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ce Camp

쪽빛캠프

피스캠프 > 진행중인 캠프 > 쪽빛캠프
2017.11.13 [17’ 제주도 쪽캠] 내 나라가 최고여! <피스캠프 한국사 세미나, 2편> 2017.11.19

 

 

'내 나라가 최고야!' 한국사 세미나. 점점 열기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조선으로 이어지는 두 번째 이야기 함께 떠나볼까요?

 

참가국 - 레몬(신라), 마리모(조선), 루시(백제), 솔(가야), 크롱(고구려), 제이크(고려), 테디(발해)

중립국 - 블루이(사회자), 수, 다겸

 

() - 일동의 반응

 

 

batch_IMG_0975.jpg

 

 

고구려 / 크롱

 

고구려를 맡은 크롱의 기조연설, 시작합니다!

 

 

batch_IMG_0982.jpg

 

 

대중적 인식이 가장 좋았던 나라 고구려~!

 

 "고구려는 주몽에 의해 세워진 나라로 본래 졸본부여라는 이름이었으나 고구려, 구려라 불리다 후기에는 고려라고 불렸습니다. 고구려라 불리는 건 왕건의 고려와 구별을 위해 고구려라 부릅니다. 삼국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통치 영역을 가졌었으며 가장 대중적 인식 또한 좋았습니다. 이렇게 잘난 나라 고구려의 더 잘난 점을 알아보도록 할까요!"

 

 "첫 번째로 철하면 가야만 있던 게 아닙니다. 고구려 요동 지방에는 현대에도 알아주는 대규모 철광이 존재했습니다. 그 때문에 도로망도 발달해 수레를 활용하여 원활한 수출이 가능했습니다. 또한 평양에 수레가 대량으로 다닐 수 있었던 고구려시가다리유적도 발견되었습니다."

 

 "두번째로 고구려의 문화인데 고구려의 미술품들은 강건하고 웅장한 기품이 있는 작품들이었으며 섬세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고분벽화나 강서대요의 사신도가 손에 꼽힙니다. 또한 고구려는 프레스코 기법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벽화기법도 있었다고 합니다. 고구려는 음악도 훌륭했는데, 고구려의 관료인 왕산악이 거문고를 제작했습니다. 거문고는 조선까지 히트를 치며 이름을 날렸으며 당나라에서는 고구려의 음악이 궁중음악이 되어 울려 퍼진 적도 있습니다. 또한 고구려의 건축물들로도 이름을 날렸는데, 성곽과 무덤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고구려만의 붉은 기와와 온돌, 분요로는 장군총이 유명합니다. 고구려의 과학은 독자적으로 천문학이 상당히 발전했습니다. 중국에서도 발견하지 못한 별자리를 발견한 바 있으며 이 중 일부는 중국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조선 시대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은 운 좋게 남은 고구려 천문도 인본을 다시 새긴 것 입니다. 또한 고구려는 잦은 전쟁으로 인해 의술과 침술이 뛰어났습니다."

 

 

진지하게 듣는 친구들. 크롱의 스피치를 듣고 질문을 생각합니다.

 

 

batch_IMG_E0983.jpg

 

 

세 번째로 고구려의 사회를 자랑하자면, 엄격한 처벌로 인해 법률을 어기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등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기록에 따르면 남녀노소 관계없이, 농담으로는 개까지도 책을 가까이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 번째로 동맹국이었던 신라가 백제, 왜, 가야 세력에 공격당하자 보기 5만 명을 보내 신라를 구원했습니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는 고구려 부흥운동이 있었고 고구려를 계승해 나라를 세운 소고구려와 발해와 고려가 있었으며 발해의 국호로 알려진 발해는 고구려를 싫어하던 당이 비위를 맞추기 위한 외교용 국호이며 공식적인 국호는 고려라는 설 또한 존재했었습니다."

 

 

크롱의 기조발언이 끝난 뒤, 박수로 청문회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batch_IMG_E0984.jpg

 

 

블루이(사회자)의 말과 함께 세미나를 시작합니다. 

 

"이제 크롱의 스피치와 관련해서 질문이나 공격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batch_IMG_E0977.jpg

 

 

'고구려의 철기문화'

 

솔 

"제가 하겠습니다. 철 문화가 발달했다고 했는데요."

 

(하하하)

 

크롱이 방금 기조연설에서 가야의 철 문화를 공격했었죠.

 

 

batch_IMG_E0986.jpg

 

 

솔 

"철 문화가 발달했다고 하는데, 고구려의 철기생산이 증대되고 수공업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때,

그 혜택이 정작 백성들에게는 거의 돌아가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된 것인지요?"

 

크롱

"어… 그것은 저도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백성들에게 무언가 가지 않았다는 것은 잘 못 한것 같으나…

 

(하하하) 

 

"그 돈이 정말 어디로 쓰였는지는 정확하지 않고, 왕의 유흥을 위해 썼는지도 정확하지 않잖아요.

다른 좋은 쪽으로도 사용되었을 수 있으니 나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batch_IMG_E0981.jpg

 

 

"좋은 쪽으로 사용된다는 게, 백성을 위해 정책을 만든다거나 복지 쪽으로 쓰여야

백성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고 말할 수 있는데, 문서에는 그렇게 기록되어있지 않아서요."

 

크롱

"그렇군요. 음… 할 말이 없어요."

 

블루이 

"크롱 찬스를 써서 방어를 하겠습니다. 가야의 철은 백성을 위해 쓰였나요?"

 

(이야~)

 

매섭게 공격하던 솔의 허를 찌르는 블루이의 기습 질문!

 

 

batch_IMG_E0978.jpg

 

 

"애초에 혜택이 돌아갔다거나 돌아가지 않았다는 정보가 아예 없습니다."

 

블루이 

"아니지, 백성을 위해 썼다고 했잖아요! 농기구 만들고 그랬다며!"

 

"아, 맞다! 돌아갔습니다!"

 

(하하하)

 

가야에게 유리한 답변을 할 찬스를 놓친

솔의 뒤늦은 깨달음이 모두를 웃음바다로 만듭니다. 

 

 

batch_IMG_E0991.jpg

 

 

테디

"그때 백성이 너무 적어서 백성 모두가 왕족이었던 것은 아닙니까?" (깐족)

 

블루이

"지금은 가야를 공격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백성을 위해서 썼다고 하면 내가 찬스를 쓴 것에 대한 공격이 되는 건데." (아쉽)

 

"썼어요! 썼어요!"

 

...

 

'영토와 통치영역'

 

고구려의 철기문화에 이어서 영토와 통치영역으로 주제가 넘어옵니다. 

통치영역에 큰 관심이 있는 발해, 테디가 질문합니다. 

 

테디

"압도적 통치영역이라고 했는데, 제가 알기론 발해보다 통치영역이 작거든요."

(하하하)

 

 

batch_IMG_1037.jpg

 

 

크롱

"네, 삼국에서 압도적인 통치영역을 가졌었다고 말했습니다."

 

테디

"우리 역사 전체에서는 발해가 가장 압도적인 영토를 가졌던 것 아닙니까?"

 

크롱

"그런데 제가 말한 것은 삼국에서고, 테디가 말씀하는 것은 발해를 포함한 것이고."

 

 

batch_IMG_E0996.jpg

 

 

테디 

"그러니까, 제일 넓었던 것은 발해가 맞는 거죠? 구분을 명확하게 해야죠! 

통치영역은 발해가 고구려보다 2배 넓었거든요."

 

(하하하)

 

크롱

"1.5배 아닌가요?"

 

(하하하)

 

학계와 여러 자료에 따르면 발해의 영토는 고구려의 1.5~2배, 신라의 3~4배에 달했다고 합니다.

1.5배와 2배 중, 각자에게 유리한 대로 해석하는 크롱(고구려)과 테디(발해)의 논쟁이 모두에게 웃음을 줍니다.

 

 

batch_IMG_1009.jpg

 

 

블루이

"비교적 정확한 통계와 데이터를 갖고 있는 모양이네요? 실제로 1.5배에서 2배 사이였다는 데이터를 어디선가 읽었던 거죠?"

 

크롱

"1.5배라는 사실을 저 책에서 읽어낸 것 같습니다."

 

블루이

"원래 토론은 약간의 논리와 데이터의 양으로 하는 거죠. 약간의 논리와 데이터의 양만 있으면 우승할 수 있습니다."

 

마리모

"논리가 없는데…"

 

 

batch_IMG_E0990.jpg

 

 

'고구려의 음악'

 

이번에는 문화와 관련된 질문입니다. 먼저, 고구려의 음악에 대해서도 알아볼까요?

 

"음악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셨는데요.

고구려의 음악 15곡 가운데 정작 살아남은 것은 한 곡인데, 그 곡도 의복을 포함한 본래 기풍을 잃었다고 전해옵니다. 

그렇다면 문화적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요?"

 

크롱

"그 당시에는 엄청난 가치가 있었고

당나라에서 궁중음악으로 흘러나올 정도면

그 당시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이야~)

 

테디

"당나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최강국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나라에서 궁중음악으로 쓰인 것은 음악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 아닙니까?"

 

"네?"

 

(하하하)

 

당황한 솔. 

 

 

batch_IMG_E0998.jpg

 

 

블루이

"크롱, 고구려의 거문고가 뛰어난가요, 가야의 가야금이 뛰어난가요?"

 

크롱

"고구려에서 거문고를 만들었기 때문에 거문고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블루이 

(농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하하하)

 

솔은 무언가 공격거리를 찾아낸 듯,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거문고에 줄이 몇 개예요? 가야는 12개의 소국이 있기 때문에

12개의 줄이 가야금이 만들어진 하나하나 세세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야금이 더 나은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batch_IMG_E1022.jpg

 

 

블루이

"마리모, 거문고에 줄이 몇 개죠?"

 

마리모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데, 제 기억엔 6개인가 7개입니다."

 

거문고의 줄은 6개라고 합니다. 

줄이 12개인 가야금보다는 적네요.

 

 

batch_IMG_E1021.jpg

 

 

'고구려의 순장 문화'

 

발해의 순장 문화가 산 사람을 묻는 야만의 풍습이 아니냐고 공격받은

테디가 이번엔 고구려의 순장 문화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테디

"크롱, 고분군이라고 하셨는데요. 그것도 순장입니까?"

 

솔 

"맞습니다. 고구려의 무덤은 강건하고, 기품이 섬세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테디, 언제까지 이럴 거예요?"

 

테디

"끝까지 이럴 건데…"

 

 

batch_IMG_E0999.jpg

 

 

그 때, 두루뭉실한 크롱의 대답!

 

크롱

"찾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고구려는 순장이 아닐 겁니다."

(하하하)

 

 

batch_IMG_E1012.jpg

 

 

블루이

"순장 맞아요!"

 

마리모

"블루이 확실합니까?"

