명이 가담, 그러나 입대한지 4개월 2주밖에 안된 

월리엄 켈리 중의만 유죄판결

 

 

학살

공격용 헬기를 통하여 소구경 대포와 함께 미라이에

진입했으나 적군을 찾을수 없었다.

미군들은 가옥을 수색, 사람들을 마을 한가운데로 몰아세운후 

자동화기(기관총)로 학살, 1소대는 70~80명의 사람들을,

2소대는 60~70명의 사람들을 학살.

3소대는 도주하는 ‘적’을 추적하여 12명의 여성과 아동을 사살,

찰리 중대가 작전완료를 보고, 4대대가 미케 4촌락 도착 후 90명 이상을 학살,

이후 2틀간 작전지역의 가옥과 우울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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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미 마을 학살 사건

1968년 2월 22일 대한민국 해병대소속의 청룡부대가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 현에 위치한 마을에

비무장 민간인 135명을 학살하고 매장한 사건.

 

 

학살

1968년 2월 22일 청룡부대의 3소대가 하미마을을 3방향에서

애워싸 들어오며 마을 사람들을 따로 3곳에 모았다.

장교의 지시로 총이 발사되고, 마을 30가구 135명이 2시간만에 학살,

학살이 끝난후 몆 안되는 생존자들이 무덤을 만들었는데,

한국군이 불도져를 가져와 무덤을 판후 시체를 한번에 묻어버림.

 

생존자 증언으론 며칠전에 한국군이 와서 빵을 주고 그랬기에 사이도 좋아

죽일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한국군이 불러 모을떄 저항은 커녕 도망도 안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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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호아학살

1966년12월 3일부터 6일까지 대한민국 해병대의 청룡부대에 의해

430명의 마을주민이 학살을 당한 대량학살 사건,

이 학살의 희생자는 여성, 노인, 어린이 였으며 임산부도 있었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한국-미국군에 대항하기 위해 베트콩에 가입.

 

 

학살

1966년 12월 5일 출라이지역에 주둔하고있던 해병대 청룡여단

1개 대대가 빈호아로 행군, 그들은 36명을 쯩빈 폭탄구덩이에 넣고

쏘아 죽임. 다음날 꺼우안폭 마을로 밀고 들어가 273녕의 양민을 

모아놓고 각종 무기로 학살.

모두 참혹하게 죽고 겨우 14명만 생존

 

 

*베트남 정치국 전쟁범죄 보고서

 

한국군에 의한 학살된 민간인의 “수”는 약 5천여명이 넘는것으로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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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양민학살에 대해서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하는 씨제이의 말을 들으며, 

전쟁의 끔찍함이 현실로 느껴져서 참 무서웠습니다. 

 

처음에는 세미나가 어려울 것 같다던 씨제이가 

깊은 울림이 있는 발표를 마친 뒤엔 사뭇 달라보이는데요.

 

질문 시간이 되자 오히려 '질문 하실 분 있습니까?'하고

되물으며 자신감에 찬 모습입니다.^^

 

씨제이의 한마디에 사람들은 박장대소합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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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메이커 씨제이의 모습에 

다른 친구들도 더욱 힘을 얻어 질문을 던집니다.

 

"질문 하실 분 있습니까?"

"네, 제가 질문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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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은 왜 당시에 민간인 학살을 숨겼을까요?

 

씨제이

한국이 민간인 학살을 숨긴 이유는 한국의 이미지가 떨어지기 때문에 학살 사실을 부정한걸로 추정합니다. 다음 질문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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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미라이 학살에서 미군에 의해 대량학살을 했는데요. 가담한 26명 중 1명만 유죄판결을 받았나요?

