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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5 [17' 제주도 쪽캠] 내 왕이 최고야! <피스캠프 조선 왕 세미나, 1편> 2017.12.03

 

11월의 마지막 주말,

피스캠프에서 또다시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내 나라가 최고야!'에 이어,

이번엔 '내 왕이 최고야!'라는 주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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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와 가장 가까운 역사인 조선.

우리는 조선 최고의 왕을 두고 토론에 돌입할 겁니다.

 

진행 방식은 지난 세미나와 같습니다.

 

세미나에 앞서,

이 자리에 모인 조선의 군주들을 정식으로 소개합니다.

 

순서대로,

 

1대 태조 / 레몬

3대 태종 / 테디

4대 세종 / 마리모

9대 성종 / 벤자민

14대 선조 / 솔

15대 광해군 / 제이크

22대 정조 / 루시

26대 고종 / 크롱

 

사회자 / 블루이

 

..

 

청문회 역시 차례대로 진행됩니다.

 

첫 번째 왕, 나와주세요!

 

 

 


 

 

1대 태조 / 레몬 

 

 

이성계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임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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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는 전주 이씨로 1335년 함경남도 영흥군 흑석리에서 아버지 환조와 어머니 최 씨 슬하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이성계는 활의 명수였으며 일찍이 무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고려 말기 무인입니다.

 

고려 말기의 장군 시절에는 원나라의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빼앗았고 홍건적 10만 명이 고려에 쳐들어왔을 때도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1378~1380년까지 지리산 혜주 황산동에서 왜구를 무찔렀습니다. 1361년 10월, 독로강 만호 박의의 반란을 평정했고 이듬해에는 홍건적의 침입으로 함락된 개경을 재탈환해 큰 공을 세웠으며 원나라 장수 나하추의 대군을 함흥평야에서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공과를 인정받아 같은 해 밀직부사의 벼슬을 받았습니다. 1377년 고려 우왕 3년 경상도 일대와 지리산에서 왜구를 섬멸했고, 1380년에는 양광, 전라, 경상 도순찰사로 임명되어 운봉에서 아기바투가 지휘하는 왜군을 섬멸하는데 큰 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우군 도통사로서 요동 정벌을 위해 북진하다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우왕을 폐하고 신진 세력의 경제적 토대를 구축하여 조선을 세웠고 국가 기틀을 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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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 이념으로는 명나라를 종주국으로 받아들이면서 일본, 여진과는 우호적으로 교제해 평화유지를 꾀한 사대교린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성계는 숭유억불 정책을 폈는데 삼국시대부터 국교로 내려온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의 성리학만을 정설로 주장하여 역사적 흐름이 보수적이고 봉건적인 사상으로 흘렀습니다. 또 조선의 전 시대 동안 중국을 큰 나라로 섬기는 사대주의 정책이 완전히 고착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업을 천하게 여기고 농업을 중시하여 조선의 시장 경제의 발전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고려 시대 왕보다 더욱 많은 권력을 휘둘렀던 호족들을 제압하여 귀족들의 방탕한 문화를 청산하고 중앙집권적인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고려는 혈연을 중요하게 여기어 왕의 권력도 크지 않았기 때문에 신하들의 부정이 많았고 지방의 백성들은 그 지방의 호족에 의해서 관리되어 많은 문제점이 있었지만, 이성계는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갖추고 농상장려, 관제 정비 등 조선의 기틀을 다지는 등 큰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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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청문회가 시작됩니다.

 

(괄호 안은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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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는 과연 왕이 되고 싶었는가?'

 

블루이 : 이제 레몬에게 질문해주세요.

 

벤 : 이성계는 조선의 왕이 될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고려 왕조를 유지하자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려 개혁론을 주장하는 정몽주를 지지했어요. 그런데도 조선을 세운 건 이성계와 뜻이 다른 정도전과 무학 대사가 이성계를 이용해 그런 것 아닌가요?

 

레몬 : 질문 이해를 못 했는데..

 

블루이 : 이성계는 왕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근데 누가 등 떠밀어서 왕이 되었어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었죠.

 

레몬 : 잘 모르겠습니다.

 

블루이 : 정확한 답이죠? 잘 모르겠답니다. (하하하)

 

 

 

'이성계의 고려 왕씨 숙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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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롱 : 고려 왕조가 모두 개성 왕씨였는데, 조선을 세우며 왕조가 바뀌었잖아요. 새 왕조가 건국된 다음 이전 세력이 숙청 당하는 게 드문 일이 아니긴 하지만, 한국사에서 이렇게까지 전대 왕족을 몰살한 건 이성계가 유일합니다.

 

솔 : 고려 왕씨를 숙청하는 행위는 태조 이성계뿐 아니라 정종, 태종, 세종까지 이어졌습니다.

 

레몬 : 전에도 있었던 일이니까.. 똑같은 잘못을 한 거고, 그 전에 있었던 이름 모를 왕들도 잘못을 하지 않았을까요?

 

크롱 :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이 했다고 해도 그 잘못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제주도로 보내준다며 뻥을 치고 바다에 수장시켰다고 합니다. 이렇게까지 전대 왕족을 몰살시키고, 또 촌수가 먼 사람들까지도 굳이 그렇게 잔인하게 죽였어야 하나요?

 

레몬 : 그 생각은 안 해봤습니다.

 

블루이 : 논리적인 답변이었습니다. 질문에 맞는 답변을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리고 레몬은 지금 질문에 맞는 답변을 했어요. 훌륭합니다.

 

 

 

'숭유억불 정책과 여성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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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 태조가 숭유억불 정책을 시행한 뒤 조선이 500년 동안 유교의 나라가 되고, 이로 인해 여성들이 심한 차별을 받게 되었는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블루이 : 레몬은 숭유억불 정책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나요?

 

레몬 : 아니요. 여기 써 놓긴 했는데..

 

블루이 : 한번 읽어보세요.

 

레몬 : 삼국시대부터 국교로 내려온 불교를 철폐하고 유교의 성리학만을 정설로 주장하여..

 

블루이 : 유교를 숭배하고 불교를 억제한다는 말이죠. "조선은 숭유억불 정책으로 여성을 차별했고, 그것이 이성계가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성계는 잘못했습니다." 라는 질문이었어요. 레몬, 맞나요?

 

레몬 : 어, 아니요.

 

블루이 : 숭유억불 정책을 펼쳤지만 그럼에도 여성을 억압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인가요?

 

레몬 : 왕의 생각이 아니라 아랫사람들이랑 상의를 하고 결정한 거니까.. 이성계의 잘못이 아니에요.

 

블루이 : 그러면 이성계가 숭유억불 정책을 통해 여성을 억압한 건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이성계의 책임은 없다, 라는 것이 레몬의 주장인가요?

 

레몬 : 네.

 

루시 : 이성계가 그 정책을 시행했는데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블루이 : 아랫 사람들과 상의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는 말이 성립하려면, 이성계의 왕권이 굉장히 약하고 아랫사람들이 이성계를 마음대로 주물렀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혹시 레몬은 근거가 있는 이야기를 한 건가요?

 

레몬 : 그건 아닌 것 같고.. 제 생각입니다.

 

블루이 : 그걸 마음대로 생각하면 어떡합니까? (으하하하) 그러면 혹시 이성계는 여성친화적인 인생을 살아온 건가요? 만약 그랬다면 숭유억불 정책을 펼쳤다는 건 의외죠. 뭔가 다른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을 거라고 추론할 수 있잖아요. 그런 근거가 있나요?

 

레몬 : 아니요.

 

블루이 : 그러면 레몬이 한 이야기는 아무 근거가 없는 이야기네요.

 

레몬 : 음..

 

 

 

'조선 건국의 공신, 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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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 조선을 세울 때 정도전이 큰 역할을 했잖아요. 제 생각에는 이성계보다 더 큰 역할을 했다고 봐도 무방한데, 결국 정도전이 없었다면 이성계는 나라를 못 세우지 않았을까요?