 

블루이 

"네, 그때 당시에는 다 순장했습니다."

 

삼국시대 등 고대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대부분 순장의 풍습이 있었습니다.

 

 

'고구려의 엄격한 사회질서와 법'

 

테디

"고구려의 사회질서와 엄격한 법을 말씀하셨는데요. 

요즘 법치주의라는 말이 있는데, 그 당시에 법치주의를 실행했다는 것은 굉장히 선진화된 나라네요?"

 

웅성웅성하는 사람들.

 

"하하하"

"뭐야~"

"발해라고 막 편들어주는 거야?"

 

그때 루시가 일격을 던집니다. 

 

루시

"엄격한 처벌이 있다고 했는데요. 남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한 사람은

본인이 아닌 그 자식들을 노비로 만들어서 변상하게 했대요. 이거 너무 한 것 아닙니까?"

 

 

 

batch_IMG_E1026.jpg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란 반응. 

 

헉!

우와!

너무했다!

어떡해!

일격!

빠빠이!

오마이갓!

 

 

batch_IMG_1002.jpg

 

 

크롱

"그것에 대해선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절도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는 훔친 물건의 12배를 물게 하고

가축을 훔치면 노비로 삼는 식으로 본인에게 처벌했는데요. 말씀하신 법은 저도 잘 못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이크

"법 이야기 조금만 더 하자면, 엄격한 법 처벌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이 굉장히 적었다고 하는데요.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도 사형시켰다고 하거든요. 살인죄나 반역죄는 사형이 이해가 되는데,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사람입니까?"

 

(충격…)

 

 

batch_IMG_E1010.jpg

 

 

크롱

"저도 몰랐습니다."

 

블루이 

"방어찬스 쓰겠습니다. 먼저, 루시의 질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노비제 자체는 모든 나라가 다 있었으므로 고구려만 문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식에게 그 빚을 변상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2017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는 일입니다.

빚의 대물림. 그렇잖아요? 그러므로 고구려의 잘못은 없습니다."

 

(우와~) 

"루시 반론해! 반론해!"

 

루시 

"이건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batch_IMG_E1028.jpg

 

 

블루이

"네, 그래서 그 접근이 잘 못 되었다는 겁니다. 인권을 논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 그 시대의 인권을 논하려면, 순장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다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구려가 훌륭한 나라다 아니다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인권을 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자는 목을 쳤다는 게 조금 과하게 느껴지긴 하는데 그것이 고구려를 뛰어나게 만든 것은 아닐까요?

모든 군 형법은 원래 가혹합니다. 현재도 사회에서 지은 죄보다 군대에서 지은 죄는 엄격하게 다스리고 있죠.

고구려도 그런 차원에서 군형법이 일반형법보다 엄격했다 이 수준에서 접근을 해야 하는 문제라고 보고요.

사형이 잔인하지만 지금도 현존하는 제도고, 그 당시에는 모든 나라에서 목숨의 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지금과 달랐음을 고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이크

"저는 인권이 아니라 처벌의 경감을 물어본 겁니다. 너무 무겁지 않나요?"

 

 

batch_IMG_E1011.jpg

 

 

블루이

"방어찬스 끝! 뭡니까, 사람을 죽이고 말이에요!"

 

크롱

"아까 블루이가 말씀했듯이, 그때는 사람 목숨의 가치가

지금보다는 많이 낮아서 사형의 기준이 조금 더 무겁다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batch_IMG_1030.jpg

 

 

다겸

"다겸이도 질문할래요!"

 

옆에 있던 다겸이도 이모 삼촌들 따라서 질문을 하려고 손을 들곤 합니다.

언제쯤이면 함께 세미나를 할 수 있을까요, 다겸아? ^^

 

 

batch_IMG_E1013.jpg

 

 

'고구려의 고분벽화'

 

레몬 

"무덤의 벽화를 그린 이유를 말해줄 수 있습니까?"

 

크롱

"이런 걸 물어볼 줄 모르고…"

 

(하하하)

 

크롱은 예상치 못한 레몬의 질문에 허를 찔린 듯합니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대한 레몬의 설명을 들어볼까요?

 

레몬, 무덤에 벽화를 그린 이유가 뭡니까?"

 

레몬

"아주 오랜 옛날 고대인들은 사람은 죽어도 영혼은 살아있다고 믿었고, 현세와 똑같이 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무덤에 벽화를 그려 넣은 것도 무덤을 단순히 시신을 가두는 공간이 아닌 나름의 소우주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야~)

 

 

batch_IMG_E1018.jpg

 

 

테디

"엄청난 내용인데?"

 

블루이 

"굉장한 내용이죠! 그런데 그 질문은 일반론적인 접근에서 보자면 굉장히 의미 있는 질문이에요.

그런데 고구려에만 벽화가 있었던 게 아니죠? 어느 나라에도 벽화가 있었죠. 고대 이집트부터요."

 

테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잘 없지 않나요?"

 

블루이

"잘 모르겠습니다. 발해는 없나요?"

 

테디

"벽화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부분 있지 않나?"

 

제이크

"신라는 있어요!"

 

일동

"맞아, 신라는 있어."

 

*신라는 천마총이란 고분 벽화가 있습니다. 

천마총은 신라의 유일한 벽화사료로 신라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고구려의 언어'

 

이번엔 마리모가 크롱에게 질문합니다. 

 

마리모

"고구려에는 고구려만의 언어가 있었나요?"

 

 

batch_IMG_E1017.jpg

 

 

크롱

"자료가 많이 없어서 발굴을 더 해봐야 합니다. 고구려 어가 있다는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현재 없습니다."

 

블루이

"마리모, 고구려어가 있습니까?"

 

마리모

"옛날에 고구려 때는 성城이라는 말을 구루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블루이

"그것이 고구려어가 존재했다는 증명이 되나요?"

 

마리모 

"이 증거가지고는 증명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블루이

"하지만 크롱이 말했듯, 다른 근거들이 있기는 하다는 이야기네요?"

 

 

batch_IMG_E1020.jpg

 

 

'고구려의 전쟁과 평화'

 

고구려 하면 강력한 군사력과 넓은 영토죠? 이번에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솔 

"잦은 전쟁이 있다고 했는데, 그 잦은 전쟁으로 인해 국가 내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는지요?"

 

 

batch_IMG_1104.jpg

 

 

크롱

"광개토대왕의 선왕 때 내정에 힘을 써서 백성들의 삶에 큰 지장이 없었다고 합니다."

 

"제가 조사한 바로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때 국가외교적으로 활동한 기록은 자세히 있으나

그것에 비해 너무 대조될 정도로 국내에 대한 자료가 없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힘을 썼다는 자료의 출처가 궁금합니다."

 

 

batch_IMG_E0995.jpg

 

 

크롱

"기록에 보면 국내에서도 평화로웠다고 합니다. 문서에 기록이 담겨있습니다."

 

블루이

"당시에 평화로웠다는 내용이 고구려 문서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가요?"

 

크롱

"아니오. 정리된 문서(책)에서 봤습니다."

 

"신라를 구원했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신라를 위해서 한 것인가요? 군사를 파견한 게?"

 

크롱

"일단 동맹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게 언제죠?"

 

크롱

백제와 가야가 쳐들어왔을 때, 그때 신라와 고구려가 연맹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동맹이라고 칭하긴 했으나,

나중에 신라에게 고구려가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도와줬다고 생각됩니다.

 

문서를 보니,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를 실효 지배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렇게 갑의 입장이 되기 위해서 도움을 준 것이 아닌가하고 추측이 되서 물어본 겁니다."

 

테디

"그게 왜 문제입니까?"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테디

"그것은 오히려 고구려의 힘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아닌가 싶은데요?"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하하하)

 

 

batch_IMG_E0992.jpg

 

 

'휴경 때는 약탈을? 도적국가 고구려?'

 

블루이

또 질문 및 공격! 지금까지 고구려는 훌륭한 나라인 것 같죠?

 

루시

"농업 중심의 정착 생활을 했다고 하는데, 이 당시의 농경 방법은 한 번 농사를 지은 뒤, 2~3년간 농작지 휴경을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땅을 못 쓰는 동안 고구려는 약탈하면서 전쟁을 하면서 먹고 살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고구려는 휴경하는 2~3년 동안은 도적국가 아닌가요?"

 

 

batch_IMG_E1029.jpg

 

 

감히 고구려를 '도적국가'라고 칭한 루시의 지적에 친구들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오오오~)

도적국가, 도적국가!

도둑놈 나라래!

ㅋㅋ

 

크롱

"일단 전쟁에서 승리하면 진 나라의 곡식을 가져오잖아요. 지난 번에 큰 나라와 전쟁해서 이겼을 때, 10만 섬 넘게 곡식을 가져왔다고 하는데요.

적어도 몇 년 정도는 한 번 전쟁해서 이기면 먹고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적질을 한 건 맞지만, 도적 나라라고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반론이 있습니다. 고구려가 농본국가로 자리 잡기 전에, 초기에는 약탈경제를 행해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 중, 후한을 수시로 침략하면서 막대한 자금과 포로를 뺏어왔다고 합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크롱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일단은 먹고 살아야 되니까…"

 

(하하하)

 

블루이

"어디나 다 마찬가지 아닙니까? 2-3년간 휴경 상태였으면 어느 나라나 다 같을 것 아닙니까?"

 

"그건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저는 그 시기를 말한 게 아니라, 농사를 전업으로 하기 전 시대의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블루이

"농사를 지을 줄 모르는데 그럼 굶어 죽으라는 이야기입니까? 뺏어라도 와서 먹고 살아야지."

 

테디

"오히려 그것이 고구려의 힘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그 당시에는 서로에게 지배권을 강화하는 게 중요했거든요.

그래야 살아남고 중앙집권이 되니까요. 곡식을 뺏아오는 게 개개인은 도적이지만 나라별로 보면…"

 

"나라가 그러면 도적질이 아닙니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테디. 

 

테디 

"아니~"

 

(하하하)

 

"요즘도 나라 간에 전쟁이 일어나서 한 나라가 지면 곡식을 뺏아 갑니다."

 

테디의 근거 없는 주장에 다들 당황합니다.

(엥? 응?)

 

이번엔 근거 없이 한마디 던져봤던 테디, 한발 물러섭니다.

 

테디

"아닌가?"

 

(하하하)

 

블루이

"요즘은 오일을 뺏어오죠."

 

 

batch_IMG_E1033.jpg

 

 

아직 사람들의 날카로운 질문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고구려가 약탈을 했다는 후한은 굉장히 강한 나라였습니다. 이 나라에 비해서 고구려는 굉장히 작은 나라였는데요.

후한이란 나라는 고구려 말고도 신경 쓸 나라가 굉장히 많아서 고구려가 그러던 말던 방치하는 상태였지,

고구려의 힘이 강해서 그 나라의 곡식을 뺏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닙니다."