 

씨제이

제 추측으로는 내가 안 했다, 이놈이 했다라고 다 미뤄서 마지막 한 명만 남은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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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의 베트남 전쟁 인식에 대해서는 나쁜 인식이 적다고 생각해요. 파병함으로 경제발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반면, 많은 희생자가 있다는 생각은 좀 적은 것 같아요. 베트남에는 매년 집마다 가족 단위로 ‘따이한 제사’를 지낸대요. 한국군에 의해서 죽은 가족의 제사를 지내는 거죠. 한국군이 베트남 파병와서 한 민간인 학살로 인해 제사의 풍습까지 만들고, 성폭력 등의 만행을 저질렀는데, 거기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가 궁금합니다. 

 

씨제이

한국군이 외국에서 민간인 학살했다는게 마음이 안 좋고요. 저는 해병대 가면 좀 그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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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한국 정부에서는 학살이 없다고 했잖아요. 씨제이가 정부였다면 어떻게 이야기했을 것 같아요?

 

씨제이

당연히 사과를 해야하고요. 한국이 학살이 있었다고 인정하고, 한국의 이미지가 추락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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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학살이 일어난 이유가 뭘까요?

 

씨제이

제 추측으로는 적을 죽여야 하는데 찾기 어려우니까 닥치고 다 죽인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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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베트남에 32만 명을 파병했는데요. 힌국전쟁이 일어난지 15년 만에 파병을 했어요. 왜 파병을 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씨제이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 경제 때문에 보낸 걸로 알고 있어요. 또 다른 질문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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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보충하자면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군을 보내지 않으면 주한미군이 베트남으로 파병을 가니까 한국의 군사력이 약해지니까 한국군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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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제이

감사합니다.

 

테디

다들 수고 많으셨어요. 박수!

 

씨제이

좋은 의견을 보충해준 솔에게도 박수!

 

모두

와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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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하면 고엽제도 빠질 수 없죠.

고엽제란 무엇인가, 그리고 고엽제의 피해에 대해서 레몬이 조사했습니다.

 

(긴장이 되는지 발표 전에 물 한 입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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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란 무엇인가? 그리고 고엽제의 피해 - 레몬'

 

고엽제는 우선 1961년~1971년까지 10여년간 베트남 농촌지역을 포함하여 인도차이나 반도 곳곳에 사용이 되었고 고엽제가 밀림을 황폐하게 하였고 먹이사슬을 통한 독성물질 전파로 인해 생태계가 많이 파괴하였고사람들과 생물들이 질병과 선천적 기형으로 고통받고 있다. 고엽제 에는 다이옥신이라는 화학물질이 들어있는데 이것의 치사량이 0.15g 이였고 청산가리의 1만배이고 비소의 3000배입니다. 그리고 이것의독소가 분해되지않고 인체에10~25년 축척 되서 각종암이나 신경계손상이 생깁니다.미군이 적이 밀림속에 숨지못하게 고엽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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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적이 밀림속에 숨지못하도록 고엽제를 사용했고 고엽제는 군 의탁의 의해 다우케미컬, 몬산토, 발레로 에너지에 지원을 받아서 열림우림을 파괴할수있는 강렬한 제초제를 개발한다. 고엽제는 무지개 제초제 라고 불린 이둘 제초제는 조성물질이 따라 에이전트핑크,에이전트그린,에이전트퍼플,에이전트불루,에이전트화이트,에이전트 오렌지등...으로 불린다. 에이전트 오렌지는 다이옥신이라는 매우독성이 세고 강한 제초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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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베트남 전쟁때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에 약 45.000.000리터거 에이전트 오렌지가 살포 됐다.그치만 미국 재향인국에 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전쟁 때 사용된 고엽제 의 양은 83,600,000리터로 많은 양이 살포되었다.  특히 메콩강 삼각주 지역의 밀림을 파괴하기 위한 랜치핸드작전에 집중 투입!! 고엽제는 밀림 뿐만 아니라 논 밭에도 살포!! 고엽제가 살포된 숲과 경작지의 면적은 24,000여km2 이며 베트남국토의 13%를 차지 해당!! 2006년 당시 베트남정부는 다이옥신 중독의 의한 피해 받는 사람의 수가 4백만명에 달한다.