 

레몬 : 아까 이야기했듯이 이성계는 나라를 세울 생각이 없었는데..

 

솔 : 이성계의 나라잖아요. 이성계의 건국 후에도 정도전이 정책 만들고, 제도 만들고, 거의 다 했어요. 그 정도로 많은 일을 했는데, 그러면 결국 이성계는 정도전의 허수아비가 아닌지.

 

블루이 : 레몬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레몬은 지금 태조 이성계입니다. 나 이성계가 조선 최고의 왕이었다는 걸 주장하는 거예요.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또 쿨하게 인정하는 것도 필요한 자세일 수 있어요. 어쨌든 그것을 잊지 말고 대답을 해야 합니다.

 

 

 

'조선의 사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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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 태조는 중국을 큰 나라로 섬기고 따르는 사대주의를 주장하였습니다. 자신과 신하, 백성들의 의견보다는 명나라의 의견만 들었어요. 이로 인해 조선은 시작할 때부터 큰 뜻을 펼치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이게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레몬 : 음..

 

블루이 : 테디 찬스 한번 쓰겠습니다.

 

테디 : 사실 우리나라는 조선 건국 아주 오래전부터 큰 뜻을 펼치기는 어려운 나라였어요. 지정학적으로, 가장 큰 나라 중국이 옆에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식으로 국력을 인정하는 걸 사대주의라고 볼 수도 있으나 그건 당시의 외교적 관례였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오히려 외교적으로 소외를 당하는 것이었고요. 오히려 조선이 중국과 좋은 외교 관계를 성립함으로 인해서 더 메이저한 국가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당연히 처음부터 마련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벤 : 그렇지만 그것으로 인해 조선은 끝까지 명나라에게 억압받았고, 청나라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테디 : 정확히 어떤 지배를 받았죠? 조선의 왕이 자치권을 행사하지 못한 부분이 있나요? 조선 왕은 나라를 직접 다스린 걸로 알고 있는데요.

 

블루이 : 참고로 이 모든 것은 레몬의 답변입니다. 테디의 답변이 아니에요.

 

테디 : 벤, 근거가 있습니까?

 

벤 : 어, 인정하겠습니다.

 

블루이 : 대단한데, 레몬?

 

 

 

'태조의 후계 결정과 왕자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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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 조선 초 왕자의 난은, 이성계가 둘째 부인 강 씨의 아들을 편애하여 이에 분노한 첫째 부인의 아들들이 일으킨 겁니다. 대표적으로 이방원이 일으켰죠. 이성계가 아들을 편애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성계의 책임이 있습니까?

 

레몬 : 음, 그런데 이성계가 아들을 편애하는 건 어쩔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첫째 부인의 아들이 여섯 명인데 전부 다 잘해줄 수는 없으니까. 한 명만 잘해주면 다른 아들은 좀 그렇잖아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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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 이방원의 경우에는 조선을 세울 때도 아버지 이성계를 많이 도왔고, 후에 왕이 되어서도 정치를 잘 하였습니다.

 

솔 : 그건 문제가 될 게 아닙니다. 이방원이 이성계를 도와줬다고 무조건 왕위를 물려받아야 한다고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건 이성계 마음이에요. 그걸 자기가 당연하게 물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욕심이 아닌가 싶네요.

 

레몬 : 왕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한 아들도 있다고 했는데, 그 아들을 빼면 네 명 다섯 명인데, 태종이 정종한테 밀어줬다고 해서 정종이 뽑힌 것 같다고.. 

 

블루이 : 뭐라고요?

 

레몬 : 저도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으하하하)

 

블루이 :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그걸 알겠습니까. 왕이 되고 싶지 않다는 아들 다 제외하고 나머지 중에 어떻게 고르다 보니까 둘째 부인의 아들이었다는 답변인가요?

 

레몬 : 그런 것 같아요.

 

벤 : 그렇지만 그렇게 제외한 후 순서대로 내려올 때는 왕위에 대한 야망이 있던 정종이나 태종도 있었을 텐데, 둘째 부인의 아들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테디 : 이성계를 대변하자면, 사실 이성계에게 이방원은 못 미더운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성계가 정몽주를 죽이지 말라고 그랬거든요. 근데 이방원은 마음대로 정몽주를 죽였죠. 이방원은 힘은 있었지만 이성계의 신임은 잃은 상황이었어요. 신임을 잃은 아들에게 초대 왕이 왕위를 물려준다는 게 말이 됩니까?

 

블루이 : 드디어 대답을 찾았습니다. 레몬이 해야 했던 대답은 이겁니다.

 

테디 : 허물이 없는 막내아들에게 물려준 거죠. 초기 왕조에는 허물이 없어야 할 거 아닙니까.

 

벤 : 그러면 막내아들을 편애해서 준 게 아니고 이방원이 못 미더워 허물없는 아이에게 줬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블루이 : 그것도 일종의 편애라고 볼 수 있죠. 편애한 것은, 이방원이 똥강아지였기 때문이다.

 

벤 : 그렇다면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에는 태조의 문제가 없다?

 

테디 : 네. 그것은 자식들의 문제고, 현실의 문제니까요.

 

벤 : 인정하겠습니다.

 

 

'고려의 반역자 이성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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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 : 이성계는 왜 조선을 세웠나요?

 

블루이 : 잠깐만요. 아까 이런 지적이 나왔죠. 이성계는 사실 조선을 세우고 싶지 않았다고. 그랬는데 세운 이유는 정도전이 등 떠밀어서라고요. 지금은 그냥 세우고 싶었다고 치고, 왜 세웠습니까?

 

레몬 : 정도전이 안 떠밀어서.. (으하하하)

 

블루이 : 제이크가 질문한 의도는 왜 고려 왕조를 잇지 않고 조선을 세웠냐는 질문인가요?

 

제이크 : 그렇죠. 고려 입장에서 보면 이성계는 반역자밖에 더 되느냐는 말이죠.

 

레몬 : 음..

 

블루이 : 이 질문은 너무 중요한 질문이라 그냥 넘어가지 맙시다.

 

테디 : 고려는 개혁을 할 수 없음이 공민왕 시절에 이미 드러났어요. 왕은 힘을 잃었고요. 희망이 없어진 지 오래된 나라였습니다. 더 이상의 개혁이 소용이 없는 상황이라면 새 나라를 세워야 새롭게 모든 정비를 할 거 아닙니까. 썩어빠진 고려라는 틀을 유지하는 것은 아무런 실익이없는 고집일 뿐이고, 모든 것을 바꾸려면 왕조도 바꿔야 하는 거죠. 그래서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 백성들도 고려 말기보다 훨씬 행복한 조선 초기를 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그 뒤로 성종까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조선은 정말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그러면 고려를 잇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결과를 맞은 것 아닙니까? 벤?

 

제이크 : 질문은 내가 했는데요. (하하하)

 

테디 : 난 벤이 한 줄 알았어.

 

벤 : 그렇지만 이성계는 고려 개혁론을 주장하던 정몽주를 지지하던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성계가 의도를 가지고 했을까요? 정도전이밀어서 한 거 아닐까요?

 

블루이 : 밀어서 했더라도 이성계가 동의를 했으면 하는 거죠. 반대했으면 안 했을 수도 있는데, 누가 등을 밀었건 거기에 동의를 하니까 하는 거죠.

 

블루이 : ..라고 레몬이 이야기했습니다. 그렇죠, 레몬?

 

레몬 : 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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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이 : 그나저나 누구 전주 이씨 없나?

 

테디 : 루시랑 크롱 둘 다 전주 이씨예요. 어, 너도 전주 이씨야?

 

레몬 : 응.

 

블루이 : 그러면 세 명이 다 전주 이씨예요? 왜 난 몰랐지?

 

레몬 : 예전부터 계속 전주 이씨라고 떠들고 다녔는데..