 

테디

"지금 후한이라고 하셨는데, 후한은 삼국지의 배경이 아닙니까?

전국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용해서 자신의 세력을 키운 덕에 고구려가 세진 것 아닙니까?"

 

"그러면은 결국 고구려의 힘이 세서 큰 게 아니라, 중국이 어지러운 상태이기 때문에 고구려가 세력이 커진 것 아닙니까?

고구려가 자체적으로 큰 게 아니라, 운이 좋은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운이 좋은 것 아닙니까!"

 

블루이

"운도 실력입니다."

 

(하하하)

 

 

'고구려의 멸망'

 

이번엔 강한나라 고구려의 멸망 과정을 살펴봅니다. 

 

마리모

"고구려는 어떤 이유 때문에 멸망했는지 아십니까?"

 

 

batch_IMG_E1035.jpg

 

 

크롱

"일단은 신라와 당이 연합을 해서 고구려를 쳤습니다.

그때 무책임하게… 제가 이것을 공부한 것 같은데 머릿속이 하얗습니다."

 

블루이

"혹시, 마리모는 알고 있습니까?"

 

마리모

 

테디

"고구려가 망한 이유는 신라가 당나라와 손을 잡고, 삼국통일을 하면서 시작했어요.

신라가 한때 한강유역을 차지하면서 강성해졌는데, 660년에 백제를 멸망시키고, 8년 뒤에는 고구려를 멸망시킵니다.

나당연합군에 망했죠. 신라의 ‘나’ 자와 당나라의 ‘당’ 자해서 '나당연합군'."

 

 

'연개소문과 세 아들'

 

고구려 멸망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이 계속됩니다.

제이크가 고구려 말의 실력자, 연개소문의 잘못을 지적합니다. 

 

제이크

"고구려 멸망 관련해서 할 말이 있는데요. 연개소문 장군 아십니까?"

 

다겸

"아하하하하"

 

(하하하)

 

제이크

"연개소문 훌륭한 사람입니까? 살아있을 때는 참 잘했는데, 나이가 들고 죽으면서 아들이 셋 있었어요.

그런데 한 사람에게 서열을 몰아주지 않고 세 아들에게 일정하게 권력을 나눠준 거죠.

 

그게 왜 잘 못 한 거냐면 나중에 형제들끼리 권력 다툼하다가 나라가 망했거든요.

첫째가 위에 있는 국내성과 요동성을 가지고 당나라에 갖다 바치면서 고구려를 멸망시켜주세요라고 '직접' 투항했어요!"

 

(오오오!)

 

"심지어 이 지방은 아까 철문화가 찬란했다고 자랑하신 요동지방인데요.

옛날부터 고구려랑 싸움할 때 보급품 조달이 힘들어서 문제였는데, 이 땅이 요충지였거든요."

 

"첫째가 여기를 바치면서 그 문제가 싹 해결이 되었어요.

그 후에 부여성, 해안성 다 함락시키고 고구려가 말했죠. 나라가 너무 엉망진창인 것 같은데요."

 

크롱

"초반에는 멀쩡했고요. 아마도 연개소문이 세 아들에게 권력을 나눠준 것은 서로 이야기를 하는 민주주의 같은 거죠.

"서로 이야기와 상의를 나누면서 조금 더 나은 선택지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거죠. 지금 우리나라도 삼권분립으로 권력을 나누잖아요."

 

"그런 식으로 나눠서 조금 더 나은 나라를 만들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어요."

 

(하하하) 

 

크롱의 뻔뻔한(?) 대답에 다들 웃음이 터집니다.
 

 

batch_IMG_1006.jpg

 

 

제이크

"삼권분립은 행정상 분류한 것이고, 연개소문은 후계자를 안정해주고 간 것이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형제들끼리 싸우다가 나라가 쫄딱 망했는데요."

 

크롱

"그렇다면 딱 한 사람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죽으면 그런 일이 안 생깁니까?"

 

제이크

"나라를 팔아먹은 게 그 사람이 매국노 기질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형제끼리 싸우다가 자기 입지가 곤란해지니까 뒤가 없다는 생각으로 가는 것이거든요.

다 연개소문 탓 아닙니까?"

 

크롱

"연개소문이 나라를 말아먹으려는 의도가 아니었고, 형제들이 나라를 망친 거잖아요."

 

블루이

"모든 나라의 멸망은 그런 식이죠. 고려는 뭐 아름다운 모습으로 멸망했나요?"

 

제이크 

"저도 욕 많이 먹었거든요."

 

(하하하)

 

블루이

"나라의 멸망을 가지고 공격하는 것은 부적절한 공격이 아닐까요?"

 

"어떻게 멸망하는 지도 중요한 거 아닙니까?"

 

블루이

"모든 나라는 처참하게 멸망했죠."

 

"오늘 가야 엄청 까였습니다!"

 

(하하하)

 

이때 들어오는 자기자랑 하나. 

 

테디

"그런데 유일하게 멸망에 대해서 안 까인 나라가 발해입니다."

 

(하하하)

 

"솔직히 그건…"

 

블루이 

"어쨌든 망했잖아요."

 

테디 

"자연재해잖아요."

 

(하하하)

"백두산 폭발…ㅋㅋㅋ"

 

블루이

"모든 나라의 멸망은 어차피 안 좋은 멸망 아닐까요? 멸망하는 모습을 짚을 필요는 있는데…"

 

제이크

"모든 국가의 마지막 시기는 좀 그렇지만 그 과정을 들여다볼 필요는 있죠."

 

 

batch_IMG_E1023.jpg

 

 

'왜 고구려는 삼국통일을 하지 않았나?'

 

역사에 가정이란 없지만, 어떤 이들은 우리 역사를 공부하면서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다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역사에서 다른 나라보다 영토도 넓고, 강성했던 나라니까요. 

 

테디

"색다른 질문인데요. 고구려가 삼국 중에 가장 강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삼국통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게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지금보다 더 큰 영토를 가졌을 테고 나라가 더 부강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설이 있습니다."

 

크롱

"일단 고구려는 중국대륙 쪽으로 영토를 확장하려는 의욕과 계획이 있었고요.

통일을 했다고 해도 나중에 나당연합군이 쳤을 테니까, 망했을 수도 있죠."

 

테디

망하더라도 고려의 영토가 그대로 조선이 된 것처럼,

고구려의 영토가 계승될 수 있잖아요. 물론 발해로 계승했지만.

 

블루이

"아니죠. 그건 경우에 따라서 아예 다 중국으로 넘어갔을 수도 있죠."

 

테디

"어쨌든 일단 신라가 삼국통일을 함으로서 얻은 영토가 원산에서 대동강까지잖아요. 지금 북한의 절반 정도.

만약 고구려가 통일했다면 북쪽을 많이 내어주더라도 그것보단 더 되었을 거란 말이죠."

 

그리고 아까 남쪽은 그냥 공격을 안 했다고 하셨는데, 장수왕 때 남진 정책을 썼어요.

수도를 평양으로 옮겼죠.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것이 남쪽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함이거든요."

 

크롱

"제 지식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테디

"그렇다면 고구려가 잘 못 한 것입니까?"

 

크롱

"아닙니다. 고구려는 잘못이 없습니다!"

 

 

'고구려의 혼인풍습'

 

이번엔 고구려의 혼인풍습입니다. 

 

루시

"고구려 혼인 풍습에는 '형사취수제'라고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한다는 풍습인데요.

그렇다면 고구려는 남편을 잃은 과부를 재산의 일부로 인식한 것입니까?"

 

 

batch_IMG_1005.jpg

 

 

크롱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조선 전에는 여성들의 인권이 조선보다 훨씬 자유로웠거든요.

그래서 여성들이 조금 더 자유를 누리고, 미망인들이 다시 결혼을 해도 욕을 먹지 않던 사회였고, 재산으로 보기에는…

 

블루이

"만약 동생이 결혼을 한 상태였으면 어떻게 됐습니까?"

 

루시

"그건 조사하지 못했습니다."

 

크롱

"일단 그것은 재산의 일부라고 인식하기보단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 당시의 여성 인권은 조선보다 훨씬 나았다고 제가 봤습니다."

 

마리모

"조선 이야기가 나오는 데 좋은 이야기가 없네.ㅠㅠ"

 

*형사취수제 : 형사취수(兄死娶嫂, 영어: levirate marriage) 또는 취수혼(娶嫂婚)은 형이 죽은 뒤에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함께 사는 혼인 제도이다.

형사취수는 유목 민족에게서 자주 나타났으며, 일례로 흉노와 고구려에서 나타났다. 이 제도는 형이 죽으면 재산을 형수가 물려받게 되고, 형수가 혈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혼인하게 되면 원래 혈족의 것이었던 재산이 혈족의 바깥으로 유출하게 됨을 염려하여 나타난 제도이다. 또한 형수에게 상속권이 없을 경우에는 형수에게 생활능력이 없게 되므로 그 형수를 혈족이 부양해 준다는 의미도 있게 된다. (출처:위키백과)

 

 

'고구려의 의술'

 

레몬

"의술이 발달되었다고 하는데, 또 다른 것은 없는지요?"

 

블루이

"다른 잘난 것은 없는지 레몬이 기회를 준 거예요."

 

크롱

"일단 웬만한 것은 기조발언 때 이야기했고요. 전쟁이 많아서 외과술도 뛰어났을 것이라는 추측은 있는데 아직 증명할만한 증거는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민족은 백의 민족이 아니다?'

 

테디 

우리 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 부르잖아요. 아주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거기에 오점을 남기는 사람이 광개토대왕이거든요. 우리가 백의민족이라고 불리는 것이 맞을까요?

 

크롱

"고구려 지역의 특성상 농사짓기가 힘든 나라였어요. 기온도 낮은 편이고 산 지역도 많아서 농사짓기가 힘들어서 아까 말했듯 휴경을 2-3년 동안 했는데요.

휴경 사이에 전쟁이나 약탈을 하지 않으면 그 나라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일단 전쟁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블루이 

"전두환 전 대통령도 백의민족에 오점을 남겼죠. 우리 역사에 그런 사람은 많이 있어요. 한승민은 백의민족입니까?"

 

테디

"제 옷이 흰옷이 많기는 한데…"

 

(하하하)

 

블루이

크롱이 마무리 발언해주십시오.

 

크롱

아무튼 고구려는 인식도 좋고, 나라도 좋고, 살기도 좋고, 역사적인 문화도 많이 남겼습니다.

그리고 고구려의 정신을 계승하는 나라도 두 국가나 있습니다. 이는 고구려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파이어!

 

(짝짝짝)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어서 루시의 백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볼까요?

 

 


 

 

백제  / 루시

 

백제를 맡은 루시의 기조연설입니다. 한 번 들어볼까요?