 

그치만 배트남의 다이옥신중독과 에이전트 오렌지의 과학적인 상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2011년 당시 베트남의 일부의 지역에서 국제허용기준 100배가 넘는 많은 다이옥신이 검출!! 베트남전쟁중 미군측과 한국군에서 고엽제로 인한 많은 피해가 났다. 전립선암, 폐암, 다발성 골수종, 2성 당뇨병, 림프종 등...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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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고엽제는 본 목적은 말라리아를 매개시키고 모기나 거머리를 퇴치시키기 위해 살포 했다만 사실로는 베트콩이 은신한 살림을 고사시키고 게릴라 장악지역의 농업기반인경작지를 파괴할 목적으로 사용 되었다. 베트남 전쟁때 사용된 고엽제 의 중요한것은 2.4 디클로로 페녹시 아세트산(2.4D)와2.4.5 트리클로로 페녹시 아세트산(2.4.5T)가 혼합이 되어서 디 벤조 파라 다이옥신(TCDD)가 포함이되어 부산물로서 2.4.5T 제보다 더 많은 2.3.7.8 테르라 클로로디 벤조 다이옥신(TCDD)가 생성의 고엽제 의 주성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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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베트남 전쟁 시 게릴라의 근거지인 사이공 주변이나 떠이니성, 박리에우성의 등... 의 고엽제를 대량 살포했다. 고엽제는 개발초기에는 해악성 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베트남 전쟁 이후에 해악성 이 알려졌습니다.

 

 

고엽제,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는 그 말.

실제로 공부해본 친구들은 어떤 궁금증이 생겼을까요?

 

친구들의 질문과 답을 한 번 들어볼까요?

 

 

씨제이

고엽제도 방사능처럼 땅에 몇 년 간 깔려있나요?

 

레몬

그렇죠. 고엽제가 뿌려졌으니까요. 체내에는 10~20년 정도 남아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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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제이

두 번째 질문을 하겠습니다. (하하하)

고엽제 피해자들은 고엽제 회사를 고소하였나요? (하하하)

제가 양민학살을 검색하면서 고엽제도 검색했어요. 고소에 대한 이야기가 있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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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를 찌르는 씨제이의 질문에 다들 큰 웃음을 터뜨립니다.

말이 재미있어서 웃었지만, 피해보상은 사실 중요한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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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로 인해 피해를 받은 한국군, 미군, 베트남 사람들은 피해보상을 받고 있나요? 

 

레몬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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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를 무지개 제초제라고 했는데요. 왜 그렇게 색깔로 이름을 지었나요?

 

레몬 

성분에 따라 지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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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다른 건가요?

 

레몬

에이전트 오렌지에는 다이옥신이라는 강력한 제초성분이 들어있다고...

 

벤 

제가 알기로는 담았던 통 색깔로 이름을 정했다고 읽었어요. 

 

씨제이

고엽제는 비행기로 뿌렸잖아요. 연기로 뿌렸나요, 물로 뿌렸나요?

 

레몬

비행기에서 액체를 스프레이 식으로 뿌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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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를 뿌리면 어떻게 작용하나요?

 

레몬

비행기에서 뿌린 고엽제의 액체가 닿으면 시들시들해져요. 갈색으로 말라요.

 

그러면 사람이 맞으면 어떻게 되나요? 사람이 갈색으로 마르진 않잖아요.

 

레몬

사람 몸에 축적이 되서 질병이 생긴대요. 공기로 인해 들어간다고 해요.

 

농약 같은 건가요?

 

레몬 

네, 농약이나 살충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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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 피해는 구체적으로 어떤가요?

 

레몬

전립선 암, 폐암, 다발성 골수병, 당뇨병 등 다양한 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어요. 

농촌은 농작물이 다 마르는 피해를 받았다고 합니다.  

