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ce Camp

쪽빛캠프

피스캠프 > 진행중인 캠프 > 쪽빛캠프
2018.02.28 [18' 태국 쪽캠] 피스역사재판 - 전봉준과 동학농민운동 편 2018.03.06

 

 

피스캠프에서 최초로 재판이 열렸습니다.

지금 이곳은 동학농민운동을 이끈 전봉준을 피고로 세운 재판정입니다.

 

전봉준, 조병갑, 고부 농민 등 역사 속의 인물과

변호사, 검사, 판사도 재판정에 속속 입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오늘 전봉준은 어떤 선고를 받을까요.

피스캠프 표 역사재판, 지금 시작합니다. 

 

 

batch_IMG_3244.jpg

 

 

[피고 전봉준 측]

벤 - 전봉준

마멜 - 변호사

테디 - 변호사

레몬 - 고부농민 (피고 측 증인)

 

 

batch_IMG_3220.jpg

 

 

[검사 측]

솔 - 검사

제이크 - 검사

쿠요 - 조병갑 (검사 측 증인)

 

 

batch_IMG_3222.jpg

 

 

[중립] 판사 겸 사회자 - 블루이

 

 

<재판의 시작>

 

블루이 판사 - 다들 나름대로 재판정의 권위를 생각해서 멋진 옷들을 입고 나오셨군요. (웃음) 지금부터 제 1회 쪽빛캠프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본래 재판에는 정해진 원칙과 절차가 있지만 오늘은 필요에 따라 순서를 진행해보겠습니다. 모의재판을 하는 중요한 목적은 전봉준과 동학농민운동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도 있지만, 법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도 있습니다. 또한 논리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알아야 재판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요. 그럼 시작해볼까요.

 

 

batch_IMG_3260.jpg

 

 

피고 기립해주세요. 성명, 연령, 주소지, 직업을 말씀해주세요.

 

전봉준(벤)

저의 이름은 전봉준이고요. 제 나이는 현재 41세입니다. 제 주소지는 전라북도 고부입니다. 제 직업은 다양하지만 대표적으로 농민입니다. 

 

 

batch_IMG_3248.jpg

 

 

판사

앉아주세요. 피고인은 본 재판정에서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않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거부할 수 있는 진술 거부권이 있습니다. 아울러 피고인에게 이익이 되는 사실을 진술할 권리도 있습니다. 검사 측, 모두진술을 해주세요. 모두진술은 피고의 공소사실과 죄명, 적용되는 법조를 낭독하는 것입니다.

 

솔 검사

피고는 내란죄, 외환유치죄, 공무집행방해죄, 직무강요죄, 공용서류 등 무효죄, 특수공무방해죄, 공공위험죄, 도주원조죄, 범인은닉죄, 범죄단체조직죄, 소요죄, 다중불해산죄, 공무원자격사칭죄, 폭발물에 관한 죄, 방화죄, 교통방해죄, 공익건조물파괴죄, 특수손괴죄, 특수절도죄, 횡령죄 등 20가지를 위반했습니다.

 

 

batch_IMG_3268.jpg

 

 

(검사 측이 제시한 피고 전봉준의 죄목 20가지)

 

batch_IMG_3276.jpg

 

판사

지금까지 쟁점정리를 했습니다. 증거관계의 진술 및 증거조사를 하겠습니다. 검사 측에서 3분 스피치를 해주세요.

 

솔 검사

1894년 2월 15일 고부민란이 발발했습니다. 아침일찍 말목장터에 모인 농민 전봉준을 지도자로 내세우고 두 부대로 나누어 고부관야를 향해 행진해 갔습니다. 농민들은 무기고를 부셔서 무기를 차지하고 수세로 거두어 들인 곡식 1.400 여석을 몰수하고 아전들은 처단하고 만석보를 파괴했습니다. 또 감옥에 수감된 범죄자들을 풀어주었습니다. 이는 도주원조죄 법률에 의하여 구금된 자를 탈취하거나 도주하게 하는 죄, 공무집행방해죄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하여 폭행또는 협박하는 죄, 직무강요죄 공무원에 대하여 그 직무상의 행위를 강요 또는 저지하거나 그 직을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폭행또는 협박하는 죄, 특수공무방해죄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136, 138, 140~143조의 죄를 범한 때에는 각조의 정한 형의 1/2의 까지 가중한다. 공익건조물파괴죄 공익에서 공하는 건조물을 파괴하는 죄 특수절도죄 야간에 문호또는 장벽 기타 건조물의 일부를 손괴하고 전조의 장소에 침입하여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죄 특수손괴죄 다중 또는 단체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재물 문서 손괴죄를 범한 자와 공익건조물 파괴죄를 범한자는 죄를 가중한다. 총 도주원조죄, 공무집행방해죄, 직무강요죄, 특수공무방해죄,공익건조물 파괴죄특수손괴죄 특수 절도죄를 범했습니다. 제 1차 동학농민운동 1894년 음력 3월 20일 무장에서 창의문을 발표하며 시작되었습니다. 5월16일 동학군 8,000여명이 영광에 들어와 군수를 축출한 뒤 관청 방화, 무기탈취를 저질렀습니다. 정읍, 흥덕,고창, 무장등을 점령하고 황룡산 전투에서 승리한 뒤 5월31일 전주성을 점령하였습니다.이는 방화죄 불을 놓아 목적물을 소훼하는 죄, 교통방해죄 교통시절의 손괴방법으로 교통을 방해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동학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뒤, 청나라와 일본은 군대를 동원해 왔습니다.외세가 국가에 관여하기 시작하자 동학군들은 정부와 전주화약을 맺었습니다. 전주화약의 조건으로 폐정 12조를 요구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조약입니다. 동학군은 조건도 없이 정보와 화약을 맺었습니다. 조건없는 화약은 그 전에 일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농민군이 갖추어지지 않은 단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이러한 동학농민둔의 행동은 청일 전쟁을 직접적으로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었으며 일본이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동학농민운동 그 운동 자체에 대한 죄 내란죄, 외환 유치죄, 공용서류등 무효죄, 공공위험죄, 도주원조죄, 범인은닉죄, 범죄단체조직죄, 소요죄, 집시법 위반죄, 다중불해산죄를 범했습니다. 기존 기득권을 무시하고 무장시위, 구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동학농민봉기로 인해 일본이 조선의 내정에 개입하게 되고 이런 사건에 무죄를 선고한다면 앞으로 걸핏하면 무력봉기가 일어나 나라를 혼란스럽게 할 것입니다.