 

batch_IMG_1046.jpg

 

 

찬란한 문화를 가졌던 나라, 백제!

 

 마한의 54개 연맹체 중 하나로 시작해 마한 전체를 통일한 백제는, 문화예술이 찬란했던 국가였습니다. 특히 불교 미술이 대단했는데요, 이는 일본 나라현 법륭사에 있는 백제 관음상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2.1m 높이의 이 녹나무 조각상은 옷자락과 옷 주름의 율동적인 움직임이 부드럽게 표현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백제는 석재 문화가 발달해 목탑이 석탑으로 변형되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기도 합니다. 무왕 때 세워진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목조건물을 석재로 구현한 것으로, 현재 한국에 남아있는 석탑 중 가장 오래된 석탑인 동시에 조사결과 원형이 30m에 이르는 9층 탑으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석탑이라고 합니다. 부여 정림사지 5층 탑은 백제 석탑의 전형으로, 그 양식이 백제 멸망 이후 고려까지도 계승되며 한국 석탑의 시조가 됩니다.

 

 

batch_IMG_1043.jpg

 

 

 백제는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이를 백제화 시키고 다시 일본과 다른 나라에 전파 시키는 등 동아시아가 공유 문화권을 형성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일본보다 문화적으로 앞서있던 백제는 일본에 음악, 회화, 직조술, 염색술, 금속공예, 조선술, 불교 등 일본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침류왕이 초청한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온 후 백제에 불교가 시작됐고, 이후 국내에 불교가 널리 전파되면서 가야에도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위덕왕 때에는 경론 몇 권과 학자들, 승려 집단, 불상 기술자, 기와 기술자, 사찰 목수 등을 일본에 보내 불교를 전파했다고 하는데, 이때부터 일본에 절이 세워지고 불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무왕 때에도 관륵이라는 백제 승려가 일본으로 가 태자에게 불경, 지리, 책력 등을 가르친 기록이 있습니다.

 

 아신왕 때에는 백제의 왕족 궁월군이 120개 분야의 각종 기술자, 보조자와 함께 일본으로 가 각종 기술을 전수하고, 아직기와 왕인도 일본 태자의 스승이 되어 천자문, 논어, 한학, 유교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성왕과 무왕 때에도 백제의 음악가가 건너가 학교를 세워 음악, 무용 등을 가르쳤고, 회화 분야에선 위덕왕의 아들인 아좌태자가 일본의 쇼토쿠 태자를 그렸으며 하성이라는 사람이 산수화를 전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백제는 뛰어난 금속공예술도 가지고 있었는데요. 성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백제금동대향로는 당시 기술을 잘 보여주는 동시에, 불교와 도교가 공존한 장식과 당시 한반도에 없던 원숭이, 코끼리 등이 장식되어있는 것으로 볼 때 백제의 국제교류가 활발했음을 말해줍니다.

 

 

 

(짝짝짝)

 

루시의 기조 발언을 들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백제에 대해서 공격과 질문을 해 볼까요?

 

 

batch_IMG_1040.jpg

 

 

'백제의 선진문화'

 

백제 하면, 문화죠. 먼저 제이크가 문화에 대해서 공격합니다.

 

제이크 

"일본에 선진 문물을 전파했다고 하셨는데, 일본을 키워준 거 아닌가요? 나중에 후환이 될 텐데."

 

루시

"다 같이 커 가는 거죠."

 

(하하하)

 

 

batch_IMG_1051 2.jpg

 

 

제이크

"나중에 일본이 너무 세지지 않았습니까?"

 

루시

"당시에 왜에서 군사력을 지원받는 등 교류가 있었습니다."

 

제이크

"가는 게 아니라 오는 것도 있었다는 말이죠?"

 

블루이

"제가 질문 하겠습니다. 백제는 상대적으로 고구려와 신라에 비해서

우리 삼국시대 역사를 평가하는 그 어떤 기준으로 봐도 가장 취약한 나라라고 보여져요."

 

"동의하십니까?"

 

 

batch_IMG_E1055.jpg

 

 

루시

"군사적인 부분에서 떨어졌단 것은 사실이지만, 선진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왜에 전수시키면서 국제교류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날카로운 질문에 잘 피해가는 듯한데요.

이어서, 루시의 결정적인 대답이 나옵니다.

 

블루이

"백제의 선진문물에 조금 더 구체적인 예가 있을까요?"

 

루시

"신라의 황룡사 9층 목탑도 백제사람이 만들었습니다."

 

(오호~)

그렇습니까?

어떻게 그랬을까?

 

이럴 수가. 신라의 자랑인 황룡사지 9층 목탑이 백제사람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졸지에 신라를 맡은 레몬이 당황합니다.

 

레몬

(그랬나…?)

 

 

batch_IMG_1048.jpg

 

 

블루이

"왜 그랬을까요? 어떻게 백제사람이 만들게 되었을까요? 자세한 이야기거리가 있나요?"

 

루시

"선덕여왕이 만들라고 했는데 신라에 만들 수 있는 장인이 없다고

신하가 백제의 뛰어난 장인을 데리고 와서 완성하라고 해서…"

 

"진짜?"

 

블루이

"백제와 신라는 사이가 좋았나요?"

 

루시

"좋았던 때도 있고, 나빴던 때도 있었어요."

 

 

batch_IMG_E1060.jpg

 

batch_IMG_E1061.jpg

 

 

'의자왕과 삼천궁녀'

 

테디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궁녀가 3000명이라고 합니다. 그 부분을 알고 계셨나요?"

 

루시

"그것은 근거가 없는 사실이라고 어디서 본 것 같은데요."

 

블루이

"3000명이 아니라 300명이라 칩시다. 그럼 그건 괜찮은 것인가요?"

 

루시

"그건 아니지만 의자왕이 후기에 방탕한 생활을 했다는 것을 표현할 때 그렇게 말합니다."

 

블루이

"의자왕이 다른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업적이 있습니까?"

 

루시

"그런 업적은 찾지 못했지만, 초기에는 의지를 가지고 전국을 순회하며 의신을 살폈다고 합니다."

 

블루이 

"여행 다녔구나." (농담)

 

(하하하)

 

 

batch_IMG_E1054.jpg

 

 

방탕하고 무능하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는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의 업적을 보충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테디 

"초기의 의자왕은 매우 호전적인 왕이었다고 합니다. 망해가는 나라 백제를 살리기 위해, 합천의 대야성도 점령할 정도로 초반엔 호전적인 왕이었습니다.

합천 대야성이 의미가 있는 것이 성주가 신라의 실권세력인데 성주를 죽이고 성도 함락한 의미 있는 전투였다고 해요. 의자왕 초기에."

 

블루이

"그것은 긍정적인 평가인가요?"

 

테디

"그렇죠."

 

 

'백제의 굴욕?'

 

그런가 하면, 백제의 굴욕적인 순간을 찌르는 질문도 있습니다.

 

"아신왕이 즉위하자마자 광개토대왕에게 빼앗겼던 영토를 빼앗기 위해 계속해서 고구려에 쳐들어갔다고 해요. 

공격이 계속되자 나중에는 거란하고도 싸우던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분노하여 백제의 수도를 비롯한 다양한 성들을 함락해서 항복선언을 했다고 해요.

 

상황을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광개토대왕 앞에 무릎을 꿇고, 이후로는 영원히 신하가 되겠다고 선언을 했어요.

하지만 그다음에도 계속 고구려를 공격했고 399년 8월, 또다시 고구려를 공격하려합니다.

 

그때는 고구려로 쳐들어갈 병사를 징집하는 공지를 올렸는데

징집대상인 백성들을 그것을 다 피해서 군대를 모으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백성을 너무 괴롭힌 것이 아닌가요? 왕의 욕심이 너무 크지 않았나요?"

 

 

batch_IMG_E1056.jpg

 

 

루시

"사실 전쟁을 하면 가장 큰 피해가 백성에서 돌아가는 만큼 왕이 더 적절한 대응을 했어야 하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빼앗겼던 영토를 되찾으려고 노력했던 만큼, 물론 좀 과했던 건 맞지만…"

 

블루이

"할 말 없으면 쿨하게 인정하세요!"

 

(하하하)

 

루시

"무슨 말 하는지 기억이 안 나요. "

 

 

'백제 왕족의 혈통'

 

테디

"혈통에 관한 질문인데요. 백제를 건국한 온조는 고구려 초대왕인 동명성왕의 아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봐서도 고구려의 동생국가로 항상 있었던 것 아닙니까?"

 

루시

"건국설화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두 번째 설에 따르면 비류와 온조의 어머니인 소서노가 주몽과 결혼할 당시에 29세였다고 합니다. 

당시 고대 사회에서 30살이 가까이 된 성인여성이 미혼일 경우는 없기 때문에, 그 전에 졸본부여 왕족 출신인 우태와 함께 비류와 온조를 낳았다는 설이 있습니다."

 

 

'백제 왕족과 지방세력의 대립'

 

백제는 왕족과 지방세력의 대립이 심했다고 해요. 

친구들의 질문이 이어집니다.

 

크롱

"사료가 부족해서 실상파악은 힘들지만, 왕권과 지방세력의 대립으로 인해 갈등과 불신이 나서,

수도가 함락당하는 위기 속에도 귀족의 지원군이 신라보다 늦었다고 하는데, 이런 갈등이 있는 문제에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batch_IMG_E1073.jpg

 

 

루시

귀족들이 지방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중앙집권이 잘 안 돼서 군사를 모으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신라군보다 늦었던 것 같습니다.

 

크롱

"지방세력은 잘 나갈 때도 왕실의 발목을 잡고 나라가 망할 지경이어도

대립양상이 해소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루시

"백제가 귀족과 중앙집권의 화합이 잘 못 되었던 것 같습니다."

 

"중앙집권화가 된 후에도 군사들이 잘 모이지 않았던 것은

중앙집권화가 되지 않은 가야에 비해서 더 한 것 아닙니까!

 

가야는 그래도 군사들은 모을 수는 있었습니다!"

 

루시 

"으음, 백제는 나라의 일을 조금 더 화합해서 처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솔 

"하지만 군사들의 일은 화합해서 처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batch_IMG_1125.jpg

 

 

루시

"그건 당시 귀족들과 중앙집권화가 화합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

 

"백제를 제대로 까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

 

아직까지는 데미지가 큰 질문이 없는 상황인데요.

이대로 백제는 훌륭한 나라가 되는 걸까요?

 

 

'백제 왕, 두 번이나 처형당하다?'

 

제이크 

"백제가 지방세력과 왕족의 대립과도 연결이 되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대립이 있는 와중에 백제의 왕 두 명이 적에게 처형당하는 일이 있었어요.

 

한 번은 고구려군에게 한번은 신라군에게. 나라의 위상이 떨어지는 것 아닙니까?

왕이 다른 나라 군사들에게 산 채로 잡혀서 처형을 당했다고 하는데."