 

인체에 10~15년간 축적 된다고 하셨는데, 그럼 지금은 피해가 없나요?

 

레몬

2011년 당시에도 100배가 넘는 다이옥신이 검출되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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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제이

유전자로 전해지는 건가요?

 

레몬

기형성 유발이 되고 독성이 유전이 되어서 2세에게도 피해를 줍니다. 

 

고엽제의 치사량은 어떻게 되나요?

 

레몬

0.15g인데 청산가리의 1만배이고 비소의 30배라고 합니다. 

 

수     

0.15g 치사량이라고 하는데, 그게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되나요? 

 

그게 눈에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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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제이 

0.15g만 먹어도 죽는 거예요?

 

그러니까 공기중에 뿌려도 안보이니까 죽거나 체내에 축적이 되죠. 

 

베트남 캄보디아에서 4500만 리터를 뿌렸다고 해요.

 

 

 

고엽제를 조사한, 레몬 수고하셨습니다!

 

 


 

 

'통킹만 사건과 헨리 키신저 - 벤자민'

 

마지막으로 통킹만 사건과 헨리 키신저라는 주제를 맡은 벤자민입니다. 

벤자민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볼까요? 박수로 벤자민을 모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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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베트남 전쟁 세미나에서 통킹 만 사건과 헨리 키신저를 맡은 벤자민입니다.

 

그럼 먼저 통킹 만 사건에 대하여 소개하겠습니다. 제 2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초기에 민족통일을 목표로하는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의 국내 통일 전쟁이였습니다. 하지만 이 후 미국이 전쟁에 개입하게 되는 계기가 바로 통킹 만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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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이제 통킹 만 사건에 대하여 조금 구체적으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964년 8월 2일 베트남 연안에서 정찰 중이던 미국의 매덕스 구축함이 통킹 만에서 북베트남의 어뢰장으로 부터 공격을 받았고, 이틀 뒤 같은 장소에서 매덕스와 터너조이 구축함이 또 한 차례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미국은 북베트남의 어뢰장과 원유저장고를 공격했고, 8월 7일 미국 의회는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어떠한 결정도 의회의 동의없이 내릴 수 있도록 모든 권한을 위임했습니다. 그 이후 10년간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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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통킹 만 사건은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는 다리를 놓아준 사건입니다. 하지만 이 통킹 만 사건에는 숨겨진 왜곡이 있었습니다. 먼저 8월 2일 통킹 만에서 매덕스 구축함은 북베트남의 영역을 침범하고, 그곳에서 순찰이 아닌 정찰 임무를 수행 중이었습니다. 또한 8월 4일 매덕스 와 터너조이 구축함은 북베트남의 공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먼저 그 당시 매덕스 호의 존 혜릭 대령은 공격을 받고 올린 전문에서 엔진소리를 어뢰의 공격으로 잘못 탐지한 것 같다고 했으며, 2005년 기밀 해제된 미국 국가 안전국의 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에는 8월 4일 어뢰장의 공격은 없었다고 기록이 되어있었습니다. 그 이외에도 많은 통킹 만 사건 연구가들은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조작했다고 주장합니다. 이처럼 통킹 만 사건은 발생하지도 않았던 공격을 빌미로 250만명의 미군, 32만명의 한국군 그리고 그 당시에 전쟁터에 있었던 베트남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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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킹만 사건으로 시작된 베트남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픔이 되었죠.

전쟁 박물관에서 찾은 통킹만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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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통킹만 사건을 보도한 뉴욕타임스의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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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헨리 키신저입니다. 헨리 키신저는 사실 사람 이름입니다. 그는 그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이었으며, 노벨 평화상의 수상자입니다. 헨리 키신저는 1974년 미국의 철수를 이끌었는데요, 그는 북베트남의 외무장관 레득토와 비밀리에 협상을 하였고, 1972년 8월 키신저와 토는 합의점을 찾습니다. 이 후 파리 평화 협정으로 미국은 남베트남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되고요. 