 

테디 : 레몬 대군. 상상해 봐. 궁궐을 걸어 다니는 레몬의 모습을. (으하하하) 아빠 염색하고 싶어. 자전거 사 줘. (하하하)

 

 

 

레몬 대군, 퇴장하고..

그의 아들을 왕좌에 모시겠습니다.

 

 

 


 

 

3대 태종 / 테디

 

 

"나는 조선 최초의 개혁 군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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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인은 1367년 6월 13일, 함경도 함흥에서 태어났소. 과감하고 패기 넘치는 성격을 보고서 무인 출신이라는 오해가 있으나, 실은 젊은 시절, 조선의 과거보다 더 어려운 고려의 과거에 합격한 인재요. 집안에서 유일하게 과거 급제를 했소. 지방 무인 출신이라는 컴플렉스가 있던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셨소. 이후 고려의 신하로서 개경에서 활동하며, 아버지 이성계와 문신들의 인사교류에 힘을 실어드렸소. 

 

 과인은 이후로 아버지의 건국에 수많은 공을 세웠소. 아버지의 정치적 결단이었던 위화도 회군 당시에는 형제들은 모두 아버지를 따라가고, 홀로 개경에 남아서 어머니와 동생들을 무사히 이천으로 피신시켰소. 아마, 위화도 회군이 성공했더라도, 가족들은 내가 아니었으면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오. 

 

 이후 아버지는 실권을 장악하는데, 마지막 왕인 공양왕의 암묵적 지원하에 정몽주를 중심으로 모인 온건 개혁파는 먼저 우리를 숙청하려 했소. 아버지가 말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은 틈을 타서 정도전, 조준, 남은 등을 귀양 보냈소. 역성혁명을 꿈꾸던 우리는 고려의 역적이 될 수도 있었소. 허나 그 낌새를 미리 알아챈 나는 벽란도에서 다친 아버지를 개경으로 데리고 왔소. 몰락위기에서 아버지를 구한 것은 과인이오. 

 

 새 나라의 건국은 새 시대의 부름이었소. 썩어빠진 고려는 더는 희망이 없었소. 정몽주의 절개는 높이 사나,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그의 정치력은 잘못이었소.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으셨으나, 나는 정몽주를 죽임으로써 당당히 시대의 변화에 답하기로 했소. 마지막까지 하여가를 부르며 그를 설득했으나, 단심가를 노래하는 그의 절개에서 답답함을 느꼈소. 결국 개경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죽인 이후에도 아버지께 변명할 여지가 많았으나, 나는 비난의 화살을 당당히 받았소. 그 일로 아버지의 눈 밖에 난 나는 점점 왕권에서 멀어져갔소. 허나, 이는 누군가는 묻혀야 하는 피였소. 솔직히 내가 아니었으면 조선은 없었소. 

 

 결국, 아버지는 나보다 어린 이복동생 방석을 세자에 앉혔소. 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를 참을 수 없었소. 첫째, 어린 동생이 왕에 오르면, 정도전의 뜻대로, 왕권국가가 아닌 신권국가가 되오. 왕은 허수아비가 되는 것이오. 조선 중후기를 보면, 신하의 힘이 지나치게 세지며 멸망하게 되는데, 1,2차 왕자의 난으로 왕권이 강화되었고, 세종에서 세조를 거쳐 성종까지 번영기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오. 이 역시 누군가는 묻혀야 하는 피를 나라를 위해 내가 묻힌 것이오. 아니면 조선은 초기의 번영기가 없으며 훨씬 빨리 멸망했을 것이오.

 

 부끄러우나, 이제는 왕으로서의 업적을 딱 다섯 가지만 말하겠소. 첫 번째로 사병혁파가 있었소. 당시에는 사병이 있었는데, 이것은 반란의 소지가 농후함으로 전적으로 척결하고, 모두 국가의 군대로 귀속시켰소. 둘째, 관제를 정비하였소. 재상인 삼정승은 명예직으로 바꾸고, 실무를 담당하는 육조판서가 국왕에게 직접 업무를 보고하게 했소. 나도 관료였으므로, 그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소. 셋째, 나를 왕으로 세운 일등공신을 철저히 숙청함으로 왕이 된 이후에도 신하에게 휘둘리지 않았소. 넷째, 세자를 교체하였소. 세자가 공부에 뜻이 없자 과감히 장자 계승의 법칙을 버리고 세자를 충녕대군으로 바꾸었소. 이는 사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그 속에서도 현실 감각을 버리지 않았소. 결국 충녕이 세종이 되어, 역사에 길이 남는 성군이 되지 않았소? 마지막으로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그 유명한 신문고를 설치하였소. 특수청원과 상소를 위하여 대궐 밖 문루에 달아서 억울한 백성들이 북을 울리면 내가 직접 나서서 억울함을 풀어주었소. 

 

과인은 세종에게 양위한 뒤에도, 군사력을 장악하여 장자가 아닌 세종의 뒤를 봐주었소. 그리고 죽은 뒤에는 귀신이 되어 가뭄이 드는 여름에도 내가 죽은 날에는 비가 내려 백성을 편안케 하였소. 훗날 사람들은 이를 태종우라 하더이다. 그 이름에 나는 매우 보람차오. 어느 드라마에서는 이렇게 말하더이다. 

 

“세종이 조선 최고의 성군이 된 것은 태종의 철저한 정치작업이 없었다면 불가능하다. 그러니 어찌 태종이 한 일이 세종이 한 일보다 가볍다 할 수 있으리오.” 후대에 내 뜻을 알아주는 이가 있어 매우 보람차오.

 

2017년 11월 24일

 

저승에서 조선 태종이 만인에게 고함.

 

 

'태종의 한양 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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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 태종은 수도를 개경에서 다시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백성들을 혼란에 빠뜨렸고 나라를 뒤숭숭하게 하였으며 많은 재정을 낭비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것을 낭비한 건 태종의 잘못이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나요?

 

테디 :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명분이란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옛 수도에 그대로 있으면 그게 고려인지 조선인지 사람들이 모른단 말이에요. 조선이 새로 세워졌다는 걸 공표하기 위해 새로운 땅에 수도를 세운 것이죠. 사실 조선이란 국가의 규모를 감당하려면 새 도시를 만드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개경은 이미 모든 것이 꽉 들어차 있었고, 그래서 천도했어요. 재정 낭비가 있었지만 결국 지금의 서울까지 발전하지 않았습니까. 매우 의미 있는 이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태종의 왕권 강화'

 

 

벤 : 왕권 강화를 위해 의정부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재상들의 권한을 축소시켰습니다. 아까 신문고를 세워 모두의 의견을 들었다는 말과는 상반되는 정책이 아닌가요?

 

테디 : 전혀 상반되지 않습니다. 왕권 강화를 위해 그렇게 한 거고요. 재상, 삼정승 아래에 육조판서가 있잖아요. 실무를 담당하는 사람이에요. 이 사람들에게 직접 보고를 받음으로 더 아래에 있는 목소리를 왕이 직접 들을 수 있게 되었고요. 이것은 신문고의 뜻과 맞는 정책입니다.

 

 

 

'태종의 공신 숙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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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 원경왕후 민씨 있잖아요. 자기 부인이죠. 태종이 왕자의 난 벌인 이후에 자기 부인의 남동생, 처남들에게 스스로 죽으라 명령했어요. 그 둘은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벌일 때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고, 자신의 부인도 무기를 몰래 조달하는 등 도움을 준 사람인데 어찌 그들에게 죽으라 명령을 내릴 수 있나요?

 

테디 : 사실 그뿐만 아니고, 처남이 네 명이 있는데, 그들을 다 죽였어요. 제 아내도 사실상 실권이 없어지게 했고요. 왜냐하면, 조선 후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왕실 외척 세력이 힘이 세지거든요. 제가 있을 때도 힘이 센데, 제가 없으면 더더욱 세질 거 아니에요. 미리 처단해두어야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솔 : 그냥 배반한 것 아닙니까?