 

 

batch_IMG_E1062.jpg

 

 

루시

"그것은 왕이 너무 열정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뭐라고요? 열정적이었다고요?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나가서 그런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크롱

"그런데 당나라와 신라가 백제를 칠 때 왕과 태자가 도망을 가서 둘째 아들 태가 왕위에 대신 앉았는데요.

그것도 당나라가 간 뒤에 후환이 두려워서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해서 스스로 자멸했다는데, 이는 열정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batch_IMG_1129.jpg

 

 

'백제는 왜 제일 먼저 패망했는가?'

 

테디

"그 백제의 전성기가 근초고왕 시절인데, 이때는 힘으로 고구려와 신라를 압도하던 시절입니다.

하지만 이후로 백제가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은 이유는 군사적으로 점령한 곳을 영역화하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고구려는 중심이 백두산 근처 지역인데 우리나라 충주에 가면 고구려비가 있어든요.

그게 고구려가 여기까지 내려와서 땅을 점령했다고 표시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왜 백제는 영역화를 하지 않아서 가장 먼저 자멸했습니까?"

 

루시

"그 부분은 잘 몰랐던 부분이지만, 너무 빨리 전성기를 맞이해서 중앙집권화 자체가 방심을 했던 것 같습니다."

 

"백제는 중앙집권화와 지방통치제의 화합이 잘 이루어지진 못했지만,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이를 백제화시키고 이를 다시 다른 나라에 전파시키는 등

동아시아가 전체적으로 공통의 문화관을 형성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batch_IMG_1052.jpg

 

 

짝짝짝!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누구도 효과적인 공격을 못 한 것으로 보아하니

'백제'가 우승 후보로 오른 듯합니다.

 

 


 

 

신라 / 레몬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길었던 나라. 무려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죠.

신라를 맡은 레몬의 기조연설, 들어볼까요?

 

 

batch_IMG_1131.jpg

 

 

"시간은 늦었지만, 착실히 성장한 신라!"

 

신라에 대한 역사세미나를 시작하겠습니다. 삼국시대 중 기원전 57년에 박혁거세가 지금의 영남지방을 중심으로 만든 나라입니다. 신라의 위치는 원래 진한 현재의 경상북도지역의 정치, 문화적 구심점으로서 주민들을 통합하여 동질적인 신라의 문화를 갖게 하였습니다.

 

또 삼국 간의 대결 구도 속에서 외교력과 군사력을 적절히 발휘하여 먼저 가야를 통합하고 확장해 나갔습니다. 삼국간의 대결이 고조되면서 신라는 불교와 화랑도 등을 통해 내부적으로 한층 결속을 다지는 한편 외교에도 힘써서 고구려와 백제와 나아가 수와 당을 오가며 나라의 존속을 위해 필사적으로 외교전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고구려를 복속시키고자 하는 당나라의 욕망과 백제의 위협을 물리치는 신라의 소망이 어우려저 나당연맹이 이루어저서 백제와 고구려를 공격해서 멸망하게 만듭니다. 신라의 왕들 문무왕,신문왕등 통일신라 왕들은 일통삼한 이라는 구호로 내리고 삼주민을 하나로 만드는 일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연맹세력의 족장인 이사금이 지배하려는 단계는 겪었지만 2~3백년 간에 걸친 이런 더딘 역사의 직전의 그 발전의 결과를 착실히 축적하여 마침내 4세기 중반쯤 와서는 새로운 정치 단계가 비약했습니다. 대장군인 마립간이 출현하게 됩니다. 마립간이 자연스럽게 국왕으로 발전하면서 신라의 고대국가로서 성립은 완성되었습니다.

 

이 해(647년)에 선덕여왕은 신라 삼보의 하나인 황룡사 9층 목탑의 건축을 착수했습니다. 황룡사 9층 목탑의 크기는 사방 22.2m, 약 150평의 넓이고 본탑의 높이는 183척, 상륜부가 42척으로 도합 225척 약 80m에 달해 오늘날에 건물로도 20여 층에 달해 어머무시하게 크고 현대건축으로도 만들기 힘든 웅장한 목탑입니다.

 

 

batch_IMG_1138.jpg

 

 

또 신라의 명물, 첨성대!

 

첨성대는 다들 아시다시피 위치는 바로 경주! 선덕여왕의 많은 이야깃거리 중 그녀와 관련된 유물이 한가지인 첨성대는 국보 3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또 선덕여왕 3년(634) 정월에는 연호를 고쳐 인평(仁平)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인 진평왕의 국상 기간이 끝나면서 진평왕 때 쓰이던 연호를 쓰지 않고 새로운 연호를 만든 것입니다. 

 

이해 정월에는 분황사가 낙성되었습니다. 분황사에는 전탑 증 벽돌로 만든 탑 양식을 본떠서 만든 9층 석탑이 있해서 신라가 짱입니다. 그리고 순장의 역사는 고구려, 발해, 가야의 풍습이 있었고, 신라도 풍습이 있었지만 초기에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그리고 바다요 쌓여있고 고구려 등의 나라에 쌓여있어 안정했고 일본과 무역을 활발히 했습니다. 

 

‘삼국사기’ 진흥왕 때 본기 37년의 화랑도 재정비 관련 기사는 군신이 사람을 알아볼 방법이 없어 병으로 여기니 무리를 모이게 하여 함께 놀게 하고, 그의 행하는바 뜻을 본 후에 천거해 쓰고자 하여 화랑은 시작되었습니다. 화랑소의 화랑이란 말은, 꽃 같은 소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신라는 화랑제도로 통해서 인재를 양성하고 삼국통일했습니다. 

 

신라는 기원전 57년~935년 고구려, 백제와 함께 고대 한반도의 삼국시대를 구성하였던 국가로, 세계적으로 오래 존속한 왕조 중 하나로 꼽힙니다.

 

 

batch_IMG_1134.jpg

 

 

레몬의 기조연설이 끝났습니다. 이제 다시 논쟁의 시간입니다.

한번 시작해볼까요?

 

 

'역사의식이 없는 신라?'

 

"신라가 가야를 정복한 뒤, 왜 가야에 대한 역사서를 만들지 않았는지요?

현재 가야가 미궁의 역사로 남게 되었는데, 그것은 신라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

 

레몬

"신라도 미궁의 빠진 가야를 어차피… 신라도 잘못이 있고… 음 잘 모르겠습니다."

 

솔 

"아마 레몬의 말은 왜 가야의 역사서가 없는 게 신라의 탓이냐고 말하고 싶은 것 같은데,

그것에 대한 저의 답변은 신라가 가야를 편입했으니까 가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야의 옛 기록을 직접 적어서 후대에 전해야 하는 책임이 있지 않았을까요?"

 

신라가 가야를 병합했으니, 가야의 역사를 편찬하는 의무도 신라에게 있었다는 솔의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역사의식에 대한 질문은 이어집니다.

 

크롱

"보충하자면, 고구려의 28왕 중 12왕은 묘호와 능호가 같아요.

이는 구삼국사를 편찬한 신라인의 무성의한 편찬작업으로 인해 현재 후손들에게도 동명성왕 같은 이름이 아니라

지역의 이름으로 된 왕의 이름이 앞으로 계속 알려지는 건데 이것도 신라의 책임이 있지 않나요?"

 

레몬

"다른 나라에서 만들었으면 신라가 안 만들어도 됐지 않을까요?"

 

크롱

"신라가 고구려를 통일했잖아요. 삼국통일을 했고요.

구삼국사를 편찬한 것은 신라인인데 무성의하게 이렇게 고구려의 역사를 망치는 데 한몫하지 않았나요?"

 

아, 질문 날카롭습니다.

 

 

batch_IMG_1140.jpg

 

 

'신라의 삼국통일'

 

테디

"왜 삼국 통일을 하셨습니까?"

 

레몬

"삼국통일로 인해 중국 등 다른 나라와 약간의 교류도 할 수 있으니까요."

 

테디

"예전에 고구려가 신라를 도와줬잖아요. 그런데 왜 신라가 고구려를 멸망시켰나요? 그것은 도의에 어긋나는 일 아닙니까?

신라가 가야에 의해서 궤멸적인 상황을 맞았을 때 고구려가 도와줘서, 가야를 통합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누구나 땅을 넓히고, 통일로 다른 나라를 얻는 상황에서는

딱히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라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닌가요?"

 

테디

"그것을 위해선 우호국도 공격해도 좋다는 겁니까?

예전에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나라인데. 수도까지 함락된 상태였는데요."

 

"우호적이었지만 그만큼 위협이 되는 상대였기 때문에 사전에 차단한 게 아닌가요."

 

크롱

"너무한 거 아닙니까?ㅠㅠ"

 

"만약 신라가 고구려를 정복하지 않았다고 해도 고구려가 신라를 계속 내버려 둘 근거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고구려도 당연히 신라를 정복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테디

"하지만 고구려는 안 했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모르는 거죠. 지금도 단정하고 있는 것인데요. 

통일을 한다는 것이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우호국이든 아니든 통일을 한 것에 큰 의미가 있지 않은가."

 

테디 

"아니면 통일을 하더라도 독자적인 힘으로 통일하고,

고구려의 지배층을 신라의 지배층으로 인정해주는 시스템이었다면 신라의 영토가 훨씬 넓어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당나라와 신라의 연합에 대해서 불만이 있으신 것 같은데…"

 

테디

"있죠. 그래서 유민이 되었잖아요."

 

(하하하)

 

"우선 신라가 통일을 위해서라면 나중에 당나라의 간섭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의 결과를 처음에 생각하진 않을 것 같아요."

 

 

batch_IMG_1049.jpg

 

 

테디

"그렇게 볼 수 없습니다. 나당연합군은 삼국통일 시, 평양에서 원산까지 선 그어서 그 위는 다 당나라 주기로 했어요.

그래서 고구려가 다 당나라 땅이 된 것 아닙니까? 그래서 당나라가 신라를 도와줬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라? 독자적인 힘으로 통일하지 않고, 외세의 힘을 빌어서 결국."

 

크롱

"땅도 뺏기고. 고구려가 열심히 분투하는데!"

 

레몬

"하다 보면 그렇게 될 수도 있죠."

 

테디

"그렇다면 제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저를 예전에 도와줬던 제이크를 때리고 돈을 뺏아도 된다는 것입니까?

그게 도덕적으로 맞습니까?"

 

"도덕적으로 맞진 않지만 정말로 돈을 벌기 위함이라면 그럴 수도 있는 거죠. 잠깐. 생각해봐요. 돈을 버는 게 목적이잖아요.

그게 도덕적이진 않지만 그걸 생각하지 않고 돈을 버는 목표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도덕적인 문제에서 봤을 때는 옳지 않은 것이죠."

 

테디

"그럼 도덕적으로 잘 못 한 것이네요? 큰 잘 못한 거죠!"

