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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0 [17’ 제주도 쪽캠] 내 나라가 최고야! <피스캠프 한국사 세미나, 1편>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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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이크입니다.

 

우리가 맡은 나라 중 최고는 과연 어느 나라일까요?

 

..

피스캠프 한국사 세미나, '내 나라가 최고야!'

 

과연 자신의 나라가 최고인지 검증받을

첫 번째 나라를 소개합니다.

 

바로 제이크가 맡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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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나라는 각자의 청문회 전, 스스로를 소개할 시간을 가집니다.

 

본인이 맡은 나라가 훌륭한 이유을 호소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에 다들 신경을 써야 하는 시간입니다.

 

듣는 사람 역시 경청해야 합니다.

언제 반박할 거리가 나올지 모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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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는 한반도를 자력으로 통일한 최초의 나라입니다.

완전한 의식의 통합을 이루지 못했던 예전의 통일과는 달리,

시조를 동명성왕, 더 나아가 단군왕검까지 끌어올려 삼국 유민들의 의식을 통합했습니다.

이때 생긴 역사의식과 단일 공동체 개념은 이후 조선을 거쳐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요.

 

고려는 개방적인 나라였습니다.

국교가 불교이긴 했지만 종교의 자유를 인정했고요.

 

외국인의 출입도 허용하고 대외 무역도 장려했습니다.

서해 벽란도 항을 통해 여러 나라와 무역했어요.

송, 요, 금나라와 일본,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고려에 다녀갔는데,

이때 ‘Korea’라는 이름으로 고려가 저 먼 세계에 알려졌죠.

중원에 있는 나라는 바다뿐 아니라 육지로도 교류했습니다.

 

외교도 잘하는 나라였어요. 막 퍼주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쇄국 정책을 편 것도 아니구요.

시대 상황에 가장 적절한 외교 정책으로 항상 실리를 챙겼습니다.

주변 나라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국제적 균형 감각이 있었다 할 수 있죠.

 

균형을 깨고 침입한 나라에는 어정쩡하게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북쪽에서 거란, 요나라가 세 차례나 고려에 들어왔을 때,

말 잘하는 고려의 외교 스타 서희나 귀주 대첩 강감찬의 활약으로 확실하게 대응했습니다.

미리 전쟁을 예견해 성도 쌓고 군대도 늘려 대비한 덕도 있었죠.

 

덕분에 북쪽 강국들과 함께 힘의 균형을 이루며 ‘동북아 3강’이 됐어요.

필요할 때 송나라, 거란과 교류하고 외교하는 강국이 된 겁니다.

 

그 뒤로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아주 태평성대였어요.

흑수말갈에서도 추장이 손잡자 찾아오고, 지금 우리가 사는 탐라국에서도 곡식을 바쳐 왔지요.

 

고려는 일본에도 ‘황제국’의 예우로 대접받았습니다.

"

 

"...이만하면 흠잡을 데 없는 나라 아닙니까?"

 

 

발제자,

박수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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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공격이 이어집니다.

 

"설명은 잘 들었어. 그렇지만 너네 나라는 최고의 나라가 아니야!"

 

말 그대로입니다.

본인의 나라가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나라도 깎아 내려야(?) 하죠.

 

발제자는 자신이 맡은 나라의 대변인이 되어,

때로는 뻔뻔한 변명을 하면서까지,

쏟아지는 공격을 훌륭하게 방어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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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여성들의 인권이 높았다고 흔히들 이야기하는데, 과연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요?

왕실은 일부다처제였고, 부와 권력을 목적으로 이혼을 요구하는 남성들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고려 여성들의 인권에 대해 크롱이 먼저 질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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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여성들은 당시 다른 나라 여성들보다 생활이 분명 편했습니다.

이혼을 요구할 수 있었고, 자유롭게 재혼할 수 있었어요. 또한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고, 호주가 될 수도 있었죠."

 

 

"잠깐. 이혼과 재혼이 자유롭다 하셨는데요.