 

테디 : 배반했죠. 근데 안 했으면 나라가 훨씬 어지러웠을 겁니다. 확신합니다. 조선이 외척 세력한테 휘둘린 게 몇백 년입니까. 처음에 저 빼고는 다들 그랬습니다. 저는 개국 공신도 죽이고, 제 오른팔도 유배 보냈습니다.

 

솔 : 왕권 강화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관리나 재상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하고 처단한 것이 아닌지요? 더 좋은 의견이 나올 수도 있는 건데, 너무 미리 처단하고 왕권에만 집착한 게 아닌지.

 

테디 : 중국 황제들도 공신들 숙청한 경우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명나라 홍무제는 왕이 된 후 공신들과 그들의 가족까지 9만 명을 죽였습니다. 그에 비하면 사실 전 다 죽이진 않았고요. 유배를 보냈습니다. 이 정도면 양호하게 공신 숙청한 거 아닙니까? 안 그랬으면 그들의 힘이 갈수록 세져 제가 쫓겨났을지도 모릅니다.

 

솔 : 숙청은 죄가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거 아닙니까? 그들은 죄인도 아닌데 단지 위협이 될 거라는 이유로 처단하다니요.

 

테디 : 저는 정치적으로 능숙한 사람이었는데요. 미리 처단 안 하면 나중에 누가 감당하고 누가 책임집니까. 아무도 못 한다는 말이죠. 저는 그걸 미리 알고 있던 거예요. 진짭니다. 고려 신하로 있으면서 관료들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고 있었거든요. 덕분에 나라를 위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죠.

 

 

 

'태종의 선위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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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 선위 파동을 기억하시나요? 1차 선위 파동, 민무구 형제의 옥 사건입니다. 태종이 형제를 옥에 보냈는데, 이 이유가 태종과 원경왕후 사이가 안 좋아 일어난 거예요. 고작 불화 때문에 나라를 긴장하게 만들었다니 왕의 책임이 크다 생각합니다.

 

테디 : 일단 남의 연애사 가지고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으하하하) 지금까지 한 번도 연애가 자기 맘대로 됐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제 책임이라기보다는 사랑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랄까요. 제 답변은 그겁니다. 사랑의 문제다. 불화에 이유가 있습니까. 그, 바가지를 좀 많이 긁었다는 소문이 있어요. (하하하) 진짜 많이 긁었대요.

 

블루이 : 소문만 있으면 됩니까? 긁었는지 안 긁었는지..

 

테디 : 왕의 입장에서 확신합니다. 아, 너무 긁어가지고..

 

벤 : 근거가 있나요? 실록에 있다든지..

 

테디 : 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화가 오래 지속된 건 맞지만 서로 갈라선 적은 없었고 마지막에도 함께 묻혔습니다. 그러니까 애증의 관계라고 보는 게 맞겠죠.

 

 

 

'태종과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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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 : 세자 교체하셨잖아요. 양녕에서 충녕으로 바꾸셨죠. 나중에 본인 의지로 왕위에서 내려온 후 직접 옥새까지 내리며 세종을 왕으로 세웠잖아요. 그런데 세종이 왕이 된 후에도 조선의 군사권은 계속 태종이 쥐고 있었는데 혹시 그건 어떤 의미였나요?

 

테디 : 그건 하나도 잘못된 게 없다고 봅니다. 충녕이 세자가 된 지 2개월 만에 왕위를 물려줬어요. 그러니까 정통성이 없단 말이죠. 양녕이 한 10년 세자로 있다가 2개월 만에 충녕으로 바뀌었는데 내가 바로 왕위를 물려주면 또 다른 왕자의 난이 일어날 수도 있었거든요. 이 뜻이 완전한 나의 뜻이란 걸 보여주기 위한 행동입니다. 실질적으로 반란이나 정변을 막을 수 있는 효과도 있었고요.

 

제이크 : 그렇다면 태평 성대라 불리는 세종의 찬란한 시대는 결국 태종의 뒷받침이 든든했기 덕분 아닙니까?

 

테디 : 당연하죠. 그건 진짭니다.

 

블루이 : 뭐야. 갑자기 칭찬을..

 

벤 : 갑자기 태종 편을 들고 있어. (하하하)

 

테디 : 그런 충녕을 알아본 것도, 세자를 바꾼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특히 초반에는 명분이 중요한데, 저는 그런 명분보다도 현실을 따지는 군주죠. 태종이 현실적인 감각이 있는 개혁 군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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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 세종의 자질을 먼저 알아봐 세자 선택을 했다 말씀하셨는데, 제가 아는 바로는 첫째 양녕이 사고를 너무 많이 쳤다고 들었어요. 그렇다면그건 세종의 자질을 알아봤다기보다는 단순히 양녕에게 문제가 있어 세자를 바꾼 것 아닙니까?

 

테디 : 저도 웬만하면 큰아들한테 물려주고 싶었어요. 근데 얘가 좀 사고를 쳐야죠. (하하하) 사고 친 목록을 말씀드리면, 맨날 사냥 다니고, 책은 절대 안 보고, 여자들이랑 놀고, 술 먹고.. 그것이 세자로서는 저지를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인내를 가지고 참아보려 했지만,이게 부자 간의 정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아, 이건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고요.

 

테디 : 그리고 제가 세종의 자질을 알아봤다는 말에서 문제의식을 느끼신 것 같은데요. 둘째가 또 있지 않았습니까. 제가 세종을 알아보지 못했다면 둘째에게도 물려줄 수 있는 문제였고요. 현실성을 따질 수 있는 사람이 왕이 되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세종을 세자자리에 앉힌 거죠. 제가 자질을 알아봤다고 할 수 있는 거예요. 태종이 아니었다면 세종은 정말 없었을 겁니다.

 

마리모 : 아빠, 왜 그래요. (하하하)

 

 

 

'태종의 서자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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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 태종이 첩의 자식, 서얼을 차별하는 법을 본인이 만들었는데요. 이것이 조선 후기에 서얼 출신들이 굉장히 많아지면서 문제가 되었어요. 이 정책은 잘못된 거 아닌가요?

 

테디 : 현재 시각으로 보면 서얼을 차별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죠. 하지만 당시는 건국 초기잖아요. 명분이 중요했어요. 제가 서얼 출신들을 죽이고 왕에 오른 것에 대한 명분을 쌓기 위해서였습니다.

 

루시 : 서얼 출신을 관직에 나오지 못하게 한 것이 조선의 발전에 차질을 주었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테디 : 500년이라는 시간이 한 사람이 내다보기에는 너무 멀다고 생각하고요. 이어지는 짧은 미래를 보았을 때는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 아들만 해도 거의 서른 명 가까이 됐거든요. 근데 서얼 차별을 두지 않으면 왕위 계승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 뒤로 세종도 아들이 서른 가까이 됐어요. 그런 상황에서는 어느 정도 정리가 필요합니다. 성리학의 나라니까 장자 계승의 법칙, 장자 중심의 제도가 필요했거든요. 정치적으로 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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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이 : 태종께서는 정리 발언을 해 주세요.

 

테디 : 아까 이야기를 못 한 게 좀 있는데요. 제가 서적 간행을 했습니다. 지난 세미나 때 신라가 왜 가야사를 적지 않았느냐는 말이 나왔는데, 저는 고려사를 편찬했고요. 삼국사도 편찬했습니다. 그리고 태종우라는 게 있어요. 제 말년에 큰 가뭄이 들었는데, 제가 땡볕 아래 종일 앉아서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빕니다. 죽을 때까지 결국 비가 내리지는 않았지만, 승하 직전 내가 죽어 귀신이 된다면 이 날만이라도 비를 내리겠다고 말한 뒤 죽었거든요. 그 뒤로 태종이 죽은 날에는 매년 비가 왔어요. 이걸 후대에 태종우라고 부릅니다.

 

제이크 : 태종우 내리는 날이 며칠인가요?

 

테디 : 음력 5월 10일입니다.