 

 

batch_IMG_3300.jpg

 

batch_IMG_3299.jpg

 

판사

사형 세 번과 징역 119년? (전봉준과 변호사, 피고 측 증인을 가리키며) 하나, 둘, 셋, 넷.... 

 

일동

하하하

 

테디 변호사

지금 말씀하신 사형 3번과 119년의 징역은 지금 말씀하신 죄가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을 때의 형량을 합친 건가요?

 

솔 검사

네 그렇습니다. 벌금도 있는데 뺐습니다. 약 1억이 안 되는 걸로 나왔습니다.

 

판사 

변호인 측에서도 3분 스피치를 해주세요.

 

마멜 변호사

피고 전봉준은 농민들의 부당하고 피폐한 삶을 바꾸고 고부군수 로부터 우리는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농민들과 함께 동학농민운동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백성들을 힘들게 하는 조병갑에게 사정을 말하자 생각했고 1893년 관아로 들어가서 고부군수 조병갑에게 진정 즉(실정이나 사정을)말했지만 조병갑은 얘기를 들어주기는 커녕 농민들에게 벌금과 곤장을 내려치고 쫒아냈습니다. 화가난 농민들과 전봉준은 1894년 1월 고부관야를 습격했습니다. 이 일이 바로 고부농민봉기입니다.

 

 

batch_IMG_3332.jpg

 

 

하지만 눈치를챈 조병갑은 먼저 도망갔고 나라에서는 안핵사 이용태를 파견했습니다. 이용태는 고부관아를 습격한 몇명의 백성들을 체포하여 또 다시 벌금과 곤장을 때렸습니다. 이에 화가난 전봉준은 동학농민 운동을 진행하고 보국안민이랑 제폭구민을 주장 하였습니다. 보국안민은 나랏일을 돕고 백성의 편안을 기원하자는 것이고 제폭구민은 포악한것을 물리치고 백성을 구원하자는 뜻입니다. 1894년 4월 농민들이랑 전봉준은 전주성을 점령했습니다. 이에 고종은 동학농민운동의 심각성을 알고 청나라에게 지원요청을 하였습니다. 1894년 5월 청나라가 조선에 왔고 텐진조약을 맺은 일본역시 조선에 왔습니다. 이에 농민들은 고종에게 폐정개혁안을 제시했습니다. 이에 고종은 들어주고 집강소를 설치할테니 철수해달라 부탁했고 이에 농민들이랑 전봉준은 해산을 하였습니다. 고종은 끝났으니 청나라 일본에게 돌아가 달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청나라는 순수히 돌아갔지만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던 일본은 돌아가지 않고 경복궁을 침입했습니다. 일본은 자기의 나라가 얼마나 쌘지 보여줄라고 청나라랑 전쟁을 했습니다. 이것이 청일 전쟁입니다. 일본의 침략이 점점 심해지자 전봉준과 농민들은 일본을 내쫒아 조선을 찾자고 하면서 1894년 9월에 2차 봉기를 했고 1894년 11월 우금치 전투를 했지만 무기의 차이로 인해 결국 전투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이후 전봉준은 체포되었습니다. 

 

 

batch_IMG_3322.jpg

 

 

피고 전봉준은 그 누구보다도 용감했습니다. 모든 농민들은 삶에 대한 불만이 있었지만 아무도 섣불리 나서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전봉준은 남들과 다르게 앞장서서 싸우고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앞장섰다는 이유로 전봉준은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말도 안되는 피고의 상황, 그때 최선의 방법을 용기있게 이끌어낸 피고, 목적을 정취했어도 외세가 침략하자 도망가지 않고 다시 먼저나와 싸운 피고, 그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우리가 유무죄를 가립니까. 피고는 말할것도 없이 무죄이고 저는 이에 피고의 정당성과 용기를 높게 담은 무죄를 주장하는 바입니다.

 

 

<검사 측 심문>

 

판사

검사 측에서 피고를 심문하는 시간입니다. 원칙적으로는 증인 소환이나 증거물 제출을 해야합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해볼게요. 검사 측에서는 피고인 심문과 증인 소환을 자유롭게 해주세요. 변호인단은 검사 측의 심문 중간에 이의를 제기하실 수 있습니다. 제기하는 이의는 합리적이어야 하며, 이의를 각하시키는 것은 재판장의 권한입니다. 

 

솔 검사

피고 전봉준부터 심문하겠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은 누굴 위한 운동이었습니까? 

 

전봉준

농민들을 위한 운동이었습니다.

 

솔 검사

정말로 농민들을 위한 운동이었습니까? 피고는 동학농민운동 3년 전부터 흥선 대원군과 밀약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봉준

밀약이 아닙니다. 저와 흥선대원군은 이전에 인연이 있었습니다. 옛 친구를 만나는 것은 밀약이 아닙니다.

 

 

batch_IMG_3336.jpg

 

 

솔 검사

그렇다면 나중에 일본군에게 심문을 당할 때, 왜 흥선대원군과의 접선을 모두 부정했습니까? 일본군은 직접적인 증거까지 있었는데요. 

 

전봉준

제가 대원군을 지킬 권리도 있지 않습니까. 저 때문에 죄 없는 대원군이 잡힌다면 그것은 또 다른 피해를 주는 일입니다. 