실제로 이혼을 요구한 쪽은 남성이 더 많았고요, 여성이 이혼을 요구하기까지 큰 장벽이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솔이 공격을 보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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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처음 보는 제도가 생긴 거잖아요.

제도가 만들어지고 안정되기 전까지 여성들이 필연적으로 느끼던 압박감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여성은 남성과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하잖아요.

여전히 좀 아쉽네요. 여성이 관직에 오르는 일도 없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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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여성 인권이 좋았다고 하는 이유는, 이어지는 조선 여성의 인권보다 훨씬 낫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자꾸 여성 인권이 의심되는 건 우리가 당대의 시선이 아닌, 현대 여성 인권의 시각으로 당대를 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 선진 문화라 여기는 서양에서도 여성의 참정권은 100년 밖에 안 된 역사거든요.

그런 걸 보면 한반도 역사로 보나 세계사로 보나 고려 여성 인권이 높았던 게 아닐까요."

 

 

테디도 설명을 보충합니다.

다만 이것은 고려의 입장을 변호하는 설명이었네요.

 

듣고 있던 고려 대변인 입장에서는 참 흐뭇한 발언입니다.

 

"이게 웬 떡이니?"

 

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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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지 않고

다음 공격으로 넘어가는 솔.

 

"고려 신분제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고려 말기에 양민이 스스로 천민으로 전락해 국가의 역과 세금에서 벗어나는 일이 생기고,

농사지을 손이 부족한 대지주들은 양민들을 억지로 끌어다 천민으로 만들어 농사일을 시켰다고도 해요.

이렇게 신분 질서를 혼동시키는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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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럽게도, 고려는 신분제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했어요.

억울한 노비를 양민으로 되돌리는 제도를 만들었지만 나중에는 반대로 그 사람들을 다시 노비로 되돌리는 제도가 생기기도 했죠.

변명을 해보자면, 고려 후기에는 사람들이 먹고살기 힘들었거든요.

농산물 생산량이 저조했어요. 농업 시설도 보잘것없었는데다가 자연재해도 잦았다 하거든요.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 생긴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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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질문 있습니다. 고려가 외교를 잘 했다고 아까 그러셨죠? 저는 그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고려 초기 송나라와 거란을 상대로 한 외교는 훌륭했어요. 하지만 후기에 원나라를 상대로 한 외교를 볼까요?

왕들의 무덤에 묘호를 못 붙이고, '충성한다'는 의미로 왕 이름에 '충'을 붙였어요.

그리고 왕은 원나라 공주와 결혼해 사위국이 되었습니다. 세자들은 북경에 볼모로 잡혀 세자 시절을 보냈고요.

원 황제가 고려왕을 즉위시키고 폐위시킬 수 있었고요. 왕은 몽골식 변발과 의복을 갖추고, 몽골어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이거 너무 굴욕적인 외교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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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실 원나라가 생각보다 힘이 센 나라거든요. 몽골 제국이 분열되면서 생긴 나라예요. 몽골은 세계 역사상 가장 컸던 제국이죠.

원나라 역시 중국 역대 통일 왕조 중 가장 큰 나라였고요. 그 전에 상대하던 송나라, 거란과는 체급이 달랐단 말입니다.

그리고 몽골 제국이나 원나라가 다른 나라를 상대할 때 보여준 공포스런 행동에 비교해본다면, 고려의 상황은 나쁜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고려는 끝까지 몽골에 저항했거든요."

 

"맞아요. 여몽 전쟁이라 하죠. 30년 동안 계속된 전쟁이거든요. 임진왜란이 7년인데, 백성들이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습니까?

왕은 개경에서 강화도로 도망가고, 실컷 고생하다가 나중에 고개 숙이고, 사위국 되고. 백성들한테 너무한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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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동안 버티다가 너무 힘드니까 항복을 했죠. 그런데 항복할 때도 이거저거 다 들고 항복한 게 아니라 자치권만큼은 지켜냈어요.