 

크롱

"5만! 5만!" (광개토대왕의 신라지원병수)

 

"아아!! 원래 인간은 모순적입니다."

 

(하하하)

 

역사에서 '명분'과 '결과'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이어집니다.

이것은 역사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관점에 관한 논쟁입니다.

 

신라의 역사의식에 대한 비판과 설명이 이어집니다.

 

테디 

 "그래요. 까먹으면 모순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신라가 그만큼 역사의식이 없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실 다른 나라는 역사의식이 없던 곳이 없습니다. 발해도 그렇고요. 고려라는 이름도 고구려를 계승했고, 그 덕분에 고구려가 우리의 역사라는 결정적인 증거를 남긴 것 아닙니까. 조선 역시 마찬가지고요. 무력이나 문화도 중요하지만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것이 모두 다른 나라의 것이 될 수 있거든요. 이민족의 역사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신라는 역사의식이 없었어요. 도대체 어쩌자고 세계 최강국인 당나라를 이 반도에 끌어들인단 말입니까. 더 무서운 건 당나라가 신라까지 먹으려고 했어요! 그렇게 되면 지금 우리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 중국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만큼 역사의식이 없다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

 

레몬

"역사의식이 없었다는 것은 문제지만 발해도 역사의식이 없지 않았을까요? 단 1%라도?"

 

테디

1%라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100%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었고요. 스스로 고려국왕이라고 칭했습니다.

신라는 그 정도의 역사의식도 없으면서 삼국통일을 지향한 것은 역사의식이 없는 자가 힘을 쓰면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그쪽으로 몰아가는 것 아닙니까? 원점으로 돌아가서 신라가 고구려를 친 게 문제가 되면서 이 토론이 커진 것 같은데요. 만약에 신라가 정말 고구려를 안 쳤다면 고구려가 신라를 안 쳤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솔직히 고구려는 처음에는 북진정책을 지향해왔지만, 조금씩 남진 정책을 하면서 욕심을 냈습니다."

 

테디

"나라의 영토를 넓히고 힘을 부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사의식의 부재를 말하는 겁니다.

우리가 역사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도 이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되려 그 힘에 휘둘려서 자기 자신을 찌르는 결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겁니다.

신라가 운이 좋아서 당나라에게 안 먹혔죠. 잘 못하면 당나라가 신라까지 먹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방면에서 오히려 당나라에게 협력한 게 좀 더 현명한 방법이 아니었습니까?

세계 최강국이었으니까 잡아먹혀서 멸망시킬 수도 있는 상황인데, 차라리 도박을 해서 이렇게라도 살아남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테디

"그렇다면 역사의식의 부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애초부터 고구려가 도와주지 말았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고구려의 선택이었습니다. 고구려가 도와준 것 아닙니까."

 

테디

"그렇다면 치사하게 해도 상관없다? 그런 말씀이십니까? 나만 좋으면 치사하게 해도 상관없다? 외교가 그렇게 하는 겁니까? 신의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죠.

우정도 모르고, 신의도 모르는 나라. 고구려가 왜 신라를 도와줬습니까. 동맹국이었지 않습니까. 이웃국으로서 큰 도움을 준 것 아닙니까."

 

"아 오케이. 그것은 신라가 잘 못 한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까 과거 가야와 신라가 결혼동맹을 맺었는데 그것도 신라가 먼저 깼습니다."

 

(아아~)

치사한 거 아닙니까?

 

레몬

"동맹국가라고 해도 안 도와줄 수도 있는 거 아닐까요?"

 

테디

 "더 큰 문제는 신라의 후손들마저 역사의식이 없었다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경주 김씨 김부식이라는 사람이 고려 시대에 삼국사기를 편찬했는데요.

발해를 그대로 다 빼고 신라 위주의 역사를 편찬했어요. 그 덕분에 발해가 우리 역사에서 지워질 뻔했죠.

역사의식의 부재가 후대까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제이크

제가 한마디만 할게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도 고구려와 백제 유민을 잘 통합해야 하는데 통합도 잘 못 했어요.

예를 들어 고려는 새로 통일한 뒤 시조를 동명성왕이나 단군까지 끌어올리면서 모든 유민이 의식적 통합을 이뤘거든요.

반면 신라는 통일 후에도 시조가 박혁거세와 김알지였어요. 새로 들어온 고구려와 백제 유민은 어땠겠어요?"

 

"그리고 유민들에게 나름 챙겨준다고 높은 6두품을 주는 등 잘 대우했다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중앙정계에 오르거나 정책 결정하는 기회가 아예 없었어요.

왕이 될 수 없었죠. 신라가 1000년 동안 이어지면서 그 수많은 왕들의 성씨가 모두 박, 석, 김인 게 말이 됩니까?

1000년 왕조의 성씨가 세 개 밖에 안 된다는 게? 너무 자기밖에 모르는 나라라고 생각되네요."

 

 

레몬

 

(하하하)

 

 

'신라 왕족 박, 석, 김'

 

블루이

"선덕여왕은 선 씨입니까? "

 

레몬

"이름은 따로 있지 않았을까요?"

 

테디

"반론. 지금 왕의 성씨가 너무 적었다고 하는데, 저는 왕의 성씨가 너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왕의 성씨가 세 개나 됩니까? 콩가루라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중앙집권화가 제대로 못 되었기 때문에 지방의 호족들을 왕으로 인정하면서부터 성씨가 세 개가 되었는데요.

백제의 부여 씨, 고구려의 고 씨, 발해의 대 씨, 고려의 왕 씨, 조선의 이 씨가 있었잖아요. 신라만 세 개예요.

이것은 신라가 대표적인 콩가루 나라였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레몬

"이 씨로만 뽑히는 나라가 지배자는 자기도 왕을 하고 싶어 하면 분쟁이 있지 않을까요?"

 

테디

"그렇죠. 이게 바로 지방호족들의 생각인데요. 중앙집권화는 왕에게 힘이 몰리는 거잖아요.

왕이 힘이 약했기 때문에 다른 성 씨에게 왕위를 내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요즘 민주주의 사회는 그렇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조선까진 중앙집권 국가였습니다. 왕이 그만큼 힘이 셌던 것이죠.

그리고 왕에게 힘이 몰릴수록 나라가 부강해졌어요. 신라가 그만큼 발전하지 못한 나라라는 거죠."

 

레몬

"신라는 삼국통일을 했잖아요"

 

테디

"외세의 힘을 빌리지 않았나요?"

 

레몬

"그것도 자기만의 힘이 아닐까요?"

 

테디

"그럼 이렇게 물어볼게요. 지금 우리나라 남북한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어요.

미국과 함께 북한을 공격해서 북한 땅의 절반을 미국에게 내어준다면, 그런 통일 하겠습니까? 미국에게 반을 내어주고 우리가 남은 반을 가지는 통일을 하겠습니까?"

 

레몬

"다는 아니더라도 반에 반에 반은…"

 

(하하하)

 

테디

"결국 신라가 그렇게 한 것 아닙니까. 말씀해보시죠. 잘못하셨죠?"

 

레몬

"아니오."

 

블루이

"방어찬스를 쓰겠습니다. 미국과 동맹을 맺지 않고 핵미사일을 맞아서 궤멸하겠습니까?"

 

테디

"저는 동맹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 방어적인 전략에서 동맹을 맺는 것이죠.

핵을 맞지 않겠다는 전략. 그런데 이것은 공격전략이잖아요."

 

블루이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란 말이 있죠. 아까 고구려에서 신라를 공격했을 것이다 혹은 안 했을 것이다라는 가정은 우리에게 무의미하긴 하죠.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다고 하니까. 아무도 모르는 일이예요. 하지만 익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고구려의 호전적인 성향과 여러 정황을 봤을 때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지 않았다면, 고구려는 언젠가는 신라를 치지 않았을까하고 짐작이 가능하죠. 신라는 방어적 전략의 의미에서 애초부터 고구려와 동맹을 맺었을 수도 있고, 나중에는 당나라와 동맹을 맺고. 시각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하지만 이것을 마냥 비판만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싶어요. 신라가 잘못한 것은 잘못 한 건데, 지금 우리가 신라와 당나라와 연합해서 고구려를 치지않았다면 고구려의 당시 영토가 지금 우리 영토가 되지 않았을까, 신라가 잘못한 것이다고 공격할 수 없지 않을까요?""

 

 

매섭게 공격을 하다가 그제서야 본심을 말하는 테디.

 

 

테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고구려, 백제, 신라가 다 우리 역사라고 생각하기에

세 나라의 통일을 고구려가 했다면 우리 영토가 더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데요.

 

사실 그것은 현대에 들어선 가정일뿐이고요. 당시에 세 나라가 서로를 동일민족으로 인식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잖아요?

신라가 당이랑 손잡든 고구려와 손잡든 그것은 신라의 선택의 문제인데요."

 

 

하지만 공격은 계속되고...

 

 

테디

"그런데 역사성으로 봤을 때, 결과에 의거한 예상이긴 하지만,

당나라보다는 고구려와 백제가 서로 말도 통하고 동질성이 있다는 것은 신라가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을 봤을 때 당나라와 손잡아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큰 선택이 아니었나 싶어요.

역사로 봤을 때. 역사의식의 부재가 역사적으로 큰 손실을 낼 수 있는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그때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다는 명제를 다시 한번 상기시킵니다.

 

 

블루이

"조금 더 논의를 좁혀서, 그런 가정을 하기 시작하면, 고구려의 선의 없는 호전성이 당나라의 심기를 굉장히 불편하게 해서

결국 고구려가 통일을 했을 때는 당나라가 그것을 가만두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죠.

 

그러면 우리는 다 중국사람이겠죠? 신라가 적절한 선에서 잘 차단해줬을 수도 있는 거예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그런 가정은 조금 지양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신라가 국가적으로 역사의식이 부재한 나라였다,

왕을 포함한 관료들이 역사의식이 부재했다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것 같네요."

 

레몬

"신라는 문화재가 많고, 삼국통일을 한 나라입니다. 화랑도 있습니다."

 

 


 

 

조선 / 마리모

 

이어서, 마지막 나라 조선입니다.

마리모 발제자님, 발표해주세요!

 

 

batch_IMG_1069.jpg

 

 

 이성계는 1356년 쌍성총관부 수복 전쟁을 시작으로 1388년 위화도 회군에 이르기까지 30여 년을 전쟁터에서 살다시피 했지만,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조선을 개국한 사람들은 한마디로 고려조정의 주변 세력들이었습니다. 역성혁명론을 개국이념으로 앞세운 이들은 이성계, 정도전, 무학대사 세 사람으로 압축할 수 있는데, 이는 고려의 멸망과정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조선의 개국은 역성혁명론의 결정체였으며, 이러한 논리를 고려왕조에 대입한 사람이 바로 정도전이었습니다. 통치자가 민심을 잃었을 때 물리력으로 왕조를 교체할 수 있다는 맹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정도전은 이미 국운이 기울어가던 고려왕조를 폐하고 성리학 사상을 통치이념으로 한 새로운 왕조를 꿈꾸었습니다. 