 

솔 : 어, 장마철 아닙니까? (하하하)

 

테디 : 장마는 음력 6월이죠.

 

 

..

 

 

다음 왕은 우리에게 무척 친근한 왕입니다.

 

 


 

 

4대 세종 / 마리모

 

 

"세종대왕은 우리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임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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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네 번째 왕인 세종대왕은 태종의 셋째 아들로 어머니는 원경왕후입니다.

 

1420년 유명무실하던 집현전의 기능을 부활시켜 자신의 구상을 실현할 신진 학자들을 양성했습니다.

 

훈민정음의 창제는 세종 시대의 가장 빛나는 업적입니다.

훈민정음은 세종이 직접 창제를 지휘하였고 집현전의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선로, 이개 등의 학자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세종은 4군 6진을 개척하여 우리나라의 국토를 넓혔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적으로 가장 훌륭한 임금이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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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시대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유교정치가 정착되고 찬란한 문화가 이룩된 시대였습니다.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경제, 사회, 문화 등 나라의 전반적인 기틀을 잡았습니다.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가 양성되었고 유교 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 제도가 정비되었으며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 사업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훈민정음의 창제, 농업과 과학기술, 의약기술과 음악의 발전 및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사업을 통해 민족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하였습니다.

 

 

 

'세종의 부정관료 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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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롱 : 당시 기준으로 충분히 죽을죄를 신하들이 지었음에도 세종은 적극적으로 이들을 우호하며 다녔는데, 비리를 저지른 가족들을 감싸고 살인을 저지르고, 뇌물에, 허위 보고서도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들을 우호하며 다녔다고 해요.

 

마리모 :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좀 더 쉽게 말해주세요.

 

크롱 : 조정의 신하들이 죽을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이들을 적극적으로 감싸 돌았습니다. 세종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는데요. 세종이 잘못한 거 아닌가요?

 

마리모 : 음..

 

테디 : 그 죽어 마땅한 사람이 누군데요?

 

크롱 : 조말생과 황희입니다.

 

테디 : 그들이 어떤 잘못을 한 겁니까?

 

크롱 : 일단 황희는 비리를 저지른 가족을 감싸고, 사위가 저지른 살인도 피해자를 협박해 사건을 덮었으며 관리에게 뇌물도 바쳤고, 임금님께 올리는 보고서도 거짓으로 쓰다 걸렸어요. 조말생은 당시 뇌물 수수 관련 사형 선고 기준의 10배에 달하는 뇌물을 먹었습니다.

 

테디 : 많이 먹었구만.

 

 

 

'세종의 화폐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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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 세종이 화폐 개혁을 하려 했다는 거 아십니까? 동전이랑 지폐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물물교환 형식으로 경제가 돌아갔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화폐를 잘 안 쓰죠. 화폐가 남아돌았어요. 그러자 정부에서 백성들이 원래 사용하던 경제 수단을 탄압하기 시작했어요. 화폐를 쓰지 않는다고 벌금을 내리고 재산을 몰수했습니다. 그로 인해 사채를 쓰는 백성, 자살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잘못한 거 아닙니까?

 

마리모 : 그건 좀 잘못한 것 같습니다.

 

블루이 : 자, 테디 찬스 한번 쓸게요.

 

테디 : 조선이 나라의 모습을 갖추었는데도 화폐가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언제까지 물물교환, 그건 원시적인 방법이에요. 지금 화폐를 사용하는 걸 보면 화폐는 선진적인 방법이거든요. 힘이 있을 때, 선진 제도를 도입한 게 왜 잘못된 겁니까?

 

솔 : 도입한 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기존에 진행되고 있는 경제 방식이 있었는데 갑자기 화폐 개혁을 무리하게 내세웠다는 것에 불만이 있는 겁니다.

 

테디 :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솔 : 천천히, 조금씩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방식으로 해야 했는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갑자기 탄압하듯이 무조건으로 진행한 건 잘못됐다 생각합니다.

 

테디 : 그렇게 안 했습니다. 사실 화폐 개혁은 태종 때부터 진작에 시작한 일이고요. (하하하) 그때 여러 번 했는데요. 천천히 시작한 일이라고요, 내 말은. (으하하하) 천천히 했는데 백성들이 잘 안 썼다면서요. 안 쓰니까 확이라도 해야지. 언제까지 원시적으로 살 겁니까? 물물교환은 원시적인 시장 교류방법입니다.

 

솔 : 그러면 그 시대의 백성들은 원시적인 사람이다, 이겁니까?

 

테디 : 아니. 제 말은, 물물교환의 방식이.. 시장의 원리가 물물교환이 원칙이긴 하나, 화폐가 도입되면 가볍고 편리하잖아요. 예를 들어 솔이 지금 고기를 좀 사러 가려면, 야채를 이만큼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와하하하) 그렇게 가겠습니까, 지금? 그렇게 안 하지 않습니까.그리고 그것을 천천히 시행하지 않았습니까. 나라에 힘이 있고 부국강병할 때 개혁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시대적으로 잘 판단했다 생각합니다.

 

솔 : 아닌데요. (하하하)

 

테디 : 왜요?

 

솔 : 태종 때 시행했다 잘 안 된 거 아닙니까? 한번 끝났다가, 세종 때 다시 시작한 거니까. 천천히 시작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테디 : 어쨌든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이미 있었고, 그 방법들이 잘 안 되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거 아닙니까. 어떤 개혁이든 당연히 반발이 있습니다. 무언가 바꾸는 게 귀찮은 일이긴 하거든요. 하지만 그 반발을 이겨내고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잘한 일이죠.

 

솔 : 제가 말하고 싶은 건 화폐를 쓴다는 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거기에 대한 형벌이 너무 가혹했던 것 아니냐는 겁니다. 벌금 내리고 재산 몰수하고..

 

블루이 : 이제 마리모가 대답해보세요.

 

마리모 : 세종이 그랬다는 이야기인가요?

 

블루이 : 네. (으하하하)

 

마리모 : 음, 잘 모르겠어요.

 

 

 

'명나라 사신 접대, 과도한 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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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롱 : 명나라 사신 접대를 할 때 조선이 과도한 지출을 한 게 문제라 생각합니다. 명 사신이 북경에서 출발할 때 의주에서 잔치 벌이고, 평양 도착해서 잔치 벌이고, 한양으로 오는 길목마다 잔치를 벌이고, 도착해서도 특별 잔치니 뭐니 해서 잔치가 열리는 등 다양한 잔치가 있었습니다. 사신 접대에 과중한 비용이 들어 백성들이 괴로워하는 상소를 올려도 대국을 섬기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백성의 곤궁함은 가벼운 일이라고 답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마리모 :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블루이 : 나 자신도 내가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인가요?

 

마리모 : 네. 내가 왜 그랬지? (으하하하)

 

블루이 : 이번에는 제이크 찬스 쓰겠습니다.

 

제이크 : 아, 먼 데서 왔는데 그 정도 환영은 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조선이 명나라를 아버지처럼 섬기던 시절이었거든요.

 

크롱 : 근데 올 때마다 잔치를 벌이는 건 돈 낭비 아닙니까?

 

제이크 : 큰 잔치가 있었고 조촐한 잔치가 있었을 수 있겠죠.

 

크롱 : 그런데 일단 횟수가 많잖아요. 잔치를 벌이면 지출이 클 텐데, 사람이 있어야 하고, 장소도 있어야 하고.

 

제이크 : 음식이 있어야 하고, 마실 것도 있어야 하고..

 

크롱 : 그러다 보면 작은 잔치라도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을까요?

 

제이크 : 네, 그렇겠죠. 그런데 그건 결국 각자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요? 조선 입장에서는, 아버지 나라에서 사신을 친히 보내셨는데.. 그건 외교입니다.

 

크롱 : 아무리 아버지라 해도 백성들이 힘들다는데, 백성의 곤궁함은 가벼운 일이라는 답만 돌아오고.