 

솔 검사

고부 민란이 일어나기 전, 흥선대원군은 전봉준에게 민씨 정권에 반기를 들라고 제의합니다. 그 후 전봉준은 김개남, 손혜옥 등과 민란을 준비합니다. 1차 고부 민란의 목적에는 대원군의 권좌회복이 요구되었습니다. 대원군은 1차 동학농민운동 때 농민군 진압을 이유로 군대를 모아서 손자인 이준용을 권좌에 앉히려고 했습니다. 또, 청일전쟁 이후 일본이 간섭으로 인해 일어난 3차 봉기 때는 대원군은 농민군이 상경하면 청군을 끌어들여 일본군을 제거한 뒤 개화파를 척결하고 정권을 잡을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전봉준에게 밀서를 보내서 올라올 시기도 알려줬죠. 과연 동학농민운동이 농민을 위한 것일까요? 대원군의 권좌회복을 위한 것이 아닙니까?

 

전봉준

아닙니다. 농민들의 목적인 ‘평등한 삶’을 먼저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농민들은 신분제가 없는 삶, 하늘아래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다는 동학의 인내천 사상을 주장한 것이고요. 대원군과 접촉한 것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었죠. 

 

솔 검사

모든 인간이 평등하는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권력자인 대원군과 내통을 할 수 있습니까?

 

 

(전봉준을 심문하는 검사측)

batch_IMG_3343.jpg

 

 

판사

흥선대원군과 피고의 관계가 어떻게 됩니까? 아까 친구라고 말했습니다.

 

전봉준 

제가 대원군의 문객으로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친구인 것은 사실입니다. 

 

판사

대원군과의 만남을 숨긴 것은 친구를 보호하기 위한 선의였습니까?

 

전봉준

네. 

 

판사

재판장은 피고와 흥선대원군이 친구였다는 피고의 말을 믿을 수 없습니다. 당대 시대상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전봉준

저는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원군을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판사

그렇다면 피고가 보기에 흥선대원군도 피고를 친구라고 생각합니까? 

 

전봉준

대원군도 저를 친구로 여긴다고 생각합니다.

 

솔 검사

흥선대원군은 권력을 잡기 위해 많은 사람을 이용했습니다. 청나라에 납치가 되었다가 탈출해서 일본군에 붙었습니다. 일본군은 동학농민운동이 커지길 바랬습니다. 조선의 혼란을 틈타 군사침략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동학군에 보부상으로 변장해 몰래 침입한 적도 있고요. 동학농민운동이 커지길 바라던 일본과 협력하던 사람이자 농민들을 수탈하던 왕족인 흥선대원군과 밀약할 수 있습니까. 동학농민운동이 정말 농민을 위한 운동이었습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증인을 신청하겠습니다.

 

판사

증인 기립해주세요. 성명을 밝히고 선서해주세요. 

 

검사 측 증인 조병갑(쿠요)

조병갑입니다. 

 

 

batch_IMG_3361.jpg

 

 

선서 

신문에 앞서서 본 증인은 형사소송법 156조에 의거, 선서를 하겠습니다. 증인은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batch_IMG_3365.jpg

 

 

판사

증인 앉아주세요. 검사 심문하세요. 

 

제이크 검사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또 다른 증인의 말을 들어보기 위해 고부군수의 입장에서 바라본 동학농민운동을 들어보겠습니다. 

 

솔 검사

증인은 어떤 일생을 살아오셨습니까? 동학농민운동 때 어떤 일을 겪으셨습니까?

 

조병갑

저는 1844년 5월 15일 생이고, 1863년에 처음으로 관직에 올랐습니다. 1886년경 경남 함양군수를 지냈습니다. 1892년 4월 전라북도 고부군수가 되었고 1894년 고부민란이 발발했을 시점에 저는 현직 고부군수였습니다. 그 후 저는 농민의 습격을 눈치채어 뒷문으로 빠져나가 담장을 재빨리 넘어 도망쳤습니다.입석리 진선마을 부호 정창봉의 집에 숨어있다가 변장을 하고 정읍 순창을 전주 감양으로 갔습니다. 감양으로 가 관찰사 김문현에게 사태를 보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탐탁행위가 밝혀져서 귀양을 갔다왔습니다.

 

 

batch_IMG_3382.jpg

 

 

고부 군민들이 들고 일어났을 때 저는 익산 군수로 발령이 났었는데 그 때 너응 익산에 가지 않고 관야에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1개월 남짓한 1894년 2월 25일 다시 고부군수로 임명되었더니 다음날 농민들이 봉기하였습니다.봉기가 일어나고 저는 5월에 고금도로 유배를 갔습니다.유배를 가서 1년 2개월동안 지내다가 1895년 7월에 고종의 대사령으로 민영준,조병식 등 279명과 함께 사면되었습니다.1898년에 4품 법무 민사국장에 임명되었고, 몇달 뒤엔 고등 재판소 판사가 되었습니다. 

 

 

batch_IMG_3390.jpg

 

batch_IMG_3379.jpg
 

 

솔 검사

조병갑 씨의 시선으로 바라본 동학농민운동을 말씀해주세요. 

 

조병갑

동학농민운동은 제가 직접 원인이 되었다는 말이 많은데, 당시에는 저보다 더 심한 탐관오리도 많았기 때문에 그 사실에 대해서 억울합니다. 동학농민운동은 농민들이 권력욕에 사로잡혀서 일으킨 봉기입니다. 

 

솔 검사

혹시 조병갑 씨는 과거에 농민들에게 행한 죄값을 치른 적이 있습니까?

 

조병갑

예. 

 

제이크 검사

증인의 죄목이 무엇이었습니까? 어떤 죄를 지었습니까?

 

조병갑

농민들을 동원해서 만석보를 쌓았습니다. 저는 농민들에게 불효를 포함한 다른 죄를 조었고, 보석금을 내게 했습니다. 