 

이렇게 통킹 만 사건부터 핸리 키신저와 레득토의 파리 평화 협정까지 미국은 약 10년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많은 사상자와 지원낭비를 하였고, 미국의 도움요청으로 참전한 한국 역시 많은 사람, 군인들이 희생당했습니다. 베트남 사람 역시도요..

 

여기까지가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과 철수를 담은 통킹 만 사건과 헨리 키신저에 대한 저의 세미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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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에서 미국 참전의 빌미가 되었던 '통킹만 사건'이 조작이었다. 흥미롭습니다. 

베트남 전쟁을 정전시킨 공로고 노벨 평화상을 받은 헨리 키신저라는 사람도 알게 되었네요.

 

하지만 여전히 궁금한 점이 많이 남는데요.

이야기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씨제이

통킹만 사건 신문의 출처가 어떻게 되나요? (하하하)

 

구글에서 통킹만과 펜타곤 페이퍼를 검색해서 영어로 찾은 영자 신문이 많습니다. 

 

씨제이

통킹만 사건 때 정찰을 했다고 했는데, 왜 정찰을 했나요? 고위직이 지시를 한건가요, 군대가 알아서 한건가요?

 

참전은 하지 않았지만, 남베트남 뒤에 있었고요. 북베트남의 동태를 살피려고 정찰을 했어요. 순찰이 아니라 정찰을 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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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

순찰과 정찰이 어떻게 다른거죠?

 

순찰은 마실나오듯히 살짝 나온거고, 정찰은 그 지역을 완벽히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레몬

조작된 통킹만 사건으로 미국이 참전했는데요. 무엇이 조작되었나요?

 

8월 4일 공격 받은 것 자체가 조작입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할 명분으로 통킹만 사건을 조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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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키신저가 협상을 잘해서 노벨 평화상을 받고, 결국 미국이 철수하는 결과를 만들었잖아요. 그런데 미국과 남베트남이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점하기 위해 베트남에 폭격을 확대하고, 핵무기 옵션도 거론했어요. 이 과정이 북베트남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그렇게 진행했는데, 그것은 잘못되었어요. 닉슨독트린이라고 닉슨이 한 계획인데, 베트남화를 시켰어요. 미국에서도 반대운동이 굉장히 심했고요. 구정대공세 이후 철수 계획있다고 나와요. 처음에 무력으로 하려고 한 리처드 닉슨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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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키신저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헨리키신저가 파리 평화협정을 레득토와 맺은 것은 사실이고요. 그 결과 미국이 철수를 해서 노벨평화상을 받았는데요. 그게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미군이 철수하긴 했지만, 그 이전 상황이 평화롭진 않았잖아요. 진정한 평화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헨리 키신저가 그 이후에 어떤 일을 했는지 알고 있나요?

 

그 부분은 잘 모르겠습니다.

 

씨제이

통킹만 사건에서 미군이 정찰을 했다고 하는데, 정찰을 비행기로 했나요, 배로 했나요?

 

벤 

매덕스 구축함이라는 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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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헨리 키신저는 왜 레특토와 비밀 협상을 했나요?

 

미국이 봤을 때 전쟁에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고요. 끝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죠. 미국이 철수 했을 때 졌다는 이미지를 안 남기기 위해서 파리평화협정도 맺고, 닉슨 독트린이라는 베트남화도 있었던 것 같아요.

 

헨리 키신저가 협상을 맺을 때, 베트남에서 미군이 철수하되,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공격할시 적극적으로 군대를 투입한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오지 않았어요. 결국 통일이 됐는데도 그 협정을 지키지 않았고요. 그는 베트남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헸는데요. 미중 공동 성명을 이끌어냈는데, 중국 대륙과 홍콩, 마카오, 대만를 통치하는 건 오직 하나의 정부라는 원칙에 합의한다는 내용과 미국이 대만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한다는 약속을 처음으로 명문화했어요. 여기에 대만의 의지는 반영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대만은 지금도 중국이라고 말하지 않죠.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악행을 저질렀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먼저 닉슨 독트린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잖아요. 이 대,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이 있어서 하야하게 되었어요.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계승하게 되는데, 남베트남에 대한 원조를 1억달러에서 700만 달러로 삭감합니다. 