원나라가 고려에 직접 세금을 걷지 않았던 게 그 증거죠. 항복할 때도 외교 감각이 살아있었다고 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처음부터 줄 거 다 주면서 외교 했으면 자치권은 못 얻었을 겁니다. 30년 동안 헛수고한 게 아니에요.

게다가 그사이에 팔만대장경이란 게 나오지 않았습니까? 몽골군이 물러가길 바라며 만든, 현재 대한민국 국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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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위국이라 했잖아요. 서유럽 나라들도 자기들끼리 결혼했어요. 그런데 서로 사위국, 부마국이라 안 부르죠.

그리고 충렬왕이 결혼한 원나라 공주가 제국대장공주입니다. 쿠빌라이 칸의 막내딸이에요. 쿠빌라이 칸은 칭기즈 칸의 손자죠.

칭기즈 칸은 그 엄청나던 몽골 제국의 전성기를 이끌던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고려는 중국 황제의 딸과 결혼한 동맹국이라 볼 수 있는 거죠.

사위국이 아니라, 부마국이 아니라, 동맹국!"

 

"아~ 진작에 그런 말씀을 해주시지."

 

테디의 한 마디에 갑자기 다들 웃음이 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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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 한마디 해드리자면, 초기 고려는 솔직히 한반도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외교를 잘했다 생각합니다."

 

 

아, 테디~ 고려를 공격하는 건지, 아니면 고려의 변호를 맡은 건지?

헷갈려요, 헷갈려~

 

 

"아까는 고려가 외교 못했다고 하더니!"

 

"초기에는 잘했다 했어. 특히 거란과의 관계는, 그, 서희.."

 

"우리 외교 스타지."

 

..

 

 

다음 나라는 테디가 맡은 발해입니다.

 

역시 청문회에 앞서 발제자의 기조연설이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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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남북국시대! 해동성국 발해는 과거는 물론 요즘의 우리가 배울 점이 많은 나라이다. 나는 대표적으로 ‘자주성’, ‘역사성’, ‘다양성’, ‘국제성’을 꼽는다. 간략한 소개와 함께 발해가 왜 한국사에서 최고의 나라인지를 함께 알아볼까?

 

발해는 고구려가 당과 신라에 망한 지 30년 만인 698년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세운 나라다. 당나라는 고구려의 재건이 두려워서 고구려 유민을 강제이주시켰는데, 대조영은 요동 지방의 영주에 있었다. 영주가 거란의 우두머리 이진충, 손만영의 난으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틈을 타서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규합해 옛 고구려 땅으로 돌아온 대조영은 천문령전투에서 당의 끈질긴 추격을 이겨내고 동모산에 나라를 세웠다.

 

첫 번째, 연호와 자주성.

천통, 인안, 대흥, 중흥, 정력, 영덕, 주작, 태시, 건흥, 함화. 황제국을 표방한 발해는 한국사에서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적인 연호를 썼다. 연호란 왕의 재위 해수로 년도를 세는 것이다. 연호는 시간의 표준이므로, 당대에 독자성과 자주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가 강성하던 광개토대왕의 ‘영락’ 등 특정 시기를 제외하곤 우리나라는 대부분 중국의 연호를 썼다. 신라도 쓰다가 중국의 질책을 받고 중국의 연호를 쓴 역사가 있다. 하지만, 발해는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다. 이것은 발해의 자주성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또, 2대 무왕의 아우 대문예가 발해를 배반하고 당으로 도망치자, 당나라를 침공할 정도로 강한 나라였다. 

 

두 번째, 고구려 계승과 역사적 감각.

 현대 중국과 일본 역사학계는 발해를 한국의 역사인지 의문을 품는다. 발해를 당나라의 지방정권으로 보거나, 말갈족 등 북방민족의 나라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과 달리 발해는 스스로 역사적인 정통성을 알고 있었고, 언제나 고구려의 후손이라고 천명해왔다. 발해국왕이 일본 왕에게 보내는 서신에는 '부여의 습속을 지니고, 고구려의 옛 거처를 되찾은 나라'라고 하며, 스스로를 고려국왕이라고도 칭했다. 일본과 중국의 옛 문헌에도 발해를 고려라고 부르거나 고구려의 후손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언어와 종교, 건축, 묘지, 성벽, 음악 등의 문화도 모두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다. 발해는 이런 역사적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세 번째, 역사상 유일의 다민족 국가와 다양성.