 

 

batch_IMG_3377.jpg

 

 

제이크 검사

고부군수는 없던 사실을 지어내서 죄를 만들었습니다. 

 

솔 검사

그동안 지었던 죄 갚은 어떻게 치뤘습니까?

 

조병갑

저는 1년 2개월 동안 고금도에 유배를 다녀왔습니다. 

 

 

batch_IMG_3378.jpg

 

 

제이크 검사

피고인에게 죄를 지은 사실에 대해서 묻겠습니다. 피고인은 집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해서 폭행과 협박을 한 적이 있습니까?

 

전봉준

없습니다. 저희 고부 농민들은 절대로 폭력과 폭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조병갑 증인에게는요.

 

제이크 검사

조병갑 증인에게 다시 묻겠습니다. 1894년 2월 26일에 농민들이 관아를 부수고 무기고를 열어 무기를 빼앗은 적이 있습니까? 

 

조병갑

있습니다. 

 

 

batch_IMG_3405.jpg

 

 

전봉준

검사 님은 폭력과 폭행에 대해서 물으셨습니다. 저희는 폭력과 폭행을 한 적이 없습니다. 

 

솔 검사

이런 행동을 폭행과 협박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꼭 조병갑만 포함하는 것은 아닙니다. 

 

판사

무기고를 수탈했습니까?

 

전봉준

네 수탈했습니다. 군량미도 나누어주었습니다. 

 

제이크 검사

관아에서 폭력을 인정하셨습니다. 당시에 전봉준을 포함한 농민은 위험한 물건을 휴대했습니까?

 

전봉준

네, 휴대했습니다.

 

제이크 검사

그리고 공무원에 대해서 직무상 행위를 강요 또는 저지한 적이 있습니까? 또는 직을 사퇴하게 할 목적으로 협박한 적이 있습니까?

 

전봉준

네, 있습니다.

 

제이크 검사

공문서에서 사용하는 문서를 손상 또는 은닉한 적이 있습니까?

 

전봉준

네 있습니다.

 

제이크 검사

법률에 의하여 구금된 자를 탈취하거나 도주하게 한 적이 습니까? 

 

전봉준

네, 있습니다.

 

제이크 검사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조직했습니까?

 

전봉준

아니오. 

 

 

(검사 측의 심문을 들으며 변론을 준비하는 변호사)

batch_IMG_3278.jpg

 

 

제이크 검사

그러면 동학농민군이 일체의 범죄행위도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전봉준

아니오. 봉기 과정에서 범죄는 있었습니다.

 

제이크 검사

동학군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전봉준

아까 말한대로 보국안민(輔國安民)과 제폭구민(除暴救民)입니다. 

 

제이크 검사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셨습니까?

 

전봉준

무력을 썼습니다. 

 

제이크 검사

본 검사는 범죄를 목적으로 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범죄를 목적으로 한 단체를 조직했다고 생각합니다. 피고인은 동학농민운동 중에 폭행, 협박, 손괴, 방화 중 어느 하나라도 저지른 적이 있습니까?

 

전봉준

 

제이크 검사

수차례에 걸쳐서 나라에서는 동학군에 해산명령을 내렸습니다. 공무원으로부터 해산명령을 받고도 해산하지 않은 적이 있습니까? 

 

전봉준

아니오 해산한 적도 있습니다. 안 한 적도 있고요. 

 

제이크 검사

공무원 자격을 사칭한 적 있습니까? 전주성을 점령한 것은 전주성주를 사칭한 것 아닙니까?

 

전봉준

아닙니다. 전주성을 점령한 것 뿐입니다. 사칭으로 무엇을 한 게 아닙니다. 

 

솔 검사

전주성을 점령해서 나라와 전주화약을 맺고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판사

왜 전주성을 점령했습니까?

 

전봉준

폐정개혁안 12조를 조정에 확실히 알려서 실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의사를 알리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 전주성을 점령하는 것이었죠. 사칭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제이크 검사

피고인이 전주성을 점령하게 된 순간 기존의 전주성에서 집무를 보던 공무원은 기능을 상실하는 동시에 피고인은 기존 공무원이 행사하던 직권을 대신 행사하게 됩니다. 

 

전봉준

성주노릇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조정, 국왕과 소통의 수단일 뿐입니다. 폐정개혁안에 대한 확답을 받고 돌아가서 집강소를 설치했습니다. 권력을 유지하고 싶었다면 해산하지 않았겠죠. 

 

제이크 검사

불을 놓아서 방화한 적이 있습니까? 나라의 건물을 파괴한 적이 있습니까?

 

전봉준

네 있습니다. 

 

솔 검사

동학농민운동은 국가의 법을 지켰습니까?

 

전봉준

아니오 지키지 않았습니다.

 

 

batch_IMG_3272.jpg

 

 

솔 검사

대한민국의 영토에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한 주권행사를 배제하고 불법적으로 권력을 행사한 적이 있습니까?

 

전봉준 

있습니다. 전주성을 점령했으니까요.

 

솔 검사

법률을 지키지 않고 국가기관을 전복시키거나 기능을 잃게 한 적이 있습니까?

 

전봉준

있습니다. 

 

솔 검사

외국의 정보기관과 내통을 한 적이 있습니까? 

 

전봉준

없습니다. 

 

솔 검사

3차봉기 때 대원군이 농민군이 상경하면 청군을 끌여들여 일본군을 몰아내자고 전봉준에게 밀서를 보냈습니다. 이것이 내통한 것이 아닙니까? 

 

전봉준

아닙니다. 대화는 대원군이 했지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솔 검사

전봉준은 봉기를 일으키면 청군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판사

그렇다면 피고는 그 사안에 대해서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의견이 있었습니까? 

 

전봉준

반대 의견이 있었습니다. 반대 의사도 표시했습니다. 하지만 대원군은 그냥 듣고 갔습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솔 검사

검사 측 심문 마치겠습니다. 