 

블루이 : 이제 마리모가 대답하세요.

 

마리모 : 음.. 글쎄요.

 

 

 

'유약한 모습의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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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 세종은 즉위 초에 상왕 태종에 이끌려 자신의 뜻과 의견을 펼치지 못하였어요. 태종이 죽을 때까지 왕 역할도 하지 못했고 힘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세종의 연약함이 드러나는 사례가, 태종이 세종의 장인이자 조선의 영의정인 심온을 싫어하여 그와 그의 가족을 죽였는데, 이걸 세종은 지켜만 보았다고 합니다. 그건 잘못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리모 : 잘 이해 못 했어요.

 

벤 : 아버지인 태종이 힘이 커 세종 자신의 뜻과 의견을 펼치지 못했고 힘도 약했습니다.

 

테디 :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마리모가 왕이에요. 어리잖아요. 힘이 없어요. 아빠도 살아있어요. 아빠는 전 왕이라 힘이 세요. 근데 아빠가 외할아버지를 죽였어요. 외할아버지도 유명한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왕은 마리모예요. 우리 외할아버지를 죽이면 안 되잖아요. 근데 아빠가 죽였어요. 왕인 마리모에게도 책임이 있는 거 아니냐는 거죠.

 

블루이 : 아빠한테 뭐라고 할 수도 있는 일이거든요. 왕은 마리모니까요.

 

마리모 : 그렇지만 죽인 건 아빠니까, 죽인 사람에게 직접 손해 배상을 청구해서.. (하하)

 

블루이 : 죄를 물을 수 있는 거죠. 왜 죽였느냐고, 따질 수 있잖아요. 근데 따지지 않았어요. 왜 그랬냐는 질문입니다.

 

마리모 : 아빠가 권력이 셌다고 하니까.. 세종이 어렸으니 힘이 약했고. 아빠한테 그렇게 따지듯이 말을 하면 자신까지 혹시 위험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이야기하지 않고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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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 그렇다면 혹시 세종 씨가 생각하시는 아버지의 위엄이라는 게..

 

블루이 : 세종 씨라니,(으하하하) 무엄하도다.

 

테디 : 아까 나한테도 태종 씨라고 그랬어! ㅋㅋㅋ

 

벤 : 세종 대왕님께서, 아버지로부터 느끼는 위엄이라는 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마리모 : 아버지가 외할아버지를, 유명한 외할아버지를 죽일 정도면, 마땅한 위엄이 있는..

 

블루이 : 그렇죠. 적절한 답변이에요.

 

벤 : 그래서 세종이 아닌 태종에게 힘이 있었다는 거죠. 아무리 그래도, 그냥 지켜만 보고..

 

블루이 : 마리모가 충분히 답변을 했다고 봅니다.

 

 

 

'임금님은 고기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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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 : 이건 좀 웃기는 질문인데요. 고기를 왜 그리 좋아하셨습니까? 세종이 고기를 좋아해 비만했고, 운동을 안 해서 각종 합병증이 있었대요. 죽기 전 약 8년 동안이나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마리모 : 시각장애인이었다는 건 확실하지 않은 거 아닙니까?

 

테디 : 고기 좋아해서 몸이 허약했다는 건 사실입니다. 왜 그리 좋아하신 거예요? (하하하)

 

블루이 :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9대 성종 / 벤자민

 

 

이번 세미나의 다크호스, 벤!

 

"안녕하세요! 이번 '누가 조선 최고의 왕인가?' 세미나에서 성종을 맡은 벤자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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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이 세미나를 통하여 조선의 제9대 왕 성종에 대하여 소개를 하고, 왜 성종이 조선 최고의 왕인지를 여러분께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성종이 잘한 정치, 장점에 대해 설명하기 앞서 먼저 성종의 특별한 즉위과정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성종은 예종이 즉위 14개월 만에 일찍 요절하는 바람에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됩니다. 성종은 사실 왕이 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왕위 후보 3등으로 굉장히 낮은 서열이죠. 그 위에는 예종의 아들도 있었고, 성종의 형도 있었습니다. 근데 어떻게 이들을 제치고 왕이 되었을까요? 먼저 왕위 후보 1위였던 예종의 아들 제안 대군은 당시에 4살로 너무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리고 후보 2등은 성종의 형 월산대군은 질병이 있고 몸이 아프다 하여 제외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을산군 즉 성종이 왕이 되었습니다.

 

만약 여기 세미나 참가자 여러분 중 성종에 대하여 미리 조사를 하였거나 공부를 하신 분이라면 이 즉위과정에 대해 의문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성종이 왕이 된 건 단순히 정치적 내막 때문 아니야? 수렴청정을 통해 기존 예종세력인 권신 세력이 세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아니야?" 이렇게요.

저는 이 생각에 대하여 동의하고, 인정하고, 맞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조선 시대에는 왕위계승 때 예외인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성종의 즉위도 마찬가지로 적정자 계승뿐만 아니라 종법의 원리에도 전혀 맞지 않습니다. 예종이 일찍 요절하고, 예종의 주 세력이었던 한명회와 신숙주 등의 권신 세력이 세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성종의 할머니인 정희황후를 설득시켜 성종을 왕위에 그냥 올렸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신기한 것이 있습니다. 원래는 왕의 나이가 너무 어리면 고려시대의 섭정에 따라서 왕의 어머니가 대신 운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성종 때 처음으로 권신 세력의 원상들이 너무 강하게 요청하고 부탁하여 왕실의 가장 어르신인 정희황후가 대신 운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최초의 우리나라 수렴청정이었고, 이때 이후로 조선은 수렴청정을 섭정 대신 시행합니다. 그리고 이런 배경에서 성종은 예종을 이을 조선의 제9대 왕이 됩니다. 저는 이런 즉위 배경 때문에 여러분들이 성종을 나쁘게, 안 좋게, 별로라고 생각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최고의 왕을 가라는 세미나이기 때문에 왕인 성종의 의사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즉위과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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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7년 동안의 수렴청정 이후에 드디어 성종이 편전을 장악하게 되고 그는 장악하자마자 이전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먼저 조정의 서무결제에 원로대신들이 참여하던 원상제도를 폐지하고, 이로 인하여 왕명 출납과 서무결제권을 되찾아 왕권을 강화시킵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 출신의 문신들을 대대적으로 등용하여 기존 권신세력을 견제합니다. 이것으로 왕실은 훈구세력과 사림세력의 균형을 이루었고 왕권을 안정시킵니다. 이후 성종은 기존에 철저히 무시되었던 김종직 등의 사람세력의 의견을 반영하여 도학 정치의 기틀을 잡습니다. 구체적으로 불교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성리학 발전, 유교정착에 힘을 쓴 승유억불정책을 완전히 정착시킨 것입니다. 또한 독서당을 설치하여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고 독서저술에 전념하게 합니다. 그래서 성종 시기에 민족문화, 지리서, 음악서 등 다양한 서적이 편찬됩니다. 대표적으로 '동국여지승람', '동국통감', '삼국사절요', '악학궤범' 등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세종 때부터 진행한 '경국대전', '국조오례의' 등을 완성시키고, 압록강 건너 건주야인들의 본거지를 점령하고,두만강 건너 '우디거'의 모든 부락을 점령하여 전쟁의 위험을 없앴습니다. 또 집현전을 계승한 홍문관을 창설, 확충해 관료들과 회의, 토론을 나누었고, 성균관에 존경각을 지어 경전을 소장, 양헌고애서의 학문연구후원, 서적분배와 관학진흥등 다양하고 대단한 업적이 엄청나게 많이 나옵니다. 이런 업적으로 인해 성종은 조선의 전반적 체제를 완성시켰고 개국 이래 가장 태평 성대한 세월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래서 명도 성종이 되었고요! 