 발해는 이민족과 통합의 역사를 지향한 나라다. 앞서 말했듯, 고구려인을 중심으로 다양한 말갈, 거란, 해, 실위 등 다양한 북방민족이 섞인 다민족 국가였다. 발해는 그럼에도 이민족을 배척하지 않았고, 상생의 지혜를 발휘했다. 발해의 수도는 상경, 동경, 서경, 남경, 중경 등 5개나 되고 자주 천도했는데, 이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지방분권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러 민족의 힘이 섞인 결과 발해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넓은 국토를 지니게 되었다.(고구려의 1.5~2배, 신라의 3~4배) 다양성의 힘을 보여준 발해는 21세기 우리나라가 배울 점이 있는 역사는 아닐까?

 

네 번째, 국제적 감각과 줄타기 외교.

발해는 당, 신라, 일본, 거란, 돌궐과의 활발한 교류와 무역으로 국제적인 성격을 띤 나라다. 또 국제 세력의 힘에 변화를 이용해서 외교를 하는 국제적인 감각도 있었다. 이는 우리 역사의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국제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 역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둘러싸인 21세기 우리나라가 참고해야 할 역사는 아닐까?

 

덧붙여, 발해고를 쓴 조선의 학자 유득공은 통일신라가 아닌 ‘남북국시대'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도 북쪽에는 발해가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우리도 남북국시대라고 부른 것은 어떨까?

"

 

 

블루이가 먼저 손을 듭니다.

 

"자주 천도를 했다 하셨죠.

다양성을 존중하고 상생의 지혜를 발휘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중앙 정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혼란의 상징이 아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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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발해라는 나라가 중앙 집권을 했다면,

결국 다른 나라나 다른 역사와 마찬가지로 이민족을 배척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대답이 끝나자마자

또다른 질문이 날아옵니다.

 

"발해의 장례 문화로 순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는데, 무고한 사람들을 생매장시킨 거 아닙니까?"

 

 

왕이나 귀족이 죽었을 때,

처자와 노비, 가축 등을 함께 무덤에 매장하던 장례 관습을 순장이라 하죠.

 

이거, 꽤 매서운 공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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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장 문화는 발해에만 있었던 건 아니에요. 당시 중국을 포함한 주변 모든 나라에 그런 문화가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발해에서 순장이 계속될 때, 역시 같은 장례 문화가 있던 신라는 순장을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고구려도 순장을 지속해오다 그만둔 사례가 있고요. 발해는 왜 금지 안 했습니까?"

 

"신라 역사는 1000년이고, 발해는 겨우 200년입니다.

신라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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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제일 큰 영토를 자랑하던 발해가 어찌 그리 허무하게 무너졌을까요?

당시 발해를 무너뜨린 거란의 문서를 보면, 수도를 사흘만에 멸망시켰다고 기록이 되어 있거든요.

아까 말했다시피 중앙 정부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당시 수도에 군사들을 제대로 모으기가 힘든 환경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발해는 위치가 별로 안 좋은 편이었어요. 중국과도 가깝고 이민족들도 굉장히 많았고요.

그리고 사실 그때 백두산이 폭발했었다는 주장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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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이 폭발해?"

 

백두산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다들 흥미로워합니다.

 

 

"요즘도 백두산이 폭발하면 한반도가 위험하다는 주장이 있거든요?

화산재도 밀려오고 땅도 흔들리고 그러면 곡식도 없어지고, 아무리 강국이라도 정상적인 생활을 지속하기 힘들었겠죠."