 

 

<변호인 측 심문>

 

판사

변호인 측 반론 제기하세요. 변호인은 검사에게 따져 물을 수 없습니다. 피고를 변호하며 증인을 심문 할 수 있습니다. 

 

마멜 변호사

전봉준을 심문하겠습니다. 피고는 고부 봉기와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하셨나요? 

 

 

 

batch_IMG_3324.jpg

 

 

전봉준

네 참여했습니다. 

 

마멜 변호사

먼저 고부 봉기에 참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전봉준

저는 농민이었습니다. 당시 농민들의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일만 하다 잡혀먹히는 소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저희 아버지 전창혁은 대화로 이 상황을 바꿔보려고 했습니다. 제 아버지는 농민 대표로 조병갑을 찾아가서 세금 감면과 어이없는 항목으로 세금을 매기지 말자고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조병갑은 무자비한 곤장을 때렸고, 그로 인해 아버지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두번째로 저를 대표로 농민들과 함께 진정서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조병갑은 진정서를 보지도 않고, 농민들을 불러서 옥에 가두고, 때리고, 세금을 매깁니다. 이 상황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도 글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무력을 사용하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마멜 변호사

고부 봉기의 결과가 어땠습니까?

 

전봉준

조병갑은 도망갔고, 새로운 고부군수가 왔습니다. 새 군수는 저희에게 나름 잘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있던 안핵사 이용태가 다시 모든 것을 수탈해갑니다. 고부 농민 봉기에 참여한 이들을 다 옥에 가두고 무거운 세금을 매겼습니다. 악순환이죠.

 

마멜 변호사

그래서 전국적인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된 것이군요.

 

전봉준

그렇습니다. 제가 말한 것은 다른 농민들도 다 같은 생각입니다. 

 

마멜 변호사

동학은 무엇입니까?

 

전봉준

하늘 아래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는 인내천 사싱이 동학입니다. 이것이 힘든 농민들의 삶에 힘을 주는 사상이었기에 지지했습니다. 

 

마멜 변호사

증인을 신청합니다. 전라북도 고부에 살고 있는 농민을 증인으로 신청합니다. 

 

 

 

batch_IMG_3334.jpg

 

 

판사

증인 기립해주세요. 성명, 연령, 직업, 주소지를 이야기해주세요.

 

변호사 측 증인 레몬 농민

성명 레몬입니다. 연령 40세입니다. 주소지는 전라북도 고부입니다. 직업은 농민입니다. 

 

 

batch_IMG_3435.jpg

 

판사

증인 선서 해주세요. 

 

레몬 농민

증인은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batch_IMG_3443.jpg

 

 

판사

착석해주세요. 변호인 심문해주세요.

 

마멜 변호사

증인이 간략한 본인 소개와 함께 본인의 삶과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한 동기를 말해주세요.

 

레몬 농민

우선 저는 전라도 고부에 사는 평범한 농민이고 농사를 짓고 고부군수의 말을 들으면서 사는 농민입니다. 저희 고부군수인 조병갑은 저희 농민들에게 횡포가 심했습니다. 저희 농민을 아무 죄없이 잡아 곤장을 때리거나 옥에 가두며 벌금을 내라고 하는 횡포가 있었습니다. 저는 군수가 농민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군수는 그 지역을 다스리고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이고 그 지역의 농민들의 말을 들어주고 잘못을 한 사람을 벌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병갑의 잘못된 관리 때문에 농민들과 저는 매우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와 농민들은 군청에 진정서를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조병갑은 진정서를 보지않고 진정서를 보낸 농민들을 잡아 처벌하였습니다. 그에 화가 난 농민들은 의견이 확고한 전봉준 장군을 대표로 하여 군청을 공격했습니다. 군청을 공격한 이유는 조병갑은 진정서, 말등의 평화의 방법으로는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력이 오직 방법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군청에 들어가서 우리(동학농민군)의 힘을 보여주니 정부에서는 이제 조병갑은 갔으니 새로운 군수를 보내서 잘해주겠다고 저희에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파견된 사람이 이용태입니다. 이용태는 와서 군청을 공격한 농민을 잡아서 곤장을 때리거나 벌금을 내게하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저희는 정말로 어이가 없을 뿐아니라 화가 났습니다. 목슴걸고 뭉쳐서 고부군수 조병갑을 쫓아내자 이번엔 다른군수가... 이때 전봉준 장군과 우리 농민들은 정부에 확실하게 힘을 보여주자라고 결심했고 동학 농민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 말합니다. 전봉준장군은 저희와 같은 농민입니다. 하지만 다른 농민들과는 다르게 용기가 강했습니다. 그래서 앞장서서 이끈 것입니다. 절대 선동이라는 오해는 갖지말아주세요.

 

 

batch_IMG_3520.jpg

 

 

마멜 변호사

왜 고부 봉기에 참여하셨나요?

 

레몬 농민

그렇지 않으면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마멜 변호사

고부 봉기 전에 삶은 어떠셨습니까?

 

레몬 농민

고부에서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고부군수가 시키는 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군수의 수탈이었습니다. 그래서 농민들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마멜 변호사

여기서 조병갑 증인에게 심문하겠습니다. 증인은 고부군수 재직시 만석보라는 저수시설을 짓고 세금을 징수하셨습니까? 

 

조병갑

네. 

 

마멜 변호사

만석보를 만들 당시 임금을 주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까?

 

조병갑

네.

 

마멜 변호사

만석보가 완성이 되면 물을 공짜로 준다고 농민에게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완성이 되자 약속을 어겼습니다. 사실입니까?

 

조병갑

네. 

 

마멜 변호사

조상의 공덕비를 짓기위해 농민들에게 1000냥을 내라고 하셨죠? 당시 논 30마지기 갚인데요. 여섯식구를 기준으로 부농에 속합니다. 이 사식을 알고 있었습니까?