 

이런 위대한 업적 이외에도 성종은 백성들과 관료들에게 많은 덕을 베푼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에 대하여 설명하자면 먼저 농사를 짓는 이들을 생각하여 궁궐 내에 농토를 장만하여 직접 경작해 농작을 권장하고, 내전에 누에를 치게 하여 아낙네들의 누에치기와 길쌈을 장려하였습니다. 그리고 경로 정신을 배양하고자 해마다 궁중과 각 지방관아에 노인들을 모아 잔치를 베풀고, 풍성하게 먹인 다음 쌀과 고기를 하사하기도 하였고, 백성들에게 직접 나가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잘못을 한 관리를 너그럽게 용서해 깨우침을 주고, 뇌물로 걱정하는 관리에게 덕을 베풀어서 성종 시기에는 사사로운 정으로 공사를 그르치는 일이라던가, 뇌물을 받고 법을 어기는 따위에 왜곡된 관리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벼슬을 능력에 따라 배분하고 국기일에도 우울하지 않게 풍악으로 분위기를 띄웠으며, 모든 시대 왕을 통틀어서 처음으로 임금의 조회나 경연을 베풀 때 엎드려 있게 하지 않고 서 있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성종은 다양한 선정을 베풀고 잘못된 것을 전부 좋게 바로 잡았으며, 여러 가지 아름다운 일들을 많이 하여, 조선 최고의 성군이라 현재까지 불립니다!

 

지금까지 저의 기나긴, 왜 성종이 조선 최고의 왕인가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물 애호가, 성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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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 성종은 동물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혹시 아시나요?

 

벤 : 네. 아시죠. (하하하) 아니아니, 알죠. 동물 애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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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 원숭이에게 사슴 가죽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벤 : 매와 사냥하는 것도 좋아했고, 원숭이에게 가죽을 입히고 집을 만들어주는 등 동물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좋아해서 가죽을 입혔어요. 사실입니다. 그게 어때서요. 동물을 좋아하는 왕.

 

솔 : 동물을 좋아하는 건 문제가 안 됩니다. 세금을 백성들에게 돌려주어도 모자랄 판에 그걸 원숭이에게 돌려주고 있다는 게 참..

 

벤 : 그렇죠. 그렇지만 나중에 신하들에게 질책을 받고는 잘못을 인정한 뒤 다음부터 그러지 않았고 반성하는 태도를 가졌습니다.

 

솔 : 그때 왜 주었습니까?

 

벤 : 동물을 좋아해서 줬어요. 저는 그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죠.

 

솔 : 그러면 잘못을 인정하십니까?

 

벤 : 네. 그다음부터는 안 하겠다 다짐했어요.

 

테디 : 잘못을 하긴 했구만.

 

솔 : 그러면 인정하시는 겁니까?

 

벤 : 그러니까, 동물한테..

 

솔 : 아니, 인정 아니면 안 인정으로 대답하세요. (으하하하)

 

벤 : 아! 예. (하하하) 제가 동물 좋아해서 입혔어요. 맞아요. 인정합니다.

 

블루이 : 원숭이에게 가죽을 준 건가요, 입힌 건가요?

 

벤 : 입혀 주고, 집까지 만들어 주었습니다.

 

 

 

'폐비 윤 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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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 그리고 이건 다들 먹이려고 준비했을 것 같은데, 폐비 윤 씨에 대한 질문입니다. 성종이 유언으로 자신의 사후 100년 동안 폐비 윤 씨의 사건을 공론화하지 말라 했어요. 후에 연산군이 이걸 재조사해서 나중에야 그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벤 : 성종 어머니 인수대비가 정현왕후를 무지하게 싫어해서 상황을 그리 조작했거든요. 폐비 윤 씨 사건은 나라의 큰 사건이었어요. 백성들에게 숨기려고 한 게 아니라 폐비 윤 씨의 존엄? 그런 걸 지켜주기 위해 말하지 말라 한 것입니다.

 

솔 : 그러면 왜 연산군한테는 말 안 해줬어요?

 

벤 : 생각해보세요. 만약 연산군이 세자로 책봉되었는데 자기 어머니가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연산군이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다는 판단을 성종 스스로 한 거죠.

 

솔 : 오히려 덮어놓았기 때문에 더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연산군을 위한다고는 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는 거죠.

 

벤 : 그렇죠. 근데, 성종이.. 그래도 열심히 노력했어요.

 

솔 : 그렇지만 성종은 여자관계가 복잡했던 왕으로 유명합니다. 그렇기에 처음에 윤 씨와 트러블이 있었잖아요? 사건의 시초는 성종이 여자 관리를 못 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벤 : 아까도 말했듯이 저희 어머니 인수대비가 상황을 조작하셨다니까요. 제 의도가 아니에요.

 

솔 : 그러면 어머니에게 휘둘릴 정도로 왕권이 약했다?

 

벤 : 왕권이 약한 건 아니고, 어머니의 거짓말에 속은 거죠.

 

테디 : 그러면 그 판단력에 문제가 있는 거네요?

 

벤 : 판단력 문제가 아니고, 어머니를 믿은 거죠.

 

테디 : 어쨌든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했네요.

 

벤 : 구분하지 못한 것 맞습니다. 하지만 제 의도는 없었고, 이것이 제 여자관계 문제로 일어난 일도 아니며, 이 사건을 숨긴 것도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한 일이 아닙니다.

 

솔 : 그럼 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 자신의 책임이 있고 잘못이 있다는 걸 인정하십니까?

 

벤 : 제가 한 일이니까 제게 책임이 있는 게 맞죠.

 

솔 : 그러니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 아니오로 대답해주세요. (하하하)

 

벤 : 저는, 그러니까, 뭐,

 

솔 : 예, 아니요! (와하하하)

 

벤 : 예, 알았어요. 예. 알겠습니다. (하하하) 제가 잘못한 것 인정합니다. 그저 상황이 그랬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블루이 : 여기까지, 다음 질문 해주세요.

 

 

 

'성종의 여성 차별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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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롱 : 조선 여성 인권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성종 시대에 어우동이라는 여자가 있었어요. 그 여자가 남편이랑 맞바람을 피웠거든요. 그런데 성종은 아내에게만 죄를 묻고 벌을 내렸어요. 게다가 당시 법으로 곤장만 때리면 될 거을 본보기를 위해 사형까지 내렸다고 합니다. 또한 재혼한 여성의 자식은 과거를 볼 수 없다는 법이 성종이 만든 경국대전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정에서 열린 재혼 금지법에 대한 논의에서 신하 46명 중 42명이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종은 끝내 여성의 재혼을 금지시켰습니다. 남자는 한 사람이 두세 명의 첩을 둘 수 있었다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요?

 

벤 : 먼저 어우동과의 이야기는 어우동 야사에 조금 나오는 글일 뿐이에요. 그리고 경국대전은 제가 다 만든 게 아니라, 세종 때부터 만들어 온 것을 마무리 지은 것뿐입니다. 따라서 제가 직접 재혼 금지를 주장한 건 아니에요.

 

크롱 : 주장했는데요?

 

벤 : 네? (하하하)

 

크롱 : 조선 조정에서 재혼 금지법 논의가 열렸을 때 신하들 다 반대하는데도 성종이 밀어붙였다니까요.

 

벤 : 아.. 알겠습니다. 아, 오케이, 신하들이 반대했어요. 하지만 저는 왕이에요. 성종 저만의 주장도 있는 겁니다. (하하하)

 

블루이 : 바로 그 주장이 문제라는 겁니다, 지금.

 

테디 : 이게 왜 문제냐면, 경국대전은 조선의 헌법이거든요. 이게 조선 후기까지 작용해서 여성들은 큰 차별을 받게 됩니다.

 

블루이 :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조선 여성 인권의 원흉이 성종이란 것까지는 아니고, 재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거예요.

 

벤 : 음.. 제가, 제가 잘못했어요. (하하하하)

 

 

 

'성종의 건주야인 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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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이 : 우리의 레몬, 질문해주세요.