 

 

호오,

꽤나 그럴듯한 방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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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에 대한 기록이나 사료가 너무 부족해요.

사료를 많이 남겼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지금 중국이 발해를 자기 역사라고 우기고 있지 않습니까.

심지어 발해가 러시아 역사라는 주장도 있어요. 논란의 여지를 남긴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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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것 때문에 공부하면서도 답답했는데요. 그런데 발해라는 나라가 문서 기반의 나라는 아니었어요.

유목민들 규합한 나라잖아요. 문보다는 무에 가깝거든요. 한 곳에서 농사만 지으며 오래오래 사는 민족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기록이 적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또 다른 추측은, 사실은 발해가 기록을 남겼는데 그것이 유실되었거나 혹은 어딘가에 묻혀있다던가.

발해 멸망 후에는 그 땅이 거의 빈 상태였거든요. 그 후로는 발해처럼 유목 민족인 북방 민족의 땅이었으니까요.

여진족, 말갈족, 만주족.. 유목민들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와중에 발해의 기록과 사료가 유실되거나 버려지거나 태워졌다는 거죠.

거란이 침략했을 때 발해의 궁도 태우지 않았습니까?

 

조선 후기 유득공이라는 학자가 이 '발해고'라는 책을 쓸 때도 관련 기록이 거의 없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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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영은 누굽니까?"

 

"발해를 세운 사람이죠. 고구려 유민 출신이에요. 그 핏줄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데요.

우리나라에 대 씨가 수백 명이 있어요. 대조영이 시조입니다.

유명한 사람은 별로 없지만.. 과거 조선 시대에는 관직에도 진출했다고 해요."

 

 

"궁금한 게 있는데요.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고 당당히 이야기하잖아요?

고구려를 계승했을 때 좋은 점이 뭐죠?"

 

"고구려는 우리 역사라는 사료가 많거든요. 그 결정적인 증거가 '코리아'라는 이름에 있잖아요.

지금 한국을 코리아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고구려가 우리 역사인 걸 증명하죠.

말씀드렸다시피 발해는 우리의 역사라는 근거가 사실 부족해요. 그런데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다?

그것이 발해가 우리 역사라는 중요한 역사적 사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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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디의 정리 발언이 이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발해가 유민들과 소수 민족을 규합해 세운 나라라고, 그게 북부 문화지 왜 한민족의 나라냐 이야기하거든요.

그런데, 소수 민족이 함께 있는 게 왜 문제입니까. 중국도 항상 소수 민족이 함께 있었어요.

왜 우리나라라고 꼭 단일 민족만 고집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강대국들은 소수 민족이 항상 함께 있거든요.

이런 점이 발해가 강대국이었음을 오히려 증명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단일 민족으로는 내기 힘든 힘을 보여줬고요.

..

발해가 가지고 있던 민족의 다양성, 자주성, 역사성 등을 보면서,

현재 우리가 필요한 점을 발해가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그것이 다른 나라와는 조금 다른 점이라 생각하고요.

그래서 발해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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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정리를 보여준 발해의 대변인!

 

이렇게 보면 발해가 최고인 것 같기도 하고..

어서 빨리 다음 나라를 만나봐야겠죠?

 

세 번째 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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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의 가야입니다!

 

이번 세미나에서 꼭 우승할 거라며 몇 번이고 포부를 밝히던 솔,

가야의 소개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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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한의 구야국를 중심으로 12개의 소국을 결집한 전기 가야 연맹과 대가야를 중심으로 성립된 후기 가야 연맹을 통 들어 가야라 칭합니다. 여기서 구야 국이란 금관가야를 뜻하는데 금관가야는 고려 시대 때 붙어진 이름이므로 구야 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겠습니다. 가야는 연맹왕국이었습니다. 그래서 연맹왕국 내의 부족들은 각각의 자치권과 권한을 가졌고 자신들의 영토를 다스렸습니다.