 

조병갑

 

마멜 변호사

가뭄 등을 이유로 흉년이 들자 원 세금의 3배에 달하는 강제 세금을 징수했습니까?

 

조병갑

네 했습니다. 

 

(변호사 측 심문에 답하는 조병갑 증인)

batch_IMG_3384.jpg

 

 

마멜 변호사

불효와 음행 등 어이없는 죄목을 씌워 백성들을 옥에 가두고 보석금을 내지 않으면 곤장을 때리고 풀어주지 않아서 거둔 세금이 20000냥에 달하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조병갑

 

마멜 변호사

전봉준을 비롯한 농민들이 진정서를 냈을 때도 거절하신게 맞습니까?

 

조병갑

네, 맞습니다. 

 

 

batch_IMG_3304.jpg

 

 

마멜 변호사

전봉준의 부친 전창혁을 증인의 말을 거역한다는 이유로 때려서 죽인게 사실입니까? 

 

테디 변호사

증인은 전봉준의 아버지 전창혁을 곤장 100대를 때린 사실이 있습니까?

 

조병갑

그런 적 있습니다. 

 

테디 변호사

고부군수로 재직하던 시에 상소서를 중간에 관리들이 확인하고 내용을 바꾸거나 보내지 않는 관행이 있었나요?

 

조병갑

있었습니다.

 

테디 변호사

농민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본인은 조병갑 군수가 명령한 만석보를 지을 때 노동을 하셨습니까?

 

레몬 농민

 

테디 변호사

하루에 몇 시간 노동을 하셨습니까?

 

레몬 농민

밥먹는 시간을 빼고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했습니다. 

 

테디 변호사

그러면 임금을 받으셨습니까?

 

레몬 농민

받지 않았습니다.

 

 

batch_IMG_3511.jpg

 

 

테디 변호사

그 억울한 사정을 군수에게 진정서를 내거나 찾아가는 항의한 적이 있습니까?

 

레몬 농민

네 있습니다.

 

테디 변호사

그럴 때마다 본인이나 가족들이 곤장을 맞은 것이 사실입니까?  

 

레몬 농민

네 맞습니다.

 

테디 변호사

그렇다면 만석보를 다 지은 후, 만석보의 물을 이용할 때 세금을 낸 것이 사실입니까? 

 

레몬 농민

네, 냈습니다. 

 

테디 변호사

공사시작하기 전에는 만석보의 물을 공짜로 쓸 수 있다고 군수와 약속한 것이 맞습니까? 

 

레몬 농민

네 맞습니다.

 

테디 변호사

조병갑 증인에게 다시 질문하겠습니다. 증인이 과거에 처벌받은 죄목 중에 공권력 남용죄가 있었습니까? 

 

조병갑

모르겠습니다. 

 

테디 변호사

잠시 변호를 하겠습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재판정입니다. 검사 측에서 제시한 죄목도 모두 대한민국의 법입니다. 검사측의 말처럼 실제로 불법을 저질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판사님께 호소하고 싶은 것은 법을 어겼지만, 법보다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법을 어겼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이 있었던 1894년에는 청일전쟁이 있었고, 1904년에는 러일전쟁이 있었습니다. 당대에 일본을 비롯한 외세가 득세할 때였습니다. 특히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강화도 조약을 맺었습니다. 강화도 조약은 불평등한 조약이었는데요. 대표적인 내용으로 첫째 인천, 부산, 원산 등 항구를 세 곳을 개항합니다. 둘째 양국 선박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을 빌미로 일본에게 조선의 해안을 측정할 수 있게 했습니다. 사실상 일본에게 국토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이적행위죠. 셋째, 양국 백성이 임의로 무역할 때 양국 관리가 간섭, 제한, 중지를 할 수 없게 해서 자본이 우세한 일본인으로 하여금 무역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넷째, 일본인이 조선에서 죄를 짓더라도 조선법에 적용되는 것이 아닌 일본법에 제한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치외법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요. 

 

그러므로 동학농민운동은 조선정부에게 각성하라는 의미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동학농민운동의 정신이 이어져서 나중에는 나라를 잃은 뒤에는 의병이 일어났고요. 그 정신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들어섰죠. 임시정부는 지금 대한민국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법을 논의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결국 동학농민운동으로부터 뿌리를 찾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동학농민운동이 불법을 많이 저질렀다고 해도, 법보다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이것이 유죄입니까? 

 

대한민국의 법 20가지를 어겼음을 인정하더라도 대한민국의 법정에서 세번의 사형과 119년의 징역을 내린다면 도대체 누가 정의를 위해서 나서겠습니까? 정의를 위해 나서는 것은 법을 어길 수 밖에 없습니다. 법은 사회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장치지, 사회를 변화하기 위해선 어길 수 밖에 없습니다. 이에 벌을 내린다면 앞으로 어느 청년이 우리나라를 잃고 외세의 침략을 받았을 때 당당하게 나설 수 있겠습니까? 그럼으로 저는 전적으로 피고의 무죄를 주장하는 바입니다. 

 

마멜 변호사

증인 조병갑에게 묻겠습니다. 아까 검사의 심문에서 증인이 말한 1년 2개월간의 복역기간이 농민들의 죽음과 슬픔, 분노, 고통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조병갑

제 의사와 관계없이 고종의 대사면으로 사면되었습니다. 충분한 죄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검사 측의 2차 심문과 구형>

 

판사

검사 측이 심문하면서 끝에 구형도 함께 해주세요. 

 

제이크 검사

피고인과 변호인단 측에서 동학농민운동의 정당성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셨는데요. 그 사실관계를 다시 확인하는 질문을 몇가지 하겠습니다. 

 

솔 검사

동학군의 이름으로 백성의 재산을 약탈을 저지른 적이 있습니까? 

 

전봉준

없습니다. 