 

레몬 : 1479년에 좌의정 윤필상을 도원수로 삼아 압록강을 건너 건주야인들의 본거지를 정벌하였고, 1491년에는 함경도 관찰사 허종을 도원수로 삼아...

 

블루이 : 레몬 질문의 마지막 문장이 뭡니까? (하하하)

 

레몬 : 건주야인들의 잘못이 없었을 텐데 본거지를 정벌한 게 잘못했다 생각해요.

 

블루이 : 오케이, 오케이. 한번 찾아가 봅시다. 어떤 본거지를 정벌했습니까?

 

레몬 : 압록강 건너에 있는 건주야인들의 본거지요.

 

블루이 : 그것이 잘못됐다는 이야기죠? 왜 잘못됐습니까?

 

레몬 : 건주야인들이 잘못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데, 없었다면 죄 없는 사람의 재산을 빼앗은 거니까..

 

블루이 : 잘못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잘못이 있습니까? 아니면 없습니까?

 

레몬 : 어.. 없을 것 같습니다. (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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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이 : 그렇다면, 만약 잘못이 있다면 그들의 본거지를 점령하는 것이 괜찮은 일입니까?

 

레몬 : 잘못이 있어도 건주야인들의 재산을 뺏는 것이니까요.

 

블루이 : 그러면 재산을 뺏지 말고 그들을 죽이는 것은 괜찮은 일일까요? 레몬이 질문의 포인트를 잡는다면 좋을 것 같아요.

 

레몬 : 정발하러 가면 사람이나 재산이나 무고한 생명을 잃을 수 있으니까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블루이 : 성종은 왜 정벌했습니까?

 

벤 : 변방의 야인들을 확실히 정리해 전쟁의 위험을 없앤 것이죠. 우리가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우리를 공격했을 수도 있고, 백성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었을 겁니다.

 

레몬 : 건주야인들이 전쟁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데, 그걸 어떻게 알고.. (하하하)

 

블루이 : 테디, 레몬을 도와주세요.

 

테디 : 음, 어.. (하하하) 일단 해볼게요. 건주야인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블루이 : 저는 없습니다.

 

테디 : 사실 저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거든요. 여진족, 만주족이나 흉노족, 말갈족.. 이런 힘 있는 민족을 공격하는 것은 그럴 만한 일이라 생각하는데요. 이름도 못 들어본 건주야인들은 힘이 셉니까?

 

벤 : 그들이 위험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죠. 그렇지만 저는 만일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정벌한 거예요.

 

테디 : 그건 비겁한 것 아닙니까? 힘센 북방민족들이 백성들 괴롭힐 때는 벌할 생각을 않고, 약한 사람들만 공격하는 건 전형적인 쇼 아닙니까?

 

벤 : 저는 조선의 왕이고, 그렇기에 조선의 백성을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테디 : 그러면 여진족을 공격하셨어야죠.

 

벤 : 여진족을 공격했다가 더 큰 피해를 볼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성종의 군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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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 : 조선 왕들의 이름에 종이나 조를 붙이죠. 우스갯소리로 문과 무로 나누었을 때, 그 왕이 무에 더 가까우면 조, 문에 더 가까우면 종을 붙인다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성종은 군사력이 무척 약했습니다. 나라 안으로는 태평성대였다지만, 군사력은 약했어요. 실제 성과나 상소가 올라온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벤 :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전쟁의 위험을 없앴고, 무엇보다 최종적으로 임진왜란 같은 큰 전쟁은 없었기에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테디 : 조선의 국경선이 지금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인데요. 성종이 한번 연변 지역까지 공격했지만 실패했어요. 그게 성종의 군사력이 약했다는 제이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될 것 같은데요. 우리 조선이 그 이상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되는 한계를 보여주었고, 그 국경선은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죠.

 

벤 : 일단 성종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제 시기에는 큰 전쟁 없이 잘 넘어갔다 생각해요. 하지만 군사력이 약했다는 주장은 반박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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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롱 : 이건 약간 헷갈리는데요. 한번은 성종이 여진족 토벌하러 군사 4만을 모았어요. 그러자 군량이 부족한 초겨울이라 왕을 말렸지만 성종은 이를무시하고 정벌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난 여진족은 200여 명이었고, 총 네 명을 죽였다고 해요.

 

벤 : 네? 네 명을 죽였다고요?

 

크롱 : 네.

 

벤 : 4만 명이 200명을 만나서 네 명을 죽였다는 이야기는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크롱 : 그건 저도 헷갈리는 부분이니 잠시 빼더라도, 병사들이 얼어 죽고, 굶어 죽고, 탈영하기도 했습니다. 겨울에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벤 : 어..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고, 4만 명을 데려가 네 명을 죽였다는 게 솔직히 말하면 조금 슬프네요. 그게 사실이라면 군사력의 문제가 정말 심각하네요.

 

크롱 : 아니, 군사력이 약했다는 게 아니라 성종이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거예요. 대간이 싸우지 말고 말렸잖아요.

 

벤 : 근데 당시에 제가 보기에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봤거든요.

 

테디 : 결과로 책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벤 : 그래서 네 명 죽이고 왔으면.. (으하하하)

 

테디 : 그러면 사과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솔 : 사과하세요. (하하하)

 

테디 : 잘못을 인정합니까?

 

벤 : 아니, 그 전에 그게 사실이라면,

 

솔 : 예, 아니오로 대답하세요! (와하하하)

 

제이크 : 잠깐만요. 근데 어쨌든 그 여진 정벌에서 승리를 거둔 건 맞죠?

 

크롱 : 그건 정확히 안 나와 있었는데.. 그런 걸로 추정됩니다.

 

솔 : 잠깐만, 승리했다는 거였어?

 

제이크 : 여진족을 치러 가서, 조선군이 크게 피해를 봤다거나 그런 건 없었잖아.

 

테디 : 탈영도 하고 했다잖아. 굶어 죽고, 춥고.

 

벤 : 사람들을 좀 낭비하긴 했지만, 최종적으로 승리했다면 그것에 초점을 두기로 하고, (하하하) 만약 졌다면 군사력이나 판단력 면에서 할 말이 없네요.

 

 

 

'성종, 서자 차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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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 태종 때 내려진 적서 차별과 서자 관직 제한을 성종이 구체적인 조항으로 만들어 경국대전에 반포했어요. 서자 차별이 더 강화된 거 아닌가요?

 

테디 : 그게 왜 문제인지도 같이 말씀해 주셔야죠.

 

솔 : 왜 문제냐면, 저 선조가 바로 서손입니다. 조선 최초 서얼 출신 왕이거든요. 열등감도 많이 느꼈고, 듣지 않아도 될 비난도 많이 받았습니다.

 

벤 :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경국대전은 제가 만들었다기보다는 마무리를 지은 거죠. 아니, 잠깐만, 혹시 이것도 제가 주장한 거라 나옵니까?

 

솔 : 예. (하하하하) 성종이 더 구체화 시켰습니다.

 

테디 : 서자 차별 문제점을 또 지적하고 싶은데요. 정조 때를 보면 북학이라고 해서 조선이 다시 부흥해요. 아주 실용적이었던 그 북학자들은 대부분 서자 출신입니다. 성종이 서자 관직 제한을 두지 않았더라면, 정조 때처럼 조선이 부흥할 기회가 훨씬 많지 않았을까요?

 

벤 : 인정하겠습니다. 재능이 무시되는 건 저도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블루이 : 이쯤에서 벤이 정리 발언해주세요.

 

벤 : 네. 성종은 초기부터 후기까지 장점이 굉장히 많으며, 백성 생활의 질도 높이고, 학문과 정치를 발달시킨 왕입니다. 제 잘못이 나온 것도 인정하지만, 제가 잘한 걸 마지막으로 다시 주장하고 싶습니다.

 

 

 

..

 

 

이렇게 태조, 태종, 세종, 성종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직 네 명의 임금이 남아 있죠?

 

'내 왕이 최고야!' 세미나,

 

다음 소식에서 이어 '전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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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