 

구야국은 현재 김해평야인 고 김해만이라는 옛 바다를 항구로 이용하여 상업국 가로 발전시켰습니다. 이 항구를 이용하여 외국에서부터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문화를 발전시켰다. 받아들이는 대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일본과 변한에 공급하여 중계무역으로 이득을 보면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위지] 동이전의 기록에 의하면 '나라에서 철을 생산하여 한, 예, 왜 및 두군, 즉 낙랑군 대방군에 공급하였다.' 라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앞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가야 하면 철! 철하면 가야! 가야는 철이 유명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제철기술 등이 전무해 전적으로 가야 연맹의 철에 의지했었습니다. 철이라는 상품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여 구야국는 중국과 한반도, 일본열도를 잇는 무역을 하기 시작했으며 동북아시아의 철 시장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후기 가야 연맹에서는 섭라 지방에서 산출된 옥이 유명했습니다.

고구려에도 수출되었으며, 고구려는 옥을 북위와의 무역에서 중요 결제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오랫동안 무역을 한 일본과의 무역 주도권을 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른 나라의 선진문물을 수용하는 자세가 보이는데요, 개방적인 나라라고 느껴집니다.

 

가야인들은 가야가 신라에 편입된 후에도 정치와 군사 문화에서 활약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김유신 장군과 순응, 이정, 우륵이 있습니다.

김유신 장군은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삼국통일을 이루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장군이며 정치가입니다. 신라의 역사에서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추앙받았습니다.

대가야의 왕족의 후손으로서 가야계 신라인이었던 순응과 이정은 그 인연을 이용하여 가야 옛 따위 불교를 진흥시키기 위해 해인사를 창건하고 정견모주를 중심으로 대가야의 시조를 널리 퍼트렸습니다.

우륵은 대가야의 악사이며 가야금을 만들고 12악곡을 지으셨습니다. 대가야의 음악을 신라에 전수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고구려의 왕산악(王山岳), 조선의 박연과 함께 한국 3대 악성의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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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의 스피치에 관련해 질문할 사람이 있나요?"

 

"네. 김유신 장군을 말씀해주셨는데요. 신라의 통일을 이끈 금관가야 왕족의 후손이죠.

그런데 가야의 후손이 신라에서 활약한 것은 가야의 위상이 아닌 신라의 위상을 높인 것, 결국 남의 나라만 도와준 꼴 아닐까요?

삼국통일을 신라가 했다고 가야를 칭찬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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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가야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가야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정치와 군사, 문화 등에서 활동했을 겁니다."

 

..

 

"스피치에서 말씀하신대로 가야는 철을 비중 있는 외교 자원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런데 가야는 철 수출에만 의존한 게 아니었을까요?

그 예로, 나중에 철을 자주 사 가던 단골이었던 낙랑군이 망한 후로는 가야의 국력이나 문명이 쇠락하거든요."

 

"기본적으로 가야는 농업보다는, 해안가에 위치한 이점을 활용한 무역에 비중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김해 지역은 예나 지금이나 쌀이 많이 나오는 곳입니다. 김해평야가 있잖아요. 농업을 발전시키기 충분한 환경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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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에는 철 말고도 유명한 특산물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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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수출이 시들해지던 후기 가야 연맹에서 옥을 발견해 이용하고, 수출하기도 했습니다."

 

..

 

"가야가 화폐로 쓰일 만큼 귀한 자원인 철이 풍부했고,

낙동강 하류에 위치한 교통의 중심지였는데도 쉽게 망한 것은 나라를 너무 못 다스린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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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철'을 중심으로 많은 질문이 쏟아져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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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일 텐데요. 가야가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연맹 국가가 부족하거나 미흡해서가 아니라 서로 견제가 잘 되고 발전이 균등하게 되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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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모도 질문합니다.

 

"가야라는 이름은 어디서 유래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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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말고도 임나, 가라 등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데요. 그중 가야라는 이름이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지요.

그 이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아는 바가 없네요."

 

..

 

"가야 연맹체 국가들이 각자 독자적 문화를 가졌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고작 신라 장군 이사부에 의해 멸망될 정도라면 너무 보잘것없던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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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연맹 체제 국가의 한계가 아닐까요."