 

 

batch_IMG_3263.jpg

 

솔 검사

이동엽을 아십니까? 동학농민군도 동학의 이름 아래에 약탈을 일삼는 무리가 많았습니다. 가장 유명한 무리가 이동엽이었는데요. 김구의 백범일지에 ‘동학군 중 이동엽 군대가 살인, 방화, 약탈로 문제가 크고, 김구의 부대를 습격해 김구의 부장을 살해했다고 되어있습니다. 

 

제이크 검사

동학군의 이름으로 부당한 약탈과 살인, 방화를 저지른 적이 있다는 말입니다. 

 

전봉준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죠. 김구도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었죠. 하지만, 그것만 보고 정당성을 판단할 수 있는 건가요? 

 

솔 검사

피고 전봉준이 최후의 재판에서 진술한 내용입니다. 과거 백성들이 왜 널 주모자로 추대했느냐고 묻자 피고인은 ‘백성들 수천명이 나의 집으로 모였으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그들 대다수는 글을 모르는 어리석은 농민들이었지만, 나는 다소나마 글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글을 모르는 어리석은 농민과 나는 다소나마 글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부분입니다. 농민들이 무지하다는 점을 이용해서 불온사상을 퍼뜨린 것이 아닙니까?

 

전봉준

그 시점이 고부봉기 때인가요 아니면 동학농민운동 때를 말씀하시는 건지요?

 

제이크 검사

무엇이 되었든 백성들에게 불온한 사상을 퍼뜨렸다는 심증이 있습니다. 

 

전봉준

최후의 재판 때잖아요. 그 자리에 제가 어떻게 섰는지를 봐야합니다. 당시 저는 너무 많이 맞은 상태였습니다. 항상 고문을 당했죠. 최후의 재판 전날에도 고문을 당해서 걷지도 못해서 질질 끌려서 재판정에 섰습니다. 그 말을 하는 당시 제 상황을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솔 검사

고문과는 관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본인이 동학군의 리더로 나온 이유를 묻는게 편파적인 질문은 아니지 않습니까. 

 

 

batch_IMG_3283.jpg

 

 

전봉준

저는 재판 전에 고문을 당하면서 저의 뇌를 다 바꾸었습니다. 고부민란 당시에 제가 사발통문을 적었던 것을 아십니까? 천 명의 무지한 농민들이 모여서 사발통문을 쓴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용기를 내서 나서질 못했을 때, 세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용감하게 나선 것입니다. 당시 농민들이 무지하다고 해서 제가 혼자 대표로 나선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사발통문에 서명을 했습니다. 

 

솔 검사

당시에 대부분의 농민들은 글을 읽고 쓸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일반 농민이라고 소개한 피고가 어떻게 글을 읽고 쓸 수 있었습니까? 

 

전봉준

저희는 농민 이전에 양반가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훈장일을 하실 때 어린 저에게 글을 알려주셨습니다. 저도 나중에 훈장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을 잘 압니다.

 

솔 검사

당시에 양반집안이라는 것이 흔한 것이었을까요? 양반집안이었기 때문에 배움의 기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테디 변호사

이의 있습니다. 검사의 주장은 진실에 기반하지 않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양반가문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돈으로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양반이 많았습니다. 

 

판사

인정합니다. 검사는 사실에 기반한 심문을 해주세요. 

 

솔 검사

피고는 고부민란 이후 1차 봉기를 일으키기 위해서 농민들을 봉기에 끌어들여야 했습니다. 어떻게 농민들을 모았습니까?

 

전봉준

고부에서만 민란이 일어난 게 아닙니다. 전국 각지에서 농민들이 들고 일어서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고부민란의 대표자로 가까운 지역과 연락을 했는데요.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한자리로 모인 것입니다. 제가 끌어들인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제 설득에 의해서 봉기한 것이 아니고 이미 봉기를 한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으로 저의 죄를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솔 검사

민란 이후 탐관오리에게 가혹한 세금징수로 농민들이 빼았겼던 곡식과 돈을 얻은 뒤 전봉준에게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전봉준은 관청의 쌀을 먹었으니 죽을 죄에 해당한다며 농민들을 위협했습니다. 출처는 남유수목 이복영 씨가 저술하신 책에 있는데요. 이복영 씨는 충남 부여의 농민입니다. 그가 농민 전쟁 때 피난 하면서 겪은 일과 이후 상황을 기록한 일기입니다. 동학농민 운동에 필수인 자료입니다. 협박한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전봉준

인정하지 않습니다. 고부민란이 일어난 이유를 보십시오. 농민들이 뭉친 이유는 조병갑의 횡포에 짐승과 다를바 없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해 맞서 싸운 것입니다. 

 

고부 농민봉기 이후에 새로온 고부군수가 있었습니다. 새 군수는 저희가 요구한 평등을 보장하겠다고 확실히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있던 안핵사 이용태가 다시 수탈합니다. 결국 조병갑 이후에 상황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제가 협박을 했다고 주장하시는데, 만약 첫 봉기의 진정성을 인정하신다면 두 번째 봉기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 검사

저는 협박을 했는지에 대한 사실만 확인하는 겁니다. 

 

테디 변호사

이의 있습니다. 검사 측이 제시한 자료는 농민이 쓴 일기입니다. 이것은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일기는 믿을 수 없는 사료입니다. 일기로 협박이 실제로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판사

인정합니다. 일기의 저자가 누구입니까?

 

솔 검사

일반 농민인 이복영입니다. 

 

판사

만약 이복영 씨를 증인으로 세운다면 상황이 바뀔 수도 있겠죠. 아쉽네요. 

 

제이크 검사

2차 봉기 때 전봉준은 교주 최시형과 상의하지 않고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사실인가요? 

 

전봉준

네 맞습니다. 

 

제이크 검사

동학의 이름으로 약탈을 하던 사례, 개인이 독자적으로 행동할 만큼 오합지졸이라는 근거를 들어서 동학농민운동의 정당성을 반박합니다. 