 

 세종 시대에는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도 혁명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천문학에서부터 농학, 인쇄술, 화기제작, 의학, 아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과학적인 변혁이 시도됬습니다. 이 중에서 특히 천문학 분야의 발전은 가히 과학혁명으로 불릴만합니다. 천문학을 주관하던 곳은 서운관이었습니다. 서운관에서는 조선 초에 이미 천문을 관측하기 위해 두 곳의 간이대가 있었습니다. 조선 역대 왕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재위를 했던 왕은 숙종으로 46년간 재위했고, 재위 기간이 가장 짧았던 왕은 예종과 인종으로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재위했답니다. 

 

 

batch_IMG_1142.jpg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은 세종이 남긴 가장 위대하고 빛나는 업적입니다. 그는 중국과 우리나라 말이 서로 다름으로 인해 백성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 중국글자인 한자를 대신하여 백성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우리 문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집현전을 통해 길러낸 신숙주, 박팽년, 최항, 이개 등 젊은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1443년 훈민정음을 만들고 1446년 세상에 널리 알렸습니다. 

 

 조선은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건국한 나라로 1392년부터 1910년까지 한반도를 통치했습니다. 1392년 즉위한 태조 이성계에서 1910년 마지막 인금인 순종에 이르기까지 27명의 왕이 승계하면서 518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세종대왕 시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는 수압을 조절하는 3단의 수위조절용 항아리를 낮과 밤을 번갈아 이용하는 두 개의 물받이 통, 그리고 종과 북, 징 같은 자동시보장치를 갖춘 물시계로서 당시 동아시아에서는 진일보한 것이었습니다. 

 

 조선에 호랑이가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정말로 맞는지 안 맞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모 교수의 추정에 따르면 조선 시대에 표범과 호랑이의 개체 수를 합치면, 대략 4000~6000마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성계 장군의 불패 신화?'

 

제이크

"이성계 장군이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원나라와 30년을 대치하는 상황에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게 가능한가요? 이게 사실인가요?"

 

마리모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으나 왕조실록 역사책에는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제이크

"기록에도 이성계가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고 나오는데,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고려에서 조선으로 세상이 바뀌는 와중에

고려 서기관들이 신흥세력 이성계의 눈치를 보느라 그렇게 기록을 했다는 말도 있어서 이야기를 꺼내봤습니다."

 

 

batch_IMG_1062.jpg

 

 

테디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잖아요? 최영 장군과 우왕이 이성계 장군에게 북쪽을 공격하라고 해서

군대를 끌고 갔다가 압록강의 위화도에서 군대를 그대로 끌고 돌아오는 건데요. 중국을 너무 무서워하는 것 아닙니까?

 

이성계가 건국을 한 이래로 조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519년 동안 중국을 두려워하며 사대하며 제후국으로써 지내게 됩니다.

그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까?"

 

마리모

"인정합니다."

 

(하하하)

 

"그러나 조선이 싸우고 싶지 않아서, 평화적으로 하기 위해서도 그랬을 수 있지 않을까요."

 

테디

"그럼 잘 한 것 아닙니까? 안 싸운 건 잘한 거잖아요."

 

 

'한글과 세종대왕'

 

블루이

"제가 질문하겠습니다. 조선이 다양한 이유에서 훌륭한 나라인데, 마리모 발제자께서 생각하시기에 조선이 훌륭한 이유 딱 한 가지만 말해주세요."

 

마리모

"조선은 우리나라만의 특별하고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서 훌륭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세종대왕이 만들었고요."

 

 

batch_IMG_1067.jpg

 

 

블루이

"한글을 만든 것이 세종대왕인가요?"

 

마리모

"세종대왕이랑 누가 같이 만들었다고… "

 

블루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했나요?

누구라도 알고 계십니까? 한글은 어떤 기관에서 만들었습니까? "

 

레몬

경…

 

블루이

"경주? 경기도? 뭐라고 그랬어요?"

 

(하하하)

 

레몬

"경회루!"

 

 

batch_IMG_1070.jpg

 

 

블루이

"땡!"

 

마리모

"집현전!"

 

테디

"한글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요. 제 의견과 별개로 그냥 하는 질문입니다.

저의 진지한 주장이라고 생각하진 마시고요. 저는 한글 창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마리모

"왜 그렇죠?"

 

테디

"마리모가 책을 읽을 때마다 저에게 한자가 들어가는 단어를 저에게 물어봐요.

만약에 우리나라가 한자를 계속 썼더라면 마리모가 저에게 번번이 물어보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예 책을 못 읽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

 

세대가 넘어 갈수록 한자를 모르는 현상을 비판하는 의견을 개진하는 테디.

쉬운 설명을 위해 현실의 예를 들어봅니다.

 

테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한자 교육이 이뤄지면서 마리모가 저에게 책을 물어보는 일은 없었을 테고요.

요즘 중국이 다시 대세로 떠올랐습니다. 중국어 열풍이 불고 있는데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어를 배울 때 가장 어려운 게 한자입니다.

 

우리나라가 지금도 한자를 썼더라면 중국어를 배우는 데도, 유용했을 거고요. 크롱이 일본어 배울 때도 가장 어려운게 한자잖아요.

그런 문제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예전엔 그런 문제가 없고요.

저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것이 국민들이 오히려 한자를 모르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리모

"한자는 배우고 싶으면 배울 수 있잖아요."

 

테디

"그런데 마리모는 왜 안 배웠습니까? 그래서 마리모가 저에게 번번히 물어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세종대왕이 잘 못 했다고 생각합니다."

 

마리모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 우리나라만의 문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블루이

"어떤 점에서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마리모

"중국을 따라하는 게 아니라 다른 나라에 글자가 다 따로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만의 문자가 있는 게…"

 

블루이

그것이 어떤 점에서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마리모

 

블루이

 "깊게 생각해볼 문제죠. 실제로 논란이 있는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기는 한데, 필리핀이나 여러 나라에서 고유의 문자가 없는 나라들도 있고, 고유의 문자와 언어가 있건 없건, 없는 게 더 낫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말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중국어나 영어를 쓰겠죠? 그러면 지금 여러분들은 중국어나 영어를 능숙하게 한다는 이야기죠? 공짜로? 실제로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깊게 생각해볼 주제입니다."

 

 

'조선의 과학과 장영실'

 

레몬

"세종 때 과학 분야가 높았다고 하는데, 천문학이나 농학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천문학이 자격루 말고 다른 기구 같은 것은 있습니까?"

 

 

batch_IMG_E1071.jpg

 

 

마리모

"조선에서 만든 다른 물건은 해시계, 아까 전에 말한 함선에 다는 포도 조선이 만들었고요."

 

레몬

"측우기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마리모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블루이

"레몬, 누가 만들었습니까?"

 

레몬

"장...장영…장영실인가…"

 

블루이

"아~ 이름이 다섯 글자입니다. 장.영.실.인.가."

 

(아하~ 하하하)

 

마리모

"장영실이 혼자 만든 것은 아닙니다."

 

블루이

"장영실인가가 만들었겠죠. 혼자 만든 것은 아니겠죠. 한글도 세종대왕이 만든게 아닐 수 있죠.

세종대왕은 만들라고 지시를 했죠. 네, 장영실입니다. 조선 최고의 과학자는 누구입니까?"

 

마리모

"장영…"

 

블루이

이제는 ‘장.영’ 입니까?

 

(하하하)

 

마리모

"장영실로 알고 있습니다."

 

블루이

"그렇겠죠. 또 다른 질문 있습니까?"

 

 

'조선 건국과 개성 왕씨의 수난'

 

크롱의 날카로운 질문으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드러납니다.

 

크롱

 "조선 태조 당시에 왕 씨를 말살하기 위해 의도적이고 계획적으로 자행했다는데요. 

고려 왕 씨를 없애기로 결심하고 왕 씨 일족을 섬에 살게 해준다면서 모아서 배에 태워서 수장시키고요.

그리고 조선 왕실이 학살할 때, 고려 왕실과 촌수가 너무 멀어서 성만 왕 씨였던 사람들까지 수많은 개성 왕씨가 사라졌습니다.

 

때문에 고려 시대 제1성이던 왕씨가 그때는 83위에 랭크될 정도로 엄청난 수가 죽었는데,

왕 씨를 위험분자로 인식해서 이렇게나 많이 쓸데없이 죽여야 하는 이유가 있었나요?"

 

마리모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잘못 했습니다."

 

 

batch_IMG_E1065.jpg

 

 

'조선의 여성과 유교 문화'

 

"조선은 유교 문화를 바탕으로 건국되었는데요.

그 유교 문화 때문에 여성들이 차별을 받았는데, 그 사실을 아시는지…"

 

마리모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랬습니다. 유교적 가부장제는 여성을 기본적으로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사유재산으로 인식했고요.

그 인식이 지금까지 전해져서… 사유재산은 조금 과장된 말인 것 같아서 다시 수정하겠습니다."

 

(하하하) 뭐야!! 

 

"여기에 적은 것과 다르게 이야기해서요. 남성에게 일방적으로 종속되는 존재다라고 주장하고 거기에 맞는 여성의 역할을 제작해

사회적 분위기를 여성에게 주입시켰고 그 생각들이 지금까지 전해져와서 현재 여성의 문제가 심각한 건 아닌지?

 

만약 조선이 가장 최근의 나라가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여성의 사회적인 신분이 나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batch_IMG_1054.jpg

 

 


 

 

마무리

 

그렇게 고려, 발해,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 조선을 지나 열심히 공부하고 토론한 한국사 세미나가 모두 끝났습니다.

다 함께 한 자리에 모여서 세미나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batch_IMG_E1075.jpg

 

블루이

우리가 역사세미나를 한 목적이 뭘까요?

 

역사에 관심을 가지 위해서?

 

마리모

역사에 대해서 서로 배우는 거죠. 

 

'Know-how와 Know-where 그리고 적절한 질문 던지기'

 

블루이

 다 맞는 말이죠. 단순하게 역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것도 중요한데, 그것은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아요. 특히 시대가 갈수록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요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힘을 예전에는 노하우(Know-how)라고 불렀죠. 노하우가 지식의 힘이었어요. 그런데 시대가 가면서 노하우가 노웨어(Know-where)라고 하죠. 지식은 머릿속에 집어 넣는 게 한계가 있어요. 우리가 머리가 다들 그렇게 좋지 않잖아요?^^(농담) 하지만 구글신은 다 알고 있죠? 그래서 무엇을 알고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는 게 더 중요한 시대가 됐어요. 조선의 왕이 몇 명이나 있는지,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했는지 등등을 어차피 다 알 수 없어요. 옛날에는 그게 힘이었죠. 지금도 그게 힘인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특히 학교 교육에서 그러죠. 그런데 우리는 학교를 나왔잖아요. 그게 힘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이 바깥세상에는 더더욱이 그래요. 그걸 알 필요가 없어요. 그러면 역사 세미나를 왜 할까요? ‘관심을 가지기 위해서’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어요. 