 

헨리 키신저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말인가요?

 

미국을 보자면 파리 평화협정이 깨진 건 맞지만, 헨리 키신저에 의해서 깨진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헨리 키신저가 미국의 대변인인데, 그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있어요. 그럼에도 노벨 평화상을 받고 사회적으로 인정 받은 것은 비리나 문제가 있지 않았나. 가끔 그를 훌륭하게 평가하는 글을 봤는데, 포장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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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은 벤이 발표한 내용이 헨리 키신저를 우상화하는 것처럼 들린 건가요? 벤은 어떻게 생각해요? 베트남 전을 종식시킨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고 했는데요. 제가 알기론 같이 협상한 레득토와 헨리 키신저를 공동 수상을 하기로 했는데, 레득토는 거절한 걸로 알고 있잖아요. 레득토가 거절한 이유는 뭘까요?

 

베트남에 진정한 평화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제 생각엔 파리 평화협정으로 남북이 나눠진채 끝났잖아요. 레득토는 남베트남을 칠 것을 알고, 다시 싸울 것 같으니까... 헨리 키신저는 노벨 평화상을 받고 또 전쟁이 일어났잖아요.

 

테디

헨리 키신저는 그 전엔 아무것도 안 하다가 파리 평화협정에 혜성처럼 등장했나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솔이 그 전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 같은데, 협박을 헨리 키신저가 했잖아요. 

 

그건 맞아요. 응우옌 반티에우 대통령을 살짝 협박해서 협정을 맺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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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

벤이 공부한 자료애서는 주로 공에 대해서 조사를 한 것 같아요. 그런데 과에 대해서도 함께 조사를 해야 공정한 내용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랬을 때, 과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 거예요.

 

제가 솔직히 과에 대해서 조사하지 않았어요. 생각을 안했어요. 조사를 할 생각도 제가 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평화주의자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 세미나로 여러 방면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씨제이

수고한 모두에게 박수!

 

(짝짝짝)

 

 


 

 

이제 슬슬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시간입니다.

 

 

테디

만약에 우리가 20년 동안 전쟁을 겪은 베트남 사람이었더라면, 어떨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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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직접 경험해보지 않는 이상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정말 무서울 것 같아요. 이 말로 다 표현이 안 될 수도 있는데, 공포를 정말 느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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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공감하고요. 지금은 전쟁이 끝나서 20년, 30년이라고 하잖아요. 그 당시에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이어서 힘들었을 것 같아요. 당시에는 지뢰도 밟을 수도 있고, 언제 폭격을 받을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런 공포에 살았을 것이 안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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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제이

살고 싶다가 아니라 죽어버리고 싶을 것 같아요. 사방 팔방에 폭탄이 날라오고, 여기저기서 빵빵 터지고, 두두두 총알이 날라오고. 거기서 살고 싶은 마음은 없을 것 같아요. 차라리 빨리 죽어버려서 전쟁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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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미칠 것 같아요. 무섭고요. 총알이 날라오고, 지뢰밟히고, 폭탄이 터지고, 고엽제 뿌리고요. 전쟁 중에는 1초라도 더 살려고 하는데,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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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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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자기의 이익과 위상이 있고요.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도 있고, 중국의 영향력을 막는다는 것도 있고요. 그래서 참전한거잖아요. 그건 나쁜 거죠. 책에 보니 그런 말이 있었는데요. 결정하는 건 40대고, 참전하는 건 다 20대래요. 