 

"삼한이 있었잖아요. 마한 지역은 백제가 되었고 진한 지역은 신라가 되었죠.

두 나라도 처음에는 가야와 비슷했지만 나중에는 수도도 생기고, 차츰 중앙 집권 국가가 됐어요.

그런데 가야는 끝까지 그러지 못한 건, 변한 지역이 가야가 되었지만 그냥 변한 시대가 이어져 온 것과 다를 게 없다 생각합니다."

 

..

 

상대적으로 약소했던 나라인 가야를 맡은 솔,

오늘 고생 좀 하는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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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발해의 순장을 비판하셨는데, 가야에도 순장 문화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사실 아주 많았어요.

고을마다 있는 수준이었죠. 창원에도 몇 개나 있고, 김해에도 있고.."

 

"순장 문화에 대해서는 반박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가야의 순장묘에서 가야 여성의 옷차림이 최초로 발견되었거든요.

그 묘는 문화재로 등재될 예정이고요. "

 

 

"그렇지만 신라는 순장을 폐지했을 뿐 아니라 순장 자리에 사람 모양의 흙을 반죽해 넣는 대안도 마련했습니다.

옷차림이나 장신구 역시 흙으로 표현해 넣었죠. 가야도 신라처럼 융통성을 발휘할 수는 없었을까요?"

 

"그렇지만 가야의 순장묘에서는 실제 장신구나 옷, 토기 등이 발굴되었습니다. 신라의 순장묘에서는 찾을 수 없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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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습니다. 그러면 아까 발해의 순장을 비판했던 것, 후회하십니까?"

 

 

뜬금없는 테디의 질문에 다들 웃음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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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내 진지한 질문을 쏟아냅니다.

 

 

"가야가 멸망한 과정을 보면 주변 정세를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철기를 믿고 신라를 공격해 서라벌 함락 직전까지 갔지만,

신라가 도움을 요청하자 고구려의 광개토 대왕이 5만 명을 끌고 와 가야를 거의 멸망시켰죠."

 

"그건 가야가 자진해서 신라를 공격한 게 아닙니다. 당시 고구려와 신라의 연합을 견제하던 백제가 가야를 시킨 겁니다.

직접 나가면 손해 볼 것 같으니 약한 나라를 시킨 거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직접 안 하고.."

 

 

"그게 오히려 가야가 정세를 몰랐다는 근거 아닐까요?

만약 정세를 알았더라면, 마음먹고 백제랑 선을 긋고 고구려나 신라와 손잡지 않았을까요? 그랬으면 궤멸적인 상황은 피했을 텐데요.

괜히 시키는 대로 하다가 그것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보고. 그게 정세를 못 읽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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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세를 몰랐던 건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약자의 입장에서 강대국이 시키는데 안 한다 하기도 무섭고,

가야 나름대로 옳은 선택을 했다 생각합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가야는 망했지만 오히려 더 빨리 망했을 수도 있죠.

그 시기에 가야는 어차피 백제와 신라의 견제를 동시에 받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 그들이 가야를 공격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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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은 정리 발언 한번 해주세요."

 

"가야가 약소국이었던 건 사실이에요. 주변 나라 간섭도 받았고요. 그렇지만 자신들의 문화를 지켜내려 계속 저항해왔었고,

후손들에게 가야를 전해주려는 노력도 있었기에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나라입니다."

 

..

"순장이 후손들에게 전해주려는 목적이었다는 건가요?"

"산 채로 보여줄라고, 확.."

(농담입니다. ^^)

 

 

가야를 맡아 분전한 솔,

수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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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나는 다른 나라를 공격해 포인트를 따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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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아직 네 나라(고구려, 백제, 신라, 조선)가 남아있죠.

 

이 세미나의 판도는 과연 누가 이끌 것인가,

다음 소식지를 참고..

해주세요.

 

크크크.

 

 

피쓰!