 

 더 중요한 게 뭐냐면요. 적절한 질문을 하는 거예요. 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게 큰 힘이 되는 시대가 왔어요. 여러 가지 질문이 나올 수 있어요. ‘조선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는 훌륭한 질문은 아니죠. 조선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으면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보면 나오거든요. 책을 찾아봐도 나오죠. 반면, 세미나에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질문거리와 생각거리들이 나왔어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그 시대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지금 우리가 그 시절의 여성들의 삶을 생각했을 때, 조선은 정말 여성들이 힘들게 살아왔구나, 반면 그 이전 시대는 오히려 조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갔구나하는 생각거리를 가질 수 있게 된 거예요. 몇 가지 또 재미난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중앙집권’이 뭐예요? 또는 왕권이라고 봐도 돼요. 그게 뭘까요, 마리모?

 

 

batch_IMG_E1076.jpg

 

 

마리모

어디서 주워들은 것 같은데, 뜻을 모르겠어요.

 

블루이

레몬, 왕권이 뭘까요?

 

레몬

왕의 힘?

 

블루이

그렇죠! 왕의 힘입니다. 왕의 권력. 역시, 레몬! 중앙집권은 권력이 중앙에 집중되어있다는 말이죠. 중앙집권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습니다. 중앙집권이 되어있으니까 우리가 영토를 확장해서 국가가 발전하지 않았느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 2017년의 시각에서 봤을 때는 그것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데,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 예를 들면 순장 등 이야기가 다 나오죠. 중앙집권은 필연적으로 독재로 연결이 되죠. 조금 과하게 얘기해서 중앙집권이 독재죠. 그것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 이게 사실 정말 중요한 생각 거리예요.

 

 조금 더 가까운 역사를 봤을 때 박정희 대통령을 평가하는 다양한 시각이 있어요.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자였다고 해요.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에요. 물론 독재자라는 단어가 조금 평가가 들어간 단어이긴 하지만 사실이죠. 반면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고, 새마을 운동을 하는 업적이 있다고도 말하죠. 그런데 그 업적은 독재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그렇다면 독재는 좋은 것인가? 그렇게 질문 거리가 나올 수 있는 거예요. 저는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이 훌륭했다거나 또는 그래서 훌륭하지 않았다는 가치 판단을 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미나에 나왔던 모든 왕들이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마리모 세계관이란 말을 알아요?

 

마리모 

세계에 있는 관. 죽어서 묻히는…

 

블루이

그렇다면 역사관이라는 말을 아나요?

 

마리모

역사관… 박물관…

 

 

batch_IMG_E1104.jpg

 

 

'나만의 관점 가지기'

 

블루이 

여기에서 관은 관점이에요. 세계관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고, 역사관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에요.

쉬운말이죠. 시각 또는 의견이라고 해도 좋아요. 세계관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 관점 또는 의견입니다.

세계관이라는 말은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자주 나오는 말이에요. 사실 철학은 자신의 세계관을 찾아가는 학문이죠.

여기서 말하는 세계는 말 그대로 세계예요. 단순한 ’월드’의 개념을 뛰어넘는 모든 세계. 

 

마리모

우주?

 

블루이

우주를 포함해서 내가 테디를 바라보는 관점일 수도 있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일 수도 있어요. 내가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관점일 수도 있어요.

모든 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세계관입니다. 역사관은 세계관의 일부죠.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에요.

 

그런데 역사관은 역사라는 개념을 바라보는 관점이라기보단 어떠한 역사를 바라보는 나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우리가 이번에 역사세미나를 한 게 그런 거죠. 내가 조선을 바라보는 관점이 생기려면 조선을 알아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공부를 하고서 조선을 바라보는 관점을 가져보자. 그것이 내 평생의 의견이 아닐지라도, 라는 취지였어요.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따른 대답을 하며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가지는 일종의 훈련을 한 거죠.

 

누가 생각하기에도 역사 공부의 목적은 여기에 있습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갖는 것이죠.

얼마 전이 이야기했죠?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내가 그 책의 결론을 알려줄게요. “역사는 미래를 바라보는 거울이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라고 해요. 역사를 공부하면 미래를 알게 된다, 혹은 미래를 잘 설계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단순하게 그때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안다고 해서 미래를 설계할 수는 없어요.

 

그에 따른 자신의 평가와 관점을 가져야 미래를 설계할 수 있어요.

우리가 역사세미나에서 그 기초적인 첫걸음을 우리가 해본 겁니다. 

 

...

 

'내재적 접근법과 보편적 접근법'

 

어려운 이야기 마지막 하나만 더할게요. 역사관에는 내재적 접근법이 있고, 보편적 접근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 때문에 혼란이 있었는데요.

간단히 말하면, 어떠한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을 보편적으로 볼 것이냐 내재적으로 볼 것이냐입니다. 그 기준과 잣대를 어디에 둘 것이냐의 문제예요.

 

'현재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보편적 접근법'

 

조선 시대는 여성 인권이 안 좋았고, 여성들이 힘들었으므로 조선은 안 좋은 나라였다라고 평가할 수 있어요.

또, 요즘도 농담삼아 군대가 제 역할을 못 하면 ‘저놈의 당나라 군대’라고 해요.

 

그 당나라 군대를 신라가 끌어들여서 통일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의 삶은 더 좋고 영토는 더 넓었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면 이게 전형적인 ‘보편적 접근법’이에요.

역사를 현재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거죠. 이게 잘 못 되었다는 게 아닙니다. 그게 보편적인 접근 방법이고요.

 

'당시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보편적 접근법'

 

내재적 접근법은 우리가 그 시절로 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그 당시에는 그랬을 수밖에 없을거야라고 이해하는 관점 인거죠. 

그래, 신라가 그때는 당나라를 끌어들이는 게 당연한 게 아니었을까? 무엇이 옳다 그르다가 아니에요. 

 

순장, 말이 됩니까? 보편적으로 바라보자면 이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순장 같은 악습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잖아요. 또, 고려장도 있었죠. 고려장이 뭡니까?

 

제이크

나이가 든 부모를 산속에 갖다 버리고 오는 제도였죠.

 

블루이

그렇죠 그게 국가적인 제도였죠.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죠. 

그것을 평가하는 기준을 어디에 둬야할까요? 그건 비인간적인 국가였다고 보는 것이 정당할까?

그 때 당시에는 그랬을 수도 있지라고 보는 게 정당할까요?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어떤 쪽이 옳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관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야기는 것이죠.

그것은 현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시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 여성운동 등을 바라보는 관점.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이곳에서도 이슬람 국가를 살아가는 여성은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하죠?

그렇다고 종교와 삶을 비판해야하며 그래서 여성의 인권이 높아지도록 같이 싸워야 한다는 시각이 있을 수 있고,

반면, 그들은 그들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있고, 문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존종해야한다는 시각이 존재할 수 있어요. 

 

무엇이 옳을까요? 나도 몰라요. 누구도 몰라요. 사안에 따라 다를 수도 있죠. 굉장히 어려운 문제예요.

중요한 것은 이런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사안마다 어떤 것이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 게 옳은가를

생각해보는 결과를 한 번 쯤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되는 거예요.

 

그것도 훈련이고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역사세미나는 끝이 없습니다.

 

마리모 

집에 갈 때 까지요?

 

블루이

아니오. 평생 하는 거죠.^^ 어쨌든 다음 역사세미나를 이어서 진행할 겁니다. 

 

 

 


 

 

결과발표

 

그렇게 '내 나라가 최고야' 한국사 세미나를 끝낸 뒤,

각자가 생각하는 최고의 나라를 뽑아볼까요?

 

번외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참가자도 투표로 뽑아봅시다!

 

종이를 하나씩 받아서...

 

"다겸이도 주세요!"

 

 

batch_IMG_1098.jpg

 

 

batch_IMG_1086.jpg

 

 

어떤 나라를 할까? 누구를 할까?

 

 

batch_IMG_1088.jpg

 

 

다들 준비 됐나요?

 

 

batch_IMG_1090.jpg

 

 

루시는 사람 이름 적는 칸에 '장영실'이라고 적었네요.^^

 

"그게 아니라, 우리 중에 한 명을 뽑는거야!"

 

모두에게 폭소를...

 

 

batch_IMG_1095.jpg

 

 

이름을 적은 종이를 접어서...

 

 

batch_IMG_1097.jpg

 

 

함께 최고의 나라를 뽑아볼까요?

 

투표 결과 발표!

 

 

batch_IMG_1092.jpg

 

 

긴장되는 순간,

 

 

batch_IMG_1100.jpg

 

 

두구두구두구두구!

 

 

batch_IMG_1107.jpg

 

 

백제 한 표!

발해!

 

또 백제!

백제!

 

예상과 달리 의외로 백제와 발해의 표가 많이 나옵니다.

 

 

batch_IMG_1109.jpg

 

 

그리고 번외로 뽑은, 가장 잘 한 사람은?

 

 

batch_IMG_1112.jpg

 

 

솔 한 표! 솔! 솔! 또 솔!

 

솔이 맡은 가야와 달리 솔의 표가 많이 나오네요!

 

 

batch_IMG_1099.jpg

 

 

그렇게 첫 한국사 세미나가 끝났습니다. 

 

다소 의외의 결과가 나왔네요!

우리가 뽑은 최고의 나라는 발해(4표)와 백제(3표)였습니다.

 

세미나의 1등과 2등은, 솔과 크롱!

그리고 특별상에 백제를 맡은 루시!

 

자기 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나라에도 

질문 준비를 열심히 한 덕인 것 같아요.^^

 

...

 

조선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역사이며,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역사이기 때문에,

조선을 깊이있게 공부하는 것은 다양한 의미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입니다. 

 

또, 500년간 이어져 온 조선은 그 범위가 넓습니다.

사료도 많고, 같은 사건과 인물을 두고서도 다양한 해석이 있는 생생한 역사죠. 

 

그래서 이번에는 조선을 깊이 있게 공부해보려고 합니다.

조선의 27왕 중 하나씩 선정해서 최고의 왕을 두고 토론하는 것인데요.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업적이 있는 성군이거나, 시각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있는 왕을 선정했습니다. 

 

이름하여, 다가오는 세 번째 역사 세미나, '내 왕이 최고야!'입니다.

#태조 #태종 #세종 #성종 #선조 #광해 #정조 #고종

 

...

 

역사는 지금도 계속된다. 

To be continued...

 

피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