 

(오오~~)

 

자기 땅에서 싸운게 아니라, 남의 땅에서 싸운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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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

혹시, 우리나라가 개입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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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으로 봤을 때는 주한미군이 빠져나갈 것이라 생각했고, 국방력이 약해져서 우리나라에서도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겉으로는 경제발전이나 맞는 선택이라고 보는데, 32만 명이 희생당하고 영문도 모르고 싸운 것은 잘 못 되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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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제이

지금 한국 사람들이라면 참전을 안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베트남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거 자체가 훈장이잖아요. 전쟁에서 살아돌아왔으니, 국가유공자기도 하고요. 현재 한국 사회를 보면, 그게 무슨 대수냐고 인정받지도 못하니, 한국군으로 참여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레몬

미국이 다 하니까 우리는 옆에서 조그맣게 하니까 도움이 되지 않고, 가서 총알받이로 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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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기 전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파병 갔구나, 베트남 전쟁 갔구나 했는데요. 좋게 말해서 경제를 위해서 파병갔다고 하는데요. 솔직히 저는 팔려간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라를 위해 청년들이... 파병 간 사람들은 돈이 필요해서 간 거니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간 한국인이 사람을 죽이면서 2차 피해가 또 생기고요. 베트남 사람들도 죽고요. 악순환의 구렁텅이 빠진 듯한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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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의 의견이 달랐고 그로 인해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의견이 다른 상황에서 전쟁이 나지 않았더라면 어떤 방법으로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제네바 협정대로 총선거를 해서 호찌민이 이겨서 평화통일이 되었어야 하는게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었다고 생각해요.

 

통일이 목표라고 하면, 통일이 되는게 좋은데요. 의견이 갈려서 화합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면, 나눠져서 각자 잘 지낸다면 그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레몬

싸워서 이득이 없으면, 굳이 전쟁을 하지 않고 이득없이 살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현재 남한과 북한도 휴전상태인데요.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협상인데, 그것도 말이 통해야지 하는 거니까요. 같은 나라가 분단이 되고 마음을 합해서 통일을 한다는게 어려운 것 같아요. 통일이 되고나서도 사상 문제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대요.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됐어요.

 

씨제이

협상이 좋을 것 같아요. 그런데 협상을 잘못하면 또 전쟁이 될 수도 있는데...

 

레몬

싸워도 이득이 없으니까 말이 안 맞아도 반복해서 협상을 해야할 것 같아요.

 

한 번에는 힘들고요. 옛날에 금강산도 가고 했잖아요. 서서히 맞춰가는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교류도 하고요. 

 

전쟁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큰 주제인 ‘전쟁’에 대해서 우리 일이 아닌, 먼 나라의 일이라고 생각했잖아요. 씨제이가 학살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줘서 인상깊었는데요. 조사하면서 어땠습니까?

 

씨제이

세미나가 복잡할 것 같았고 전쟁 세미나라고 하니까 엄청 어려울 것 같았는데, 막상 하고 나니까 엄청 쉽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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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접근입니다! 쉬웠는데, 내용들을 알아보고 난 뒤에 느낌은 어땠어요?

 

씨제이

양민학살을 보니까 퐁니 퐁넛 학살만 있을 줄 알았는데, 한국군이 벌인 일이 많더라고요. 한국군에 의해 죽은 민간인의 수가 5000여명이라는데, 수가 정말 많더라고요. 기분이 좀 안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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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대한 씨제이의 생각은 어떤가요?

 

씨제이

전쟁은 현실이 아니라, 게임이나 만화속에서만 봤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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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은요? 전쟁에 대한 생각은 어때요?

 

레몬

고엽제를 공부하다보니까 안 좋았어요. 통로를 찾으려고 뿌린건데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니까 안 좋았어요. 전쟁에 대한 생각은 안 좋아요. 안 생겼으면 좋겠어요. 전쟁을 해도 사람만 죽고 자연에 피해를 주지, 이득이 없으니까요.