구형하겠습니다. 피고 전봉준과 변호인단이 스스로 인정한 20개의 죄목을 들어서 피고 전봉준에게 세 번의 사형과 징역 119년을 구형합니다. 

 

 

<최후 변론과 판결>

 

판사

피고 기립해주세요. 본 재판의 핵심이죠. 최후 변론을 해주십시오.

 

 

batch_IMG_3415.jpg

 

 

전봉준

이 재판의 피고인 전봉준입니다. 저는 저의 무죄를 막 애걸하게 주절거리지 않고 저의 죄라고 검사님께서 주장한 고부농민봉기와 동학농민운동의 이유를 당시 상황에 근거해짧고 굵게 설명해보겠습니다. 먼저 제가 어느 상황을 말해보겠습니다. 여기있는 여러분 모두 이 상황이 자신의 상황이라고 생각해보시고 어떤행동을 할것인가를 예측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첫번째 상황입니다. '지극히 평범하게 자신의 일인 농사를 짓고 나라에서 돈내라는 것 내고, 시키는 일 하면서 사는 농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다보니 자신에게 남은 것은 하나 없었습니다.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니 그 이유가 자기 지역의 관리가 어이없는 것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가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농부는 이런 관리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관리는 무시하고 또 다시 벌금을 내라고 합니다. 안내면 때린답니다. 자 이때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요?

 

두번째 상황입니다. 농민은 자신의 상황이 무력을 사용해 관리를 내쫒지 않으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쫒아냈습니다. 그런데 다른관리가 이전 관리랑 똑같이 아니 더 심하게 합니다. 이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의 수단일까요?

 

 

batch_IMG_3507.jpg

 

 

세번째 상황입니다. '농민은 이제 정부에 확실히 보여주지 않으면 자신의 상황은 고통의 악순환 속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여 마음이 맞는 농민들과 같이 정부에게 힘을 보여줬고 드디어 원하는 평등한 삶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려고 하니 이번엔 다른 나라가 자신의 나라를 침략했습니다.' 이때 농민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 상황은 저와 농민들에게 일어난 실제상황이고 저희는 그때마다 모두가 생각하는 최선의 선택을 했습니다. 이제 뭔가 저희 농민의 상황이 이해되시나요? 아 맞다! 제일 중요한 저와 농민들의 목표를 말씀 안. 드렸군요? 저희의 목표는 딱 두 개입니다. 공정하고 아름다운 세상 그리고 평등한 삶입니다. 

 

저희의 목표는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것입니다. 권력을 잡기 위해? 세력을 늘리기 위해? 절대 아닙니다. 만약 그렁 것의 목적을 두었다면 전주성 점령 당시 폐정개혁안을 제시하는 대신 계속 무력으로 치고 올라갔을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 잘 해주시기 바랍니다. 정의로운 법에서의 정의가 의미하는 것이 타락과 부정부패입니까 아님 평등함과 정당입니까?

 

마지막으로 요청하고 싶은게 있습니다. 농민군에게 약속한 폐정개혁안 12조를 적극적이고 확실하게 실시를 부탁드리고요. 동학농민운동의 원인이자 조선의 문제인 부정부패한 관리를 모두 잡아들여서 재조사 해주기를 희망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batch_IMG_3413.jpg

 

 

판사

원래는 휴정을 한 뒤 선고는 다음날 하기도 하는데요. 우리는 바로 선고하겠습니다. 

 

판결합니다. 피고 전봉준은 개인의 욕심이 아닌 농민 전체와 국가의 안녕을 위해서 봉기를 했다는 사실이 인정되고, 비록 폭력적인 방법이었다고 하지만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본 재판장은 판단합니다. 그에 따라 무죄를 선고합니다. 

 

국가는 농민 전체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개선의 노력없이 오히려 조병갑과 같은 탐관오리를 필두로 하여 수탈을 일삼아왔습니다. 이에 본 재판장은 농민을 대표한 피고 전봉준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했던 과거 법무부의 판결을 사과하고 국가의 책임을 물어 현금 10억원을 배상할 것을 판결합니다. 

 

끝.

 

 

batch_IMG_3488.jpg

 

 

 생각해보면 1894년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은 매우 가까운 역사입니다. 일제 강점기부터 20년 전이며, 지금으로부터 불과 120여 년 전의 역사죠. 우리의 현대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역사입니다. 

 

 수십 년간 동학농민운동은 민란 혹은 반역이었습니다. 전봉준의 딸 전옥례 씨는 동학농민운동 직후 김옥련으로 개명해서 사찰에 숨었습니다. 이후 결혼을 한 뒤, 수십년간 존재를 숨기다가 1970년 동학농민운동이 민란에서 농민운동으로 승격되었을 때, 세상에 사실을 밝힙니다.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인정받은 것이죠. 시대에 따라 한 인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동학농민운동 이후 일본은 본격적으로 조선을 침략하고, 1904년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와 1905년 을사늑약, 그리고 1910년 경술국치(한일병합조약)까지 이어지며 식민시대가 시작됩니다. 달리 말하면, 전봉준과 동학농민군이 왕실, 조정관리들보다 더 앞선 현실의식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도 보여집니다. 사회의 불평등을 여러 방법으로 경고한 동학농민운동을 무시한 조선왕조는 병폐가 쌓여 결국 패망했으니까요.

 

...

 

판사님이 재판 내용을 토대로 공정하게 판결한 결과,

피고 전봉준의 무죄와 함께 국가가 10억원 배상하는 것으로 판결을 했습니다.

 

역사와 법을 공부해서 나름의 작전까지 짜온 양 팀이 열심히 준비한 게 느껴지는 법정이었는데요.

처음이라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재판 형식에 익숙하지 않았고, 심문내용도 어색한 점이 있었습니다.

 

모두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번 경험을 토대로 다음에 더 멋진 역사재판을 기대해봅니다. 

우리의 역사재판은 계속됩니다. 

 

...

 

역사는 지금도 계속된다. 피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