 

베트남 전쟁을 공부하면서 욕을 많이 했어요. 화도 많이나고, 슬펐어요. 전쟁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말 그대로 악순환인 것 같아요. 전쟁은 좋은 수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없었다면 얼마나 평화로웠을까하는 생각을 했는데요. 그것은 불가능 한 것 같고. 이제동안 있었던 전쟁을 잘 공부해서 앞으로 안 일어나도록 하는게 최선인 것 같아요. 

 

 

(친구들이 준비한 전쟁 세미나 자료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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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박물관은 어땠나요?

 

씨제이

사진 보고 놀랐어요. 사람들이 죽은 사진이나 고엽제 피해 사진등을 보니 좀... 그랬죠. 

 

레몬

고엽제를 공부하며 고엽제 피해사진을 봤어요. 새로운 것을 많이 봤어요.

 

고엽제와 양민학살 관련된 2층을 열심히 봤는데, 끔찍했어요. 고엽제로 인한 기형도 그렇고, 양민학살하던 모습도 그렇고요. 잔인했어요. 인간이 진짜... 좀 그렇더라고요.

 

박물관이 분위기 엄숙했는데요. 그런 분위기일 수 밖에 없었어요. 어떻게 사람이 저런 짓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기도 했어요. 프랑스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사람들이 봤을 심정에는 조금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자신들의 조상들이 그렇게 해왔고, 책임을 져야한다는 느낌. 

 

 

(레몬이 전쟁 박물관에서 만난 고엽제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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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박물관이라고 한다면, 당시 사용했던 총과 무기를 보여주곤 하는데요. 베트남 호치민 전쟁박물관은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한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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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대해서 사람들은 가까이서 느끼고 있는데요. 길거리에서 고엽제 피해를 본 사람 없나요?

 

고엽제 피해인지는 모르겠는데, 냐짱의 버스표 판매원이 (손가락이) 없었잖아요. 그분이 아마...

 

씨제이가 느낀 점 중에 인상깊은 게, 하기 전에는 어려웠는데 막상 하고나니까 별거 아니더라라는 말을 했잖아요. 사람들이 공부라고 하면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별거 아닌거죠.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잖아요. 

 

씨제이 

수학은 여전히 어려운데...

 

일동

아니~ 그건 좀 다르잖아!

 

수학은 조금 다른 개념이긴 한데요. 그동안 학교에서 역사를 어떻게 배웠어요?

 

씨제이

(학교에서) 역사를 배웠나?

 

전쟁이 일어난 년도, 끝난 년도, 협상한 년도, 협상한 사람을 외웠잖아요. 시험치고 나서도 기억을 하나요?

 

일동

아니오.

 

학교에서 배운 역사는 무슨 전쟁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아무도 생각 안 해요. 그것은 진짜 공부가 아닌거죠. 우리가 여행하면서 많은 곳을 가고 맛있는 걸 먹고,멋진 옷을 사입는 것도 재미있고 좋지만,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는 진짜 공부를 경험한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들 뿌듯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다들 열심히 준비하고 고민한 흔적이 느껴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

 

 


 

 

베트남 전쟁을 공부하며 다들 무엇을 느꼈나요?

그래서, 베트남 전쟁에서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냐고요?

 

그런 것은 없습니다.

복잡한 사안일수록 선과 악, 아와 비아를 나누는 다양한 시각과 의견이 있기 때문이죠. 

사실, 공부를 하는 입장에서는 그 다양한 시각을 모두 알아보는 것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는 원래, 시험문제처럼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을 때가 더 많으니까요.

 

그래서 전쟁 세미나의 정답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려주는 정답을 외우는 것이 아닌, 각자가 느끼고, 생각하고, 고민하며 찾아내는 것이 전부입니다. 

비록 정답이 없지만, 수님 말씀처럼 진짜 살아있는 생생한 공부를 한 것이지요